신사임당이 그린 것으로 전하는 '수박과 들쥐'이다. 율곡 이이의 어머니 신 씨는 산수, 묵죽, 포도, 난초 등 여러 종류 그림을 그렸다고 하고 전칭작도 여럿 전한다. 그러나 어느 그림이 과연 사임당의 작품인지 확정할 기준작은 없다시피 한데 이런 사실은 일찍이 동주(東洲) 이용희(1917-1997) 선생이 지적한 바다. 율곡선생은 어머니의 일대기를 쓴 「선비행장(先妣行狀)」에서 "어머님께서는 늘 묵적(墨迹)이 남다르셨다. 7세 때부터 안견의 그림을 모방하여 마침내 산수화를 그리신 것이 지극히 신묘하였고, 또 포도를 그리셨다. 모두 세상에서 흉내 낼 수 없는 것으로 그리신 병풍과 족자가 세상에 많이 전한다."고 했다. 병풍이나 족자로 표구해 간직할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사임당의 그림이 인정받고 있었던 것이다. 사임당은 생전에 그림을 잘 그린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고, 여성으로서 화명(畵名)이 거론된 이례적 존재이다.
'신사임당 초충도'는 여러 점이 전하는데 '수박과 들쥐'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8폭 중 한 폭이다. 채색법이 여성의 감각이라고 느껴지는 점이 있고, 형태 묘사는 전문적인 화가의 솜씨라기보다는 아마추어의 필치로 보이며, 소재가 일상적인 것이라 보고 그렸을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운동감이 없고 정적이며 장식적인 점도 눈에 띤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친근한 소재를 아기자기하게 구성해 보는 재미를 주는 그림임에도 묘하게 품위가 있는 점도 특징이다.
'수박과 들쥐'는 수박과 넝쿨, 패랭이꽃, 나비 두 마리, 쥐 두 마리를 화면 중앙에 꽉 채워 그렸다. 커다란 수박을 파먹고 있는 들쥐 두 마리도 마주보고, 나비 두 마리도 마주보고 있어 대칭 구도의 안정감이 강하다. 수박과 함께 바닥에 있어야 할 수박넝쿨이 위로 들어 올려져 나비와 같이 공중에 그려진 것은 회화적 공간에 대한 인식과 훈련이 없기 때문에 나온 표현이다. 땅을 지평선으로 그려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사임당의 초충도가 실물을 보고 그린 사생화가 아니라 자수도안의 본(本)그림일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율곡선생은 어머니가 그림 뿐 아니라 글도 잘 짓고 글씨도 잘 썼으며 바느질도 잘하고 수놓기까지 정묘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고 했다.
화가 사임당은 아들이 언급한 산수, 포도가 아니라 초충도로 인식된다. '신사임당 초충도'는 18세기 회화 문화의 한 양상이며, 그 연원은 송시열을 비롯한 율곡학파에 의해 초충도가 사임당을 대표하는 그림으로 설정되고 일종의 문화자본을 형성하게 된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연구가 2013년 고연희 교수에 의해 나왔다. 아들이 획득한 대학자로서의 위상으로 인해 사임당은 화명을 남길 수 있었지만 동시에 화가 사임당은 재구성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의 거의 유일한 여성화가인 사임당과 그녀의 회화사적 의미, '신사임당 초충도'를 어떻게 자리매김해야할까. '신사임당 초충도'가 역사적 합리성을 가진 의미 있는 문화유산이라는 점은 분명할 것이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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