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열일곱의 나로 돌아간 시간

김지혜 그림책서점
김지혜 그림책서점 '소소밀밀' 대표

'우리가 오늘 만난다면 얼마만이지?'

메시지 창에 문자를 입력하며 친구에게 물었다. '백년만?? 다행히 오조오억만 년은 아니야.' 마지막으로 만났던 때가 언제였는지 헤아려보았지만, 끊어진 필름처럼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간 연락은 뜨문뜨문 주고받았지만, 쉽게 만날 수가 없었다.

친구 집은 우리가 다녔던 고등학교 근처에 있었다. 나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친정 집 앞에서 버스를 탔다. 한때 매일 보았던 차창 밖 풍경인데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친구와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단짝이었고, 서로 다른 대학에 다녔지만, 이따금 만나 어제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허물없는 사이였다. 그러다 결혼과 육아, 일에 치여, 가끔 안부만 묻는 사이가 돼버렸다.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기 위해 출입문 앞에 서 있는데, 정거장 의자에 앉아 있는 친구의 모습이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100년만이라고 해도 알아 볼 친구의 모습이었다.

"서울은 언제 온 거야? 우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우리는 괜찮은 식당을 찾기 위해 정처 없이 걸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디에 가서 무얼 먹는지 보다 지금 우리의 시간이 더 소중하니까.

우리는 아무 식당에 들어가 보이는 대로 음식을 주문하고, 쌓인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부모님의 건강문제, 아이 이야기, 남편 이야기…. 다행히 나는 친구보다 먼저 결혼해 아이를 낳아 키운 육아 선배로서,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보태줄 수 있었다. 어찌 되었던 우리는 같은 시간 속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며 살고 있었다.

밥을 다 먹고, 함께 교정을 걸었다. 나무가 길게 늘어선 곳을 지나, 연못 앞 벤치에 앉아 따뜻한 차를 마셨다. "너 기억나? 우리 수학여행 마치고 서울 오자마자 노래방 갔던 거?" 경주로 수학여행을 다녀왔던 우리는 이대로 집에 갈 수 없다며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노래방에 갔다. 우리의 첫 일탈이었고, 그 일을 계기로 더 많이 친해졌다.

"그럼 기억나지, 그때 함께 갔던 친구들이 누구였더라. 선경이, 은주, 미영이, 혜란이…."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이름들인데 엮인 사탕처럼 줄줄이 떠올랐다. "걔네들은 지금 뭐 하고 살까? 잘 살고 있겠지?"

아쉬운 시간을 접고, 나는 다시 버스에 올라탔다. 우리는 늘 그랬듯, 내일도 만날 것처럼 애틋한 포옹도 아쉬운 기색도 없이 헤어졌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경주행 기차를 탔다. 방금 헤어졌는데, 친구를 만나기 전보다 더 많이 친구가 보고 싶었다. 기차 옆자리에 친구가 앉아 있는 상상을 했다. 떡볶이를 먹으며 일탈을 꿈꾸었던 그때처럼, 누군가의 엄마이자 아내로 살아가고 있는 옷을 잠시 가방 속에 넣어두고, 오직 설렘만을 안고 떠나는 상상.

올해가 가기 전에 한 번 더 보자라고 메시지를 주고받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또 해를 넘기게 될 거라는 것을. 다행히 우리는 언제든 열일곱 살로 돌아갈 수 있는 타임머신 같은 우정을 지니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현재를 잘 살아낼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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