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립습니다]코로나19에 뵙지도 못하고 떠나 보내 섭섭합니다

우영화(1937.07.12~2020.03.28)씨 생전 모습. 가족 제공.
우영화(1937.07.12~2020.03.28)씨 생전 모습. 가족 제공.

명절이면 처조모부터 아이들까지 4대가 북적이던 집이 그립습니다. 처조모는 20여 년전부터 중풍으로 왼쪽 팔과 다리가 불편해지셨지만 명절이면 아픈 자식은 없는지 걱정에 눈을 떼지 못하는 가족의 보금자리 같은 분이셨다.

자식들에게 항상 올곧은 모습만 보여주시려고 노력하시던 처조모는 깔끔하고 정갈한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불편한 몸을 이끌고 미장원만큼은 꼭 다녀오시곤 하셨던 분이다. 2남2녀의 장녀로 태어나신터라 그에 걸맞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항상 자기관리에 철저한 분이셨기 때문이다. 더욱이 3년 전쯤 대구의 한 요양원에 입원하기 전까지 항상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하겠다고 노력하신 분이셨다. 물론 몸이 불편하다보니 인근에 살고 계시는 장모님께서 자주 찾아 뵙고 도움을 드렸다.

처조모는 요양원에 계실때도 꼭 명절이면 집으로 돌아와 따스하게 자식들을 맞아 주셨고, 명절만큼은 가족들과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손주들의 재롱도 보고 가족들의 안녕을 보살피기 위함이었다. 지난 설에도 "손자들이 튼튼하게 잘자라야한다", "밥은 잘먹고 다니냐" 등 말씀하시면서 용돈을 꼭 쥐어주신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더이상 처조모를 만나 뵙지 못하게 됐다. 처조모는 안타깝게도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대구 한 요양병원에 지난 1월 입원한 뒤 확진 판정을 받으셨고, 확진 판정을 받은 뒤 지난 3월 21일 대구의료원으로 자리를 옮겨 치료받으셨지만 일주일만에 세상을 등지셨기 때문이다.

명절때만해도 마지막 모습일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사실 코로나가 지나고 나면 아무일 없이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요양병원으로 자리를 옮기시면서 면회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더 이상 볼수 없게 돼 눈물이 앞을 가린다.

코로나19로 면회가 금지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장모님이 처조모를 찾아갔을 때가 생각난다. 장모님은 반찬으로 장조림을 해갔는데 처조모는 당시 "다음번엔 장조림 국물을 많이해 달라, 밥을 비벼 먹고 싶다"고 하셨다. 하지만 코로나19가 갑작스럽게 확산하면서 이후론 면회를 하지 못해 드시고 싶다던 그 국물 많은 장조림 반찬도 드시지 못한 채 떠나셨다.

소중한 가족인 처조모를 앞으로 만날수 없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너무 시리다. 이런 가족들의 마음을 정부와 지자체가 조금이라도 알아줘 마지막 가시는 모습을 뵐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 줬으면 좋았을 텐데... 후속 조치에 대한 대처도 신속히 해주면 좋을 텐데라는 여러가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장인어른도 "마지막 모습을 뵙지 못한 데다 아무런 것도 보지 못해 마음이 미어진다. 못보고 보낸 것이 너무 섭섭하다"고 하시더니 "고운옷 입는거 좋아하시는 분이 세상에 태어나면 수의 한 벌은 건져간다는데 수의도 한 벌 챙기지 못하고 빈손으로 세상을 떠나셨다"며 말을 잇지 못하셨다.

항상 자식들을 따스하게 반겨주시던 처조모님, 하늘나라에서 아프지 않고 잘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손주사위 백진엽 올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매일신문이 유명을 달리하신 지역 사회의 가족들을 위한 추모관 [그립습니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의 귀중한 사연을 전하실 분들은 아래 링크를 통해 신청서를 작성하시거나 연락처로 담당 기자에게 연락주시면 됩니다.

▷추모관 연재물 페이지 : http://naver.me/5Hvc7n3P

▷이메일: tong@imaeil.com

▷사연 신청 주소: http://a.imaeil.com/ev3/Thememory/longletter.html

▷전화: 053-251-1580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