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문재인의 ‘예스냐 노냐’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수도권 병상 공동대응 상황실에서 주영수 국립중앙의료원 기획조정실장으로부터 중증 병상 확보 현황을 보고받은 뒤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수도권 병상 공동대응 상황실에서 주영수 국립중앙의료원 기획조정실장으로부터 중증 병상 확보 현황을 보고받은 뒤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야마시타 도모유키(山下奉文). 태평양전쟁 종전 후 마닐라 전범재판에서 '마닐라 대학살'의 책임 전범으로 기소돼 사형당한 일본 장성이다. 일본 육군 제25군을 이끌고 말레이에 이어 영국의 아시아 거점이었던 싱가포르까지 점령해 일본인들 사이에서 '말레이의 호랑이'로 불렸다.

그에 대한 가장 유명한 일화는 당시 싱가포르 주둔 영국군 사령관 아서 퍼시벌과 항복협상에서 무조건 항복을 받아들일지 말지 결정하라며 "예스카 노카!"(예스냐 노냐)라고 퍼시벌을 윽박지른 것이 있다. 퍼시벌이 항복이 아닌 정전(停戰)을 요구하며 이런저런 조건을 내걸자 그렇게 호통쳤다고 한다.

이에 대해 도모유키는 후일 와전이라고 주장했다. 일본 통역관의 영어 실력이 신통치 않아 협상이 늘어지자 통역에게 "복잡하게 말하지 말고 항복할 건지 아닌지 '예스냐 노냐로 간단히 물어봐'라고 했을 뿐"이며 이 말이 당시 일본 기자들에 의해 윤색돼 "야마시타, 퍼시벌에게 '예스카 노카'를 요구"로 타전됐고 그렇게 굳어지게 됐다는 것이다.

사실이라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한 다리 거쳤을 뿐 '예스냐 노냐'가 영국군에 대한 굴욕의 강요임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도모유키의 해명은 구차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전쟁 중에는 이렇게 할 수도 있고 나아가 그렇게 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평화시에 정치지도자가 자국민에게 이렇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 그것은 폭압(暴壓) 통치다.

문재인 대통령이 의사들에게 이렇게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의료계의 집단 휴진 결정에 대해 "코로나 상황이 급박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시간이 많지 않고,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법을 집행해야 하는 정부의 입장에서 선택지는 많지 않다"고 했다. '무조건 파업을 풀어라. 그렇지 않으면 재미없다'는 소리다.

의료계 파업은 정부가 촉발했다. 공공의대 설립 계획이다. 의료계는 정부가 계획부터 철회해야 의료 현장에 복귀할 수 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이런 소리에는 귀를 닫은 채 무조건 파업을 풀라고 한다. 공공의대 설립을 수용하라며 '예스냐 노냐'고 윽박지르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 재확산 와중에 의료계의 반발이 뻔히 예상되는 공공의대 설립을 발표한 속셈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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