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가 코로나19로 인한 대혼란을 극복한 것은 의료계와 소방, 방역 당국에 종사하는 수많은 이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난해 신천지 대구교회를 중심으로 코로나19가 창궐한 가운데서도 방역 최전선에서 묵묵히 땀방울을 흘린 이들이 있었다. 지난해 2월 18일 대구 첫 확진자 발생 후 지금까지의 기억을 의사, 간호사, 구급대원, 방역 담당 공무원과 함께 되돌아봤다.
◆"집단면역 형성 때까지 일상 방역 지켜야"
혼란의 중심이었던 대구가 지금은 방역 모범 도시로 주목받는 데는 민복기(53) 대구시의사회 코로나19 대책본부장(대구시의사회 부회장)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민 본부장은 전쟁터와 다름 없었던 당시 코로나19 방역의 사령관으로서 병실·의료 인력 확보,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와 생활치료센터 개설 등 방역 전반을 살피는 임무를 맡았다.
민 본부장은 생활치료센터 운영이 시작된 지난해 3월 2일 전까지 대구시청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내야 했다.
민 본부장은 "마스크, 방호복 등 물품을 요청하는 전화가 여기저기서 쏟아지고 옆에서는 현장 공무원들이 줄을 지어 문의를 해 왔다"며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2월 말에는 며칠간 잠을 제대로 잔 기억이 없다. 3월 말에 체중을 재니 9㎏이 줄어 있었다"고 말했다.
팬데믹(대유행) 초반 그가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병상 확보였다. 31번 확진자가 발생한 다음 날인 2월 19일 민 본부장이 계명대 동산의료원과 국군대구병원을 전담병원으로 지정하자는 의견을 낸 끝에 병상 확보에 숨통을 틀 수 있었다. 특히 국군대구병원이 6일 만에 음압병상 300여 개를 확보한 것은 미 육군을 비롯한 외신에서 대구 방역에 관심을 가진 계기였다.
그는 무엇보다 전국에서 대구로 차출된 공중보건의들을 떠올리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어떤 설명도 듣지 못 한 채 대구에 온 공중보건의들이 도착하자마자 바로 검체 채취 현장에 가겠다고 자원했기 때문이다.
미국, 독일, 호주, 일본 등 외신과도 셀 수 없이 인터뷰를 한 그는 지금도 전 세계 의사들에게 직접 경험한 팬데믹 상황이나 코로나19 치료법, 예방법 등을 온라인으로 공유한다.
현재 대구시 트윈데믹 대책추진단장도 맡은 그는 예방 접종이 시작되어도 일상이 지금과 달라져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에 대한 집단면역이 형성되기까지 일상 방역 수칙은 그대로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에 하던 방역, 치료 업무에다 백신 접종까지 해야 하는 의료 현장은 앞으로 더욱 바쁘게 돌아갈 것입니다. 마스크 착용, 거리두기 등 기본 방역이 느슨해지지 않도록 코로나 종식 때까지 대구 시민의 저력을 다시 한 번 발휘해야 합니다."
◆"경각심 끝까지 잃지 않아야"
코로나19 퇴치의 최전선에서 지난 1년간 근무한 대구의료원 감염관리센터 소속 임나래(35) 간호사. 임 간호사는 지난해 2~3월을 '모든 것이 낯설고 힘들었던 때'라고 떠올렸다. 단기간에 병동이 환자로 가득 차는 등 13년차 경력의 그에게도 매일이 새롭고 낯선 경험이었다.
임 간호사는 "보호구, 방호복을 입고 근무해야 해 덥고 숨이 차는 것은 물론, 처음 겪어 본 코로나19 환자를 대하면서 시행착오도 많았다"며 "파견 인력이 왔지만 그래도 현장에서는 인력이 부족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임 간호사는 지난해 3월 중순까지는 시간이 눈코 뜰 새 없이 흘러갔다고 말했다. 경증 환자를 대상으로 한 생활치료센터가 운영된 후에도 병동 상황은 여전히 전쟁터였다. 중증도가 높은 환자가 몰리면서 체력적으로 힘든 상황이 지속됐기 때문이다.
특히 요양병원에서 집단 감염된 환자들이 대거 이송되면서 간호사들은 이들의 식사 보조, 기저귀 교체, 걷기 운동 보조, 자세 바꿔주기 등도 함께 해야 했다.
임 간호사는 대부분 환자가 의료진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지만, 간혹 과도한 요구를 해 힘든 경우도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병상이 없는데 1인실로 바꿔달라거나, 감염 우려로 반입이 금지된 배달 음식을 요구해 난감했던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임 간호사는 코로나19 경각심이 느슨해진 때일수록 더욱 방역 수칙에 관심을 가지자고 당부했다. 그는 현장에서 겪은 코로나19에 대해 '증세를 예측하기 어려운 무서운 감염병'이라고 강조했다.
