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은 시민사회가 형성된 이후 오랫동안 사회활동의 제복을 제공해 온 도시다. 모든 사회의 근대화에는 이 거리가 표준으로 지정한 옷이 국가의 포장지 역할을 해왔다.
한 세기가 넘은 유구한 역사를 가진 가게들의 파업과 몰락, 우후죽순처럼 쓰러져 가는 가게들을 보며 시대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양복'이라는 것은 어떤 옷인가. 양복엔 1600년대 유럽, 특히 영국의 문화와 국민성이 깃들어 있다. 흑사병과 대화재를 거치며 담금질되어온 시대의 조형이다.
재정적인 궁핍과 타버린 국토를 바라보며 진실함과 소박함을 내세운 청교도들이 득세했고, 화려한 치장보다는 단정함과 간결함을 옷의 기본으로 삼았다.
칙칙하고 어두운 색은 그들의 근검을 뜻한다. 목의 깃과 소매로 살짝 보이는 흰색의 셔츠는 그들의 위생과 인간관계의 의리, 진실성을 상징한다.
우리가 슈트라고 부르는 옷이 400년 전 그들에 의해 한 나라의 복장으로 공인되었던 것이다. 찰스 2세의 양복을 공인한다는 칙령은 복장으로서 국민의 정신을 통합하겠다는 저의가 깔려 있다. 영국인들은 유럽 대륙의 화려함과 낭만, 그에 따라 자연히 딸려오는 낭만적 여성성을 과감히 버렸다.
또 영국 양복은 선과 형태보다는 인체에 또 다른 건축을 해서 양감을 만드는 '쌓아올림'의 아름다움이다.
처진 어깨에 패드를 올려 보강하고 처진 가슴을 말총으로 덧대서 단단한 가슴을 만드는 것이 양복이 갖고 있는 '구축성'이다. 유서 깊은 양복점의 몰락은 시대가 더 이상 그러한 성질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듯하다. 양복이 태생적으로 지닌 계급성과 구축성의 한계를 우리는 현재에 보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적응하며 진화해 온 우리 옷의 미감에서 다가올 미래의 옷을 모색하려 한다.
서양의 옷과는 판이하며 이웃에 인접해 있는 양국과는 다른 '맵자하다'라고 표현되는 선과 리듬에서 영감을 얻길 기대한다.
쌍영총의 묘주 부인 저고리 섶은 고려 말의 요선 철릭의 선으로 흐른다.
또다시 그것은 조선 초의 삼회장 저고리의 도련으로 이어졌다. 단지 길이가 길어졌거나 짧아졌다뿐이지 시대를 거슬러 현재까지 일관되게 흐르는 미감을 발견할 수 있다.
목 깃의 선을 과도하게 침범하지 않으며 수평으로 펼쳐진 어깨의 선, 다시 겨드랑이를 타고 작은 예각을 이루며 세로로 여러 다발의 직선이 펼쳐진다.
그 끝동은 우아하고 과하지 않은 호를 이루며 무수한 선율의 종지부를 찍었다. 이러한 선의 사용 방법과 휘어짐의 정도, 그리고 배색에서 우리 옷을 해석할 수 있고 미래의 디자인을 위해 차용해야 할 영감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선을 적용해 서양의 방식으로 쌓아 올리면 그것으로 원래 것이 가지고 있던 계급성과 무분별한 구축의 한계를 극복하지 않을까. 자연 그대로의 것-소재뿐 아니라 기교를 과도하게 넣지 않아 인체를 편안히 하는 것도 포함된다-과 선의 독창성은 새로운 시대의 옷을 위해 발전시키고 다시 탐구해 볼 만한 유산이다.
옷을 짓는 이는 지금의 위기를 창조의 발판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단지 양복을 만드는 테일러뿐만 아니라 손을 써서 작품을 만드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서양의 것에 대한 맹목적인 환상이 도를 넘어 단순 모방만을 일삼는 방식은 제일 먼저 극복해야 할 악습이다.
점차 진행되는 양복의 몰락을 보며 공예가 얼어붙는 이 시점에 새로운 자각과 그에 맞는 행동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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