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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의 디자인, 가치를 말하다] 관성의 변곡점

김태선 한양대학교 ERICA 캠퍼스 디자인대학 산업디자인과 교수
김태선 한양대학교 ERICA 캠퍼스 디자인대학 산업디자인과 교수

대면 수업에서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한다는 급박한 통지가 또 날아왔다. 지난 2월 말 개학을 앞둔 그때 같은, 아니 더 심한 상황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코로나19로 일상의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변화는 가속화되어도 1년 정도 후엔 모든 것이 정상화되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전염병은 지금 당장 라이프스타일을 온전히 바꿀 태세다. 2020년은 인류 역사에 변화의 가속이 표면화된 두 번째 시기로 기록될 듯하다.

그렇다면 첫 번째 가속 시점은 언제였을까? 토마스 프리드먼(Thomas L. Freidman)은 2007년을 그 변곡점으로 본다. 2007년(±1년), 애초에 보지 못했던 것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하둡(Hadoop: 빅데이터 분석에 사용되는 오픈 소스 프레임 워크), 깃허브(GitHub: 개발자들이 애정하는 오픈소스 플랫폼), 페이스북(Facebook), 트위터(twitter), 아마존 킨들(Amazon Kindle: 전자책 단말기), 아이폰(iPhone) 등이 출시되었다. 이 많은 상품 중 일반인의 일상에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킨 것은 아마도 아이폰일 것이다. 아이폰은 휴대전화의 플랫폼을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바꾸고, 애플리케이션의 소프트웨어 시장을 열었으며, 무엇보다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완전히 변화시켰다. 폰으로 언제 어디에서든 이메일을 확인하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친구와도 실시간으로 소식을 주고받으며, 인터넷 검색은 물론 문서 작업을 하거나, 동영상을 보고, 게임을 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라이프스타일은 바뀌었고, 그 변화의 중심에 아이폰이 있다.(삼성전자의 갤럭시S는 2010년 6월 출시되었다)

아이폰의 성공 요인으로 '손안의 기기 하나로 전화, 영화, 웹브라우징까지' '손에 착! 감기는 탁월한 그립감' 등 다양한 의견이 있다. 하지만 그때에도 다양한 기능을 한데 모은 기기로 팜이나 PDA 등이 있었고, 좋은 그립감의 제품은 너무나 많았다. 아이폰에서 비롯되어 지금은 모든 터치 기기의 보편 기능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가 있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쓸어내리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화면을 빠르게 팍팍팍 쓸어내리면 가속이 붙어 빠르게 내려가고, 손가락을 떼면 물리적 관성과 가상의 마찰력에 맞춰 속도가 줄지만 바로 멈추지는 않는다. 그리고 스크롤이 문서 끝에 다다를 땐 살짝 튕겨서 올라갔다가 멈춘다. '관성 스크롤'(inertia scroll)과 '고무줄 효과'(rubber band effect, 일명 바운스백)이다. 이 경험 요소는 사용자에게 디지털 화면이 아닌 물리적으로 실재하는 문서를 넘기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사용할수록 손에서 놓고 싶지 않게 만드는 이 작은 경험 디자인 요소 하나가 사람들을 작은 화면 속 불편한 스크롤바에서 해방시키며 지금의 스마트폰 시대를 열었다.

이제 디자인은 쓸모 있는 물건을 만드는 것을 넘어 사람들의 행동 방식, 라이프스타일을 디자인하는 단계로 넘어왔다. 혁신적 기술도 결국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통해 완성된다. 그리고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는 디자인의 고유한 역할이다. 참고로 '사용이 재미있는 감성이 풍부한 터치스크린' 경험을 만든 디자이너는 바스 오딩(Bas Ording)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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