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자발적 기부’ 강요하는 전 국민 긴급재난지원금

문재인 정권이 고소득층과 공무원 등이 긴급재난지원금을 '자발적'으로 기부하도록 하는 동시에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한 '자발적' 국민 모금 운동도 검토하고 있다. 2020년 판 '금 모으기 운동'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문재인 대통령이 '1호 기부자'로 나서 재난지원금에 더해 기부금을 내놓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홍남기 부총리는 28일 국회에서 "상위 30% 지급 대상인 분들이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상당 부분 기부할 것"이라며 "공무원도 강제 사항은 아니다. 자발적으로 (택할 문제)"라고 했다. 정부는 '자발적'이라 하지만 실제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있다. '자발의 강요'이거나 그것을 감추려는 '관제 기부'로 비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홍 부총리의 말도 전혀 달리 해석할 수 있다. 듣기에 따라서는 '기부하지 않으면 재미없어'라는 것으로 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 말에 따르지 않으면 '성숙한 시민의식'이 없는 인색한(吝嗇漢)이 될 판이니 말이다.

국민 모금 운동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정부가 주도하고 민간에 강요하는 '관제 기부'와는 다르다고 한다. 청와대도 정부 차원에서 모금 운동을 따로 추진할 계획은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자발적'이니 '국민 모금 운동'이니 하는 말 자체를 하지 말아야 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긴급재난지원금 기부가 정부의 책임 회피라는 사실이다. 정부는 정책을 수립·시행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긴급재난지원금의 전 국민 지급으로 재정 압박은 더욱 커졌다. 정부의 계획은 이 중 일부를 '기부'로 보전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재정 압박 책임을 상위 30%에 떠넘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긴급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지급하기로 한 이상 그에 따르는 부작용이나 후유증의 책임도 정부가 져야 한다.

'전 국민에게 지급'은 재정 압박 문제를 도외시한 '정치적' 결정이었다. 그래 놓고 이제 와서 재정 압박 때문에 그 정치적 결정의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 참 무서운 정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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