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뉴스Insight] 공직자 재산등록만으론 부족하다

'돈이 지배하는 세상' 공직자 투기 '유혹'
차명 투기, 도덕적 해이 극복 방안 필요

최창원 정부합동조사단장(국무1차장)이 지난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 투기 의심자에 대한 2차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 전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창원 정부합동조사단장(국무1차장)이 지난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 투기 의심자에 대한 2차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 전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교성 디지털 논설위원
김교성 디지털 논설위원

행정고시와 사법고시, 기술고시, 지방고시 등 각종 고시 출신의 공직자 상당수는 명예와 함께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유지한다. 우리나라 공직자의 월급이 많지 않은데도 그렇다.

기자 활동으로 여러 출입처를 다니면서 알게 된 간부급 공직자들은 대부분 장가를 잘 갔다는 느낌을 받는다. 의사, 약사 등 돈을 잘 버는 부인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면 재력 있는 처가를 두고 있다.

'돈이 지배하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들 공직자의 처세는 매우 현명해 보인다. 검사나 판사 월급으로 얼마나 소신껏 일할 수 있을까. 스스로 사퇴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나 판사 출신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장가를 잘 간 것 아닌가.

1급 공무원을 지낸 친구의 해석은 이렇다. 주위를 보면 의도적인 것은 아니고 고시 합격 후 중매를 통하다 보니 그런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 안정 속에 승승장구하는 공직자는 극히 일부이며 대다수는 박봉 속에 명예를 지키며 살고 있다.

일부 공직자의 내부 정보를 활용한 부정한 행위는 예나 지금이나 끊임없이 존재했다. 이들은 돈에 대한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땅과 집, 주식 등 각종 투기 행위로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켰다. 승진 대신 돈이 되는 보직을 택하는 이들이 공공연히 있을 정도였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의 수도권 공공개발지역 땅 투기 의혹 파문이 우리나라 공직자 전체로 확산 중이다. 연일 공직자들의 내부 정부를 이용한 땅 투기, 집 투기 사례가 터져 나오고 있다.

공무원과 선출직 공직자들의 투기 의혹 확산으로 민심이 요동치자 정부와 여당이 극약처방을 꺼내 들었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당 대표 직무대행은 지난 19일 고위 당·정·청 협의회에서 "부동산 관련 업무를 하는 공직자는 재산등록을 의무화하고, 앞으로 공무원·공공기관·지자체·지방 공기업을 포함한 모든 공직자로 재산등록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공직자 부동산 거래 시 사전신고제 도입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라고 했다.

현재 우리나라 공직자윤리법은 4급 이상 공무원(일부 특정 분야는 7급 이상)과 공직 유관단체 임직원에 대해서는 재산등록, 1급 이상 고위공직자는 재산 공개를 하도록 하고 있다. 등록 재산은 해당 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 심사하고 있다.

시행 중인 공직자 재산등록과 공개제도가 고위 공무원이나 국회의원 등 선출직의 비리를 과거보다 억제한 것은 사실이다. 치열한 경쟁이 뒤따르는 고위직이나 선출직에 오르려면 재산 문제 등 자기관리에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재산등록을 모든 공무원과 공공기관 임직원까지 확대하면 공직 사회 전반을 깨끗하게 하는 효과가 기대된다. 공직자들이 연루된 투기나 뇌물수수 등의 비리가 줄어들 것이다. 공직자들은 해마다 늘어나고 줄어드는 재산에 대해 소명해야 하는 만큼 심리적 압박을 받게 되고 본인이나 배우자, 직계존비속의 재산 관리에 신경을 기울이게 된다.

우리 사회는 공직자들에게 점점 더 높은 수준의 윤리의식과 도덕성을 요구하고 있다. 김영란법을 통해 이를 학습하고 있다. 언론인도 김영란법 대상인데, 시행 초기에는 불만과 불편이 있었지만 매사 조심하면서 국민 눈높이에 맞추고 있다. 김영란법은 공직 사회 전체에 큰 영향을 미쳐 그동안 관행이란 이름으로 이뤄지던 폐단을 줄이고 있다.

하지만 모든 공직자의 재산을 등록하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국민 신뢰를 얻으려면 신고 재산에 대한 꼼꼼한 검증이 필요하고 허위 등록과 부정한 재산축적에 대한 단호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 현재 1급 이상으로 한정한 공개 범위도 확대되어야 한다.

차명 투기에 대한 제도적인 한계도 있다. 재산등록은 본인과 배우자, 직계존비속으로 제한돼 형제·자매나 배우자 친인척 명의 등으로 차명 투기를 하면 걸러낼 방법이 없다. LH 파문으로 대구시와 경상북도에서도 대규모 도시개발사업 땅 투기 의혹을 전수조사하고 있는데 해당 지역 원주민들은 공직자 형제의 배우자 명의 등 차명으로 투기가 이뤄졌는데 이를 밝혀낼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더불어 투기 행위가 공직자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치유가 쉽지 않아 보인다. 우리 사회는 투기와 투자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총체적인 도덕 불감증으로 사회 전체가 투자를 명목으로 투기에 빠져들고 있다. 투기로 절대 득 볼 수 없는 법적인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제투명성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19년 부패인식지수(청렴도)는 5.9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가운데 27위로 하위권이다. 일본(7.3)을 비롯한 OECD 회원국 절반인 18개국의 부패인식지수가 7점 이상인 것을 고려하면 갈 길이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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