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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코로나 시대의 영화, 영화관

이승우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창작지원팀장
이승우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창작지원팀장

2020년은 모두에게 혹독한 한 해였다. 영화계도 그랬다. 코로나 공포가 절정이었던 작년 4~5월의 극장 관객이 전년 동월 대비 10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을 때 영화계는 전례 없는 패닉에 빠졌다. 1천만 영화가 5편이었던 2019년과 달리, 2020년 최고흥행작 '남산의 부장들'의 박스오피스는 고작 475만 명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1월 개봉으로 코로나의 직격탄을 피했기에 가능한 수치였다. 수요의 위축은 공급의 위축으로 이어졌다. 예견된 흥행참패를 피하기 위해 대형 배급사와 제작사들은 극장 개봉을 무기한 연기했다. 영화산업은 '관객이 없어 개봉이 불발되고, 볼 만한 영화가 없어 관객이 외면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갇힌 듯했다.

독립영화 프로듀서의 관점에서도 지난해는 혹독하긴 마찬가지였다. 가난한 이에게 유독 더 가혹한 재난의 불평등은 독립영화계를 고사 직전의 상황까지 몰고 갔다. 그나마 독립영화계는 팬데믹 이전에도 항상 팬데믹 상황마냥 근근이 유지되고 있었기에 고난에 대한 적응력이 더 뛰어났다는 점 정도가 웃픈 위안거리였다.

그럼에도 흙탕물이 서서히 가라앉고 시야가 트이면서 보이게 되는 몇몇 긍정적인 신호들도 있다. 멀티플렉스들이 개봉작 급감에 곤욕을 치를 때도 독립예술전용관들은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신작 상영을 이어나갔다. 많은 중소규모의 배급사가 용기 있게 개봉해 준 덕이었다. 그 동안 멀티플렉스에서 스크린 하나 잡기 힘들었던 독립예술영화들은 전보다 많은 기회를 얻게 되었고, 실제로 전년 대비 2020년의 독립예술영화 상영횟수는 23.8% 증가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저예산 독립영화들이 한국영화 저력의 또 다른 근간임을 증명해낸 한 해였다. 2019년에 비해 3배 가까운 비약적 증가를 보여준 재개봉 영화에도 일견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빈 스크린을 메우기 위한 임시변통의 성격이 컸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몇몇 작품의 스크린 독점에 밀려 일찍 종영해야 했던 비운의 작품이나 과거의 빛나는 명작들을 스크린으로 다시 만날 기회를 얻게 된 것은 분명 긍정적이었다.

그 덕에 우리는 '화양연화'나 '아비정전', '1917' 등 재개봉작, 그리고 영화감독 에드워드 양의 아름다운 영화들을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었다. 여러 영화를 주제별로 묶은 다양하고 참신한 기획전도 유례없이 풍성했고, 극장 체인마다 특색 있는 큐레이션 덕에 새롭게 재조명된 작품도 많았다. 생존하기 위한 극장 체인의 처절한 몸부림이 관객들에게 관람 기회의 다양성이라는 큰 선물을 안겨주었다.

2021년에도 여전히 어려울 극장을 많이 찾아주시기를 바란다. 예술독립영화전용관이 아니라 어느 멀티플렉스 상영관이어도 괜찮다. 다양한 기획전이 있고 그동안 보지 못했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다만 이 위기가 잦아들고 한두 편의 오락영화가 모든 멀티플렉스 스크린을 장악하는 상황이 다시 찾아올 때 함께 목소리를 내어 주시기 바란다. 햇빛을 막고 서있던 고목이 쓰러진 다음에야 보이게 된 수많은 들풀과 들꽃들도 같이 기억해 주시기 바란다.

이승우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창작지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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