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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목의 아침놀] 정치는 코로나19에게 배워라

대구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을 비롯한 코로나19극복 대구시 범시민대책위원회 회원들이 26일 대구 중구 한 음식점에서
대구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을 비롯한 코로나19극복 대구시 범시민대책위원회 회원들이 26일 대구 중구 한 음식점에서 '마스크 ON, 대화 OFF' '식사할 때 말없이' 등의 스티커를 붙이며 코로나19 확산 방지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온 나라가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이나 첨단과학 운운하며 제법 우쭐댔었다. 한데 이게 뭔가? 백신 개발도 지지부진, 마스크 쓰기니 사회적 거리두기로 소란스러울 뿐, 근본 해결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한편 질병 관리를 명분으로 사회적 통제와 감시는 늘어났고, 삶은 더 팍팍해졌다.

아울러 코로나19를 정치적으로 활용하여 전체주의니 독재니 파시즘 사회를 만들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거세다. '기정찰찰(其政察察), 기민결결(其民缺缺)'이라던 『노자』의 말이 새롭게 들리는 것도 이유가 있다. 나라의 정치가 개개인의 사적 영역을 너무 세밀히 들여다보면(찰찰), 백성들의 영혼은 탈탈 털려 자율·능동성이 망가지고 만다(결결)는 뜻이다. 사회가 공포스러워지면, 언론도 입을 다문다. 옳고 그름의 기준 없이 여론과 지지율에만 기댄 정치는 결국 시대정신과 백성의 힘으로 끝장난다.

어쨌거나 재난을 견디며 배우고 깨달은 것도 많다. 정치 또한 코로나19라는 무언의 훈장에게 한 수 챙기고 있다. 잔머리 굴리지 말고 진심으로 배워라! 배우려 들면 모든 게 스승 아닌가.

첫째, 자연 앞에서 '하심·겸손'해야 한다는 점이다. 최상의 무엇을 아직 얻지도 못했는데 이미 대단한 것을 얻은 듯 교만하다는, 인간의 저 '증상만'(增上慢)이 여지없이 무너짐을 우리는 목도하지 않았는가. 아직도 우리는 세계를 잘 모른다. 더 배워야 한다.

둘째, '생로병사' 가운데, '생'이 '병·사'로 수시 전환 가능하다는 인식이다. '병·사'는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곁이나 속에 항상 붙어 다닌다는 자각 말이다. 길거리에 나서면 차 조심해야 하듯 '생'의 여정은 '병'사'의 경고음에 항상 귀 기울여야 함을 알게 되었다. '병·사'가 '생'의 갑이고, 주인이며 스승이다.

셋째, 질병 앞에 누구나 '평등'하다는 사실이다.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가졌든 못 가졌든, 이념의 좌든 우든, 아무 상관이 없다. 질병 앞에 공평하다는 자각은 종교 이상의 큰 깨달음을 안겨준 것이다. 감염의 공포 앞에, 자가격리나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서, 누구나 공평한 시공간의 제약을 받으며 평범한 한 인간으로 살아 있음을 눈치챈 것이다.

넷째, '소국과민'(小國寡民)이라는 절제된 욕망의, 소규모 자치행정체가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나라의 규모를 작게 하고, 백성의 수를 적게 하라는 '소국과민'은 코로나19 시대에 유용한 전략처럼 느껴진다. 즉 『노자』에서는, "백성들이 죽음을 소중히 여겨 멀리 옮겨 다니지 않도록 하라"(使民重死而不遠徙)고 한다. 그리고 "이웃 나라가 서로 바라다보이고 닭 울고 개 짖는 소리가 서로 간에 들려도 백성들이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隣國相望, 雞犬之聲相聞, 民至老死不相往來)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국가적 질병 통제로 지금 우리는 '소국과민'의 의미를 경험 중인 셈이다.

다섯째, 비로소 진정한 개인의 시대가 열렸다는 점이다. 동창회, 향우회 등등 온갖 단체 모임을 좋아하는 우리 사회가 언택트의 흐름 속에서 서서히 개인의 독립된 시공간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오프라인의 면대면이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개개인이 연결된다는 학습은 우리 사회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보이고 있다. 우리는 비로소 자율적, 능동적, 도덕적 개인의 희미한 가능성을 맛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세계는 어떤 방식으로든 연관되어, 어느 한쪽의 선(善)이나 노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러나 개인과 공동체의 상관성 속에서 실제로 우리는 너무 개인의 사적 영역을 무시해 왔다.

코로나19의 불안한 시대, 나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가끔은 유기적 연계를 벗어나, 독립된 자유롭고 도덕적인 영혼들의 사회 아닐까. 떼 지어 몰려다니는 것 말고, 누군가가 필요할 때 만나면 되는 '홀로 가끔 여럿'이 되는 사회 말이다. 정치는 코로나19로부터 이런 점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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