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알못' 무관심, 정치적 악순환…한 표가 삶을 바꾼다

당신의 한 걸음은 내일 위한 큰 거름
의혹 많은 '약대급 비호감' 후보들…진보·보수 극단 대결 속 '내전'까지
선거 가까워오는데 지지도 역주행
취업 걱정에 20대 36.8% '무관심'…민주화 주역 50대는 '정치 혐오증'
정책 경쟁으로 정치 참여 이끌어야

타투 법제화 추진은 합법화를 요구하는 시민 참여와 연대에 대해 정치권이 적극 응답하면서 비롯됐다. 공론의 장에서 찬반 논란이 뜨겁게 전개된 것도 의미 있다. 사진은 지난 6월 타투업을 합법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한 정의당 류호정 의원(왼쪽)이 지난 11월 3일 국회 의원회관 앞에서 열린 타투이스트와 함께 하는 타투 스티커 체험 행사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제공.
타투 법제화 추진은 합법화를 요구하는 시민 참여와 연대에 대해 정치권이 적극 응답하면서 비롯됐다. 공론의 장에서 찬반 논란이 뜨겁게 전개된 것도 의미 있다. 사진은 지난 6월 타투업을 합법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한 정의당 류호정 의원(왼쪽)이 지난 11월 3일 국회 의원회관 앞에서 열린 타투이스트와 함께 하는 타투 스티커 체험 행사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제공.

#1. 졸업을 앞둔 대학생 A씨는 인근의 할머니 집을 찾지 않는다. 취직 준비에, 아르바이트 하기 벅찬 데 종일 TV를 끼고 사는 할머니는 정치 얘기뿐이다. 대통령을 잘 뽑아야 나라 발전하고, 일자리 구하기 쉬워 진다는 데 동의하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들다.

# A씨가 정치와 담을 쌓았다면 50대 B씨는 정치가 혐오스러운 경우다. 일곱 번 대통령 선거 투표에 참여했지만, 이번 대선처럼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었던 적은 처음이다. 비전은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고, 도덕성 문제만 드러나니 투표장에 갈 마음이 사라졌다.

◆20대 무관심에 혐오 더해진 비호감 대선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 전개되는 배경이다. 이른바 '요즘 것'들로 지칭되는 20대의 '정알못'(정치 알지 못하는 사람)은 갈수록 심화되는 양상이고, 민주화의 주역이었다고 자임하는 50대는 정치 실망과 혐오증을 겪고 있다.

먼저 20대의 탈(脫)정치화가 심각하다. 한국갤럽이 지난 20~21일 전국 성인 남녀 1천1명을 대상으로 한 대선 후보 지지도 설문에서 18~29세는 '지지 후보 없음'(24.0%)을 가장 많이 골랐다. '모름·응답거절'은 12.8%로 전 연령 중 유일하게 두 자릿수였다. 두 응답을 합치면 4명 중 1명꼴로 가장 무관심하게 반응했다. 같은 MZ 세대인 30대(20.5%)와 차이가 뚜렷하다.

또 열 명 중 서너 명(34.3%)은 지지 정당이 없고, 8명 가까이(76.4%) 향후 두 달 내 '얼마든지 다른 사람 지지로 바꿀 수 있다'고 했다. 이들의 문재인 대통령 직무수행평가는 긍정 24.0%, 부정 68.3%로 빈곤 비중이 큰 60대 이상(긍정 29.6%, 부정 62.0%)에 견줘 분노, 박탈감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여야가 피선거권을 25세에서 18세로 낮추기로 했다지만, 20대로서는 정치 사안에 관심을 갖기에 앞서 취업 걱정이 먼저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에 가위눌린 상황에서 피선거권 조정 같은 정치 현안에 관심을 쏟을 수 있을까? 참정권 확대, 국회 법사위 구성, 예결특위 소소위 같은 말도 먼 나라 일일 뿐이다. 무관심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제대로 관심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환경부터 걸림돌이다. 거대담론에 함몰되기보다 개인의 행복 추구를 우선시하는 경향이라지만, 정치를 거치지 않고선 내 삶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게 문제다.