"오전에 치료를 받으러 멀쩡히 걸어온 환자가 당일 오후에 갑자기 안 좋아지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증세가 너무 다양합니다. 팬데믹을 이겨낸 시민들이 조금만 더 경각심을 갖고 코로나 퇴치를 위해 힘을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시민들 응원·격려 잊지 못 할 것"
허성국(42) 대구 서부소방서 소방장은 지난해 31번 확진자가 나오자마자 검체 수송, 확진자 이송 등의 업무에 투입됐다. 대구에 병상이 부족해 확진자를 타지로 이송하면서 인천, 전남 등 대형병원이 있는 타 시도는 거의 다녀왔을 정도다.
그는 코로나19의 확산세와 처음 겪어본 팬데믹 사태에 두려움이 든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특히 지난해 2월 말 업무 중 확진자의 접촉자로 분류돼 자가격리까지 된 적도 있었다.
허 소방장은 "자녀들이 어려 솔직히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현장을 지키고 있을 동료들을 떠올리면 빨리 복귀해 힘을 보태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불안했을 가족들도 항상 응원해 줘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그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광주 빛고을전남대병원으로 확진자를 이송했을 때다. 당시 광주가 '코로나 청정지역'이어서 확진자들을 기피하지는 않을까 걱정한 것이다. 하지만 모두 기우에 불과했다. 광주 시민과 병원 관계자들이 '힘내라 대구', '화이팅' 등이 적힌 현수막을 흔들며 박수와 환호로 이들을 격려해 줬다.
허 소방장은 "병원 인근에서부터 교통 통제를 해준 경찰관들을 비롯해 시민들이 한마음으로 응원해주는 것을 느껴 뭉클한 감정이 넘쳤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코로나 퇴치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구급대원을 믿고 지나친 불안감은 가지지 말라고 전했다. 실제로 소방당국에 따르면 대구의 소방구급대는 지금까지 1만4천600여 건의 확진자 이송을 했지만 업무 중 코로나19가 전파된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
"보호복으로 무장한 구급대원을 보더라도 이는 감염과 전파 방지를 위한 조치이니 불안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시민들의 손과 발이라는 마음으로 앞으로도 코로나와의 싸움에 적극 뛰어들겠습니다."
◆"시민, 동료들 덕분에 어려운 시기 견뎌"
김기동(55) 대구 서구보건소 의료지원팀장은 지난해 2월 말 같은 부서 상당수 동료들이 자가격리된 상황에서 코로나19 업무에 투입됐다. 맹장염으로 수술을 받은 지 1주일 만이었다. 실밥도 덜 푼 상태에서 출근한 김 팀장은 인수인계를 받을 틈도 없이 코로나19 지원 업무에 나섰다.
김 팀장은 "수송통, 아이스박스 등 방역에 필요한 모든 물품이 부족했다. 시에 '내일 검사할 물량이 부족하니 지원해달라'고 요청하는 게 일이었다"며 "설상가상으로 서구 한 요양병원에 집단감염이 발생해 관련 업무도 해야 했다. 최소의 인력으로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업무를 하다 보니 몸이 열 개라도 부족했다"고 말했다.
당시 김 팀장의 하루 평균 근무 시간은 12시간 이상이었다. 검체 채취 샘플이 이송되는 시각인 오전 8시 전에는 출근해야 했고, 관련 통계를 내는 일 등 하루 일과를 마치면 오후 8시가 훌쩍 지난 시간이었다.
김 팀장은 업무 중 가장 두려웠을 때는 경찰에서 '여관에 사체가 한 구 있어 코로나 검사가 필요하다'는 요청이 왔을 때라고 떠올렸다.
그는 "차마 부하 직원에게 가라는 소리를 할 수 없었다. 의사 한 명과 같이 현장에 가서 검사를 했고 다행히 음성으로 나왔다"며 "동료들 모두 퇴근할 때는 소독제로 옷을 적실 정도로 소독한 후 퇴근했고, 귀가 후에도 가족과 따로 생활하는 것은 물론이었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 김 팀장이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너나 할 것 없이 방역 업무에 동참한 동료들과 시민들의 격려 덕분이었다. 당시 서구청 타 부서 소속 많은 공무원들이 보건소 파견을 자원했다. 보건소의 도움으로 입시를 무사히 마친 자가격리 수험생, 차에서 자가격리를 하다 장소를 제공받은 시민이 건넨 감사의 한 마디 역시 큰 힘이 됐다.
"방역 관계자들의 모든 헌신이 향후 대구 방역모델에 귀한 자양분이 될 것입니다. 접종이 시작된 후에도 방역 당국에 적극 협조해 주신다면 코로나 퇴치를 앞당길 수 있을 것입니다."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