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가 최근 뉴욕증시에서 기록적인 롤러코스터 장세를 보였던 게임스톱과 관련해 연쇄 청문회를 열기로 했다. 게임스톱 사태의 당사자들인 로빈후드와 시타델, 레딧의 최고경영자(CEO)들이 모두 출석해 공매도 사태에 대해 증언할 예정이다. 미국 의회는 또 지난 1년간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향한 증오범죄가 급증하자 관련 청문회를 추진키로 했다. 미국 의회는 이처럼 사회적, 국가적 사안이 발생했을 때에 청문회를 매우 활발하게 연다. 청문회가 연중 상시적으로 열린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미국 의회 청문회는 네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위원회가 심사하는 법안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최하는 '입법청문회'(legislative hearing), 의회의 고유 권한인 행정부 감독을 위해 행정부가 정책을 제대로 집행하지 못한다고 판단할 때 개최하는 '감독청문회'(oversight hearing), 공무원의 비리의혹 조사 차원이나, 일반시민 또는 회사의 활동에 대한 입법적 개선이 필요할 때 열리는 '조사청문회'(investigative hearing), 대통령이 지명하는 행정부나 사법부의 고위직에 대한 인준 여부를 결정하는 '인준청문회'(confirmation hearing)로 이는 상원에서만 실시된다.
미국 의회는 청문회를 활발하게 운영한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영국, 프랑스 등 서구 선진국가들과 일본 등은 미국 만큼 청문회가 활발하지 않다. 의회 중심인 의원내각제 국가들 조차 의회와 행정부가 대통령제 국가처럼 독립적이지 않고 의원이 장관을 맡는 내각 중심으로 돌아가다 보니 청문회가 활발하지 않다. 우리나라도 미국의 입법청문회에 해당하는 공청회를 열고 장관 등 고위직 인준에 대한 인사 청문회를 여는 데 머물고 있다.
미국 의회는 활발한 청문회를 통해 사회 현실이나 제도 등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행정부를 견제하고 대책을 세우는 과정에서 독립적이고 막강한 힘을 드러낸다. 미국은 청문회 없이는 법안이 만들어질 수 없다고 할 만큼 청문회가 의회 활동의 필수불가결한 과정으로 정착되어 있다. 국민들이 청문회 과정을 지켜보면서 사회 현안과 입법 과정을 파악할 수 있게 배려한다는 의미와 의회가 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효과도 노린다. 미국 민주주의는 이처럼 제도적으로 튼튼한 틀 속에서 역동적으로 작동함으로써 최근 위기에 빠졌다는 비판을 받고 있음에도 삼권분립의 이상적 모델로 간주된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22일 산업재해가 많이 일어난 현대건설·GS건설·포스코건설, 쿠팡·CJ대한통운·롯데글로벌로지스, 포스코·현대중공업·LG디스플레이 등 9개 기업 대표를 불러, 사상 첫 '산업재해 청문회'를 열었다. 해당 기업에서 일한 노동자들의 산재 승인 건수는 최근 5년간 두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청문회는 환노위 국민의힘 간사인 임이자 의원이 상임위 업무보고에 기업 대표들을 불러 산재 관련 내용을 듣자고 제안한 뒤 민주당이 이 제안을 확대해 청문회를 열자고 해 성사됐다. 청문회는 재적 위원 3분의 1 이상의 요구가 필요하다.

우리 국회는 그간 입법을 위한 공청회, 인사 청문회는 자주 열었으나 미국의 '조사 청문회'에 해당하는 청문회는 별로 열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최순실 게이트' 등 커다란 사건이 터졌을때 국정조사가 이뤄지고 그 과정에서 청문회가 열리긴 하지만 상시적인 청문회가 열리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국정조사는 재적 의원 4분의1 이상이 서명하면 할 수 있지만 여야가 국정조사 채택 여부를 둘러싸고 정쟁을 벌이거나 정치 공세를 벌이는데 이용되는 측면도 많아 여야 합의가 쉽지 않으며 열리게 되더라도 부정기적으로 간혹 열리게 될 뿐이다.
그런 면에서 22일 청문회는 관심을 모았으며 의미도 적지 않았다. 산재의 원인을 짚고 이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대안을 찾기 위한 생산적인 논의의 장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은 국정조사 때처럼 기업 대표들을 고압적으로 대하며 호통치는 모습을 자주 보였고 기업 대표들은 이 순간만 지나면 된다는듯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하는 데만 급급했다. 기업 대표들 중에는 산재를 노동자의 과실 탓으로 돌리거나 질환 관련 산재에 전문가 소견이 필요하다며 산재 인정에 인색한 인식을 내비쳤다. 산재가 많은 기업의 대표들이 청문회에까지 나와 산재를 대하는 안이한 자세를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산재를 줄일 구체적인 방안도 내놓지 않아 실망스럽기 그지 없었다.
이날 청문회에서 포스코는 산재를 감추는 데 급급하다는 지적을 받았고 쿠팡은 노동자 산재 인정을 방해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쿠팡이 불인정 의견을 낸 사건들 중 78%는 산재로 인정됐다는 사실이 지적됐다. 한영석 현대중공업 대표이사는 "불안전한 (시설) 상태는 투자를 해서 많이 바꿀 수 있지만 (노동자의) 불안전한 행동은 상당히 (바꾸기) 어렵다"고 말했다가 산재 책임을 노동자 개인 책임으로 돌린다는 비판을 받았다. 건설사들이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의무적으로 둬야 하는 안전·보건관리자를 인원 맞추기에만 급급해 비정규직으로 채용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날 청문회가 미흡하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의미를 둘 여지는 충분하다. 우선적으로 기업 대표들의 산재에 대한 낮은 인식과 그것을 바꿔 나가야 한다는 현실을 짚을 수 있었다. 기업 대표들이 적극적인 대책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산재를 줄여 나가겠다는 다짐을 하게 함으로써 압박과 감시의 효과도 생겨났다. 기업 대표들은 당장 3월 주총에서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안전보건계획을 승인받아야 할 것이다. 한 건설사 대표는 안전을 강화한 새 비계(건축 공사 때 높은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설치하는 임시가설물) 시스템을 도입해 추락 사고를 줄일 수 있었다며 정책에 참고할 만한 발언을 했다.
무엇보다 '산재 청문회'가 국회의 정책 기능을 더욱 활성화하는 계기가 되기를 국민은 바랄 것이다. 야당 의원의 제안에 여당이 긍정적으로 응해 의제나 증인 채택 등에 관해 별다른 마찰음 없이 청문회가 마련될 수 있었던 점을 평가할 만하다. 산재 청문회가 기업의 산재 예방 노력을 촉진함으로써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산재 사망률 1위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했으면 한다. 첫 산재 청문회에서 구태가 빚어지긴 했지만 앞으로 다른 상임위원회에서도 청문회가 확대돼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생산적인 정책 논의를 함으로써 제대로 일하는 국회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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