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흘러내리는 기름값, 유가 상승 베팅은 '위험'

한국 수입 두바이유 20달러대 하락…2003년 이후 처음
'코로나19' 위기 엎친 데 덮친 격…'저유가=경제 호재' 깨고 소비 멈춰
원유 선물시장 콘탱고 현상…현물가보다 선물가 높은 상태
롤오버 비용 커져 수익성 악화…금감원 소비자 경보 위험 발령

국제유가가 9일(현지시간) 급등락 장세 끝에 폭락세로 방향을 잡았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5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배럴당 9.3%(2.33달러) 내린 22.76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연합뉴스
국제유가가 9일(현지시간) 급등락 장세 끝에 폭락세로 방향을 잡았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5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배럴당 9.3%(2.33달러) 내린 22.76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연합뉴스

국제 유가 하락이 이어지면서 한국으로 수입하는 원유의 기준인 두바이유 가격이 여전히 20달러대를 맴돌고 있다. 2003년 이후 처음으로 30달러선이 붕괴된 것이다.

산유국들의 힘겨루기를 조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과 비회원 산유국을 포괄하는 'OPEC+'는 물론 G20 에너지 장관회의도 해결방안을 제시하지 못하다보니 당분간 국제유가 하락세는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가뜩이나 코로나19로 휘청이는 세계 경제가 원유 때문에 더 큰 충격을 입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가 떨어지면 좋은거 아냐?

출처=클립아트코리아
출처=클립아트코리아

원유를 전량 수입에 의지하고 있는 우리나라 경우 '저유가=경제 호재'라는 것이 공식처럼 받아들여져 왔다. 유가가 내리면 원재료 값, 물류비가 줄어 기업들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데다 유가에 연동한 생활물가 하락으로 가계에 소비 여력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경우에는 상황이 다르다. 코로나19 변수 탓에 석유 수요가 지나치게 위축되면서 유가 하락이 디플레이션(경기 침체와 맞물린 지속적 물가 하락)을 부추기는 불쏘시개로 작용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

더구나 과거 저유가 수혜를 입었던 업종들이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는 오히려 가장 큰 피해 기업이 되고 있다. 글로벌 이동이 끊긴데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영향으로 소비 자체가 꽁꽁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정유·석유화학업계가 가장 직격탄을 맞았다. 정제 마진이 축소되고, 재고 평가손실 확대, 저장비용 부담 등으로 인해 신음하고 있다. 큰 소비처인 항공업이 멈춰선데다, 해외 플랜트 수주 등이 끊기며 건설업도 타격을 입을 것이란 분석이다.

◆세계 경제 흥망과 맞물린 유가

출처=클립아트코리아
출처=클립아트코리아

유가는 단순히 '기름값'이 오르고 내리는데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세계 경제를 쥐고 흔들만큼 상당한 파급력을 쥐고 있으며, 국가 경제를 밀접하게 연결시키고 있다.

유가 급락 시 브라질·베네수엘라 같은 중남미 산유국, 재정 수입의 상당 부분을 원유 판매에 의존하는 중동 등지의 산유국 경기가 타격을 입는 것이 대표적 악재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의 경우 대외 변수에 취약한 신흥국 경기가 나빠지면 수출에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 지난해 신흥국이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8%에 달한다.

저유가가 장기화하면서 부채 비율이 높은 미국 셰일가스 기업들이 위기 상황에 내몰리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셰일업계는 배럴당 40∼50달러에서 채산성을 가질 수 있는데 현재의 저유가 상태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면, 셰일'발' 금융위기가 시작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이들이 발행한 채권이 휴지조각이 되면 세계 금융시장의 대형 악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미국 정부까지 나섰지만 아직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실제 지난 1일(현지 시간)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셰일가스를 채굴·생산하는 화이팅 페트롤리엄(Whiting Petroleum)은 경영 악화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파산보호신청을 했다.

◆유가 상승 배팅, 주의 필요

몇 달 간 지속된 저유가 사태에 사람들은 너도나도 원유 가격 상승에 배팅하고 있지만 지난 10일 유가는 또 다시 9.3% 폭락했다. 'OPEC+'가 다음달부터 2개월간 원유 생산량을 일평균 1천만배럴씩 줄이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감산량이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수요 감소폭에 턱없이 못미치는 탓이다.

유가 변동이 종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무리하게 투자했던 개인투자자들의 한숨소리도 커졌다. 최근 한달간 개인이 1조원어치 이상을 순매수한 원유선물 상장지수증권(ETN) 주가가 폭락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레버리지 ETN의 경우 그동안 괴리율(지표가치와 시장가치 간 격차)이 너무 커진 것도 부담이었다. 레버리지 원유 ETN은 이름 그대로 국제유가에 베팅해 유가가 오를 경우 상승 폭의 두 배로 벌 수 있는 투자상품으로, 현재 원유 ETN 괴리율은 95.4%에 달하기도 했다. 괴리율이 95.4%라는 건 기초자산인 원유 가격이 두 배 가까이 뛰더라도 본전이라는 애기다.

더구나 최근 원유선물 투자자들의 수익 전망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원유 선물 시장이 극심한 '콘탱고 현상'(Contango·선물가격이 현물가격보다 높은 상태)을 보이고 있는 탓이다. 원유선물 ETN·ETF는 매월 만기 전에 다음 월물로 갈아타는 '롤오버'(Roll over·근월물을 만기 시점에서 원월물로 교체하는 것)를 해야하는데, 콘탱고 현상이 심하면 롤오버 비용이 커져 수익성을 악화시킨다.

이 때문에 금융감독원은 최근 과열 양상을 보이는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에 대해 소비자 경보 '위험' 등급을 지난 9일 발령했다. 금감원이 '위험' 등급 경보를 발령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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