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뭍에서 100m 정도 떨어진 해상에서 배가 좌초돼 헤엄쳐 해안가로 가는 동안 배낭에 넣어뒀던 건빵과 미숫가루가 물에 젖어 못 먹게 됐어요. 손으로 모래사장 흙을 파고 들어가 적탄을 피했습니다."
70년이 흘렀지만 당시의 기억은 눈앞에 그려지듯 또렷했다. 1950년 9월 14일, 대구 대건중학교 5학년이던 류병추(88) 장사상륙작전 참전유격동지회 회장은 훈련 2주 남짓만에 장사상륙작전에 투입됐다고 했다. 당시 대대 장병 772명 중 90%가량이 10대 학도병이었다.
그가 속한 육군본부 제1 유격대대(대대장 고이명흠 대위)는 그날 군함 '문산호'를 타고 오전 5시쯤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 해안에 상륙했다. 급박한 상황에 날씨마저 좋지 못했다.

류 회장은 "군복과 배낭은 물을 머금어 무거워졌고 총에도 물이 스며들어 쓸 수가 없었다. 적탄을 피할 곳이 없어 손으로 모래사장 흙을 파고 숨어들어가 물에 젖은 총을 손질했다"며 "탄이 쏟아지던 상황에서 배에서 뛰어내리다가 한 개 중대 전체가 수장되기도 했다"며 말끝을 흐렸다.
엿새에 걸친 상륙작전에 성공하고 부산으로 복귀했지만 함께 갔던 전우들은 반으로 줄어 돌아왔다. 류 회장은 "적군이 밀려오는 상황에서 40~50명은 배에 채 타지도 못했다"고 했다.
외로운 세월이었다. 전쟁통에 급작스레 만들어진 학도병 부대였던지라 선배도 없고, 대대장도 세상을 떠나 서로의 생사를 알 길이 없었다. 30년이 지나 1980년부터 참전 학도병들이 서로를 수소문했다. '장사상륙작전 참전유격동지회'가 결성된 건 1997년이었다.
6.25전쟁의 전환점이 된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는 장사상륙작전의 공이 컸다. '성동격서'의 교본이었다. 류 회장과 회원들은 이런 값진 희생을 기리고 널리 알리고 싶었다. 그 결실 중 하나가 '문산호' 재현사업이었다. 이달 5일 문산호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이 영덕 장사리 앞바다에 문을 열었고 지난해에는 상륙작전을 모티브로 한 영화 '장사리'도 개봉했다.
현재 생존해 있는 참전유격동지회 회원은 모두 25명. 류 회장은 "숙원사업이 이뤄져 기뻤지만 재현된 문산호를 바라보고 있자니 당시 눈앞에서 적의 포탄에 쓰러져가던 동지들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착잡했다"며 "지금도 장사리 해변 모래사장에 가면 꽃피지 못하고 사라진 청춘들이 떠올라 눈물이 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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