◆정책 경쟁·젊은 층 눈높이 공약 나와야

네거티브 전쟁이 대선 판을 요동치게 하면서 눈을 감는 유권자가 급증했다. 양 진영이 상대를 향해 흠집 내기에 몰두하는 사이 정책과 비전 경쟁은 실종됐고, 실망과 정치 혐오증을 키워 무관심층을 양산하는 분위기다.

최근만 해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장남의 대학 입학 의혹,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부인 김건희 씨의 허위 이력 의혹이 다른 이슈들을 블랙홀처럼 빨아 들였다. 이 후보의 '본부장'(본인·부인·장모), 윤 후보의 대장동 의혹 공세는 시한폭탄이다.

역대 대선마다 네거티브전이 펼쳐졌지만, 이번처럼 '내전'(內戰) 양상으로 치달은 경우는 처음이라는 게 정치권의 공통된 인식이다. 진보와 보수 양진영의 극단 대결 속에 정치 유튜브 채널들이 끼어들어 불난데 기름을 퍼붓는 식으로 확전되고 있다.

대선 국면에서 일상의 정치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대선 후보 스스로부터 자성하고 태도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본인의 사법 리스크는 물론 가족 관련 신상 문제가 모든 이슈를 집어삼키고 있음에도 이재명·윤석열 후보는 표의 유불리 공학에만 매달리는 모습이다. 국정 철학이나 국가 운영 비전은 찾아보기 어렵다.

여기에다 이 후보의 막말에 가까운 '거친 언사', 윤 후보의 '1일 1실언'이 더해져 국민 피로도와 신뢰 하락이 위험 수위를 향하고 있다. 투표일은 가까워지는 데 양강 후보의 지지도가 역주행하는 기현상은 자업자득이다.

실제로 지난 23일 발표된 엠브레인·케이스탯·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등 4개 여론조사기관 전국지표조사에서 이 후보 35%, 윤 후보 29%로 직전 조사와 비교해 각각 3%포인트(p), 7%p씩 하락했다. 반면 부동층인 '없다', '모름·무응답'을 포함한 '태도 유보'는 25%로 직전 조사의 17%에 비해 8%p 늘었다. 정치 염증이 어느 정도인 지 보여주는 결과다.(두 조사 모두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그 만큼 정책과 비전으로 싸우라는 방증이다.

이승근 계명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취업이 발등에 불인 20대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특히 청년들이 희망을 갖고 미래를 계획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도울 수 있는 공약을 개발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일자리가 격감하는 현실을 감안, 포스트코로나에 대비해 인공지능, 메타버스 등 신산업과 관련한 비전을 보여주는 식의 공약을 내세운다면 젊은 층의 눈길을 끌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또 "정쟁 대신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시키고, 계층이동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정책, 주거안정을 이뤄 결혼, 자녀출산 등 대학생과 청년들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 무관심해선 저질 인간에 지배 당해"

무관심이나 혐오감으로 정치와 멀찌감치 거리를 둬선 내 자신의 권리를 요구할 수도, 우리 삶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도 없다. 지난 6월 16일 색색의 복장과 타투를 한 시민이 국회에 모인 장면은 참여와 연대의 진가를 보여준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과 민주노총 타투유니온이 준비한 '타투업법 제정촉구 기자회견'이었다. 참석자들은 '엄근진'(엄격·근엄·진지)의 상징인 국회를 배경으로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며 매력을 뿜어냈다.

그 자신이 파인 등에 밤꽃 문양 타투 스티커를 붙인 채 뒷모습을 드러낸 류 의원은 "이런 거 하라고 국회의원 있는 거 맞다"고 외쳤다. 타투유니온의 한 회원은 "3개 정당이 타투 법제화를 위해 동일한 지향점의 법안을 발의한 것은 국민의 눈높이에 시선을 맞춘 것"이라며 "보편적인 요구에 상식적인 응답을 보내주기에 큰 기대를 가지고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타투 자유화를 외치는 촉구에 류 의원 소속 정의당 등이 수용해 변화와 권리 행사 수순에 들어간 셈이다.

발의에는 2011년 9월 한나라당 대표 시절 눈썹 문신을 해 '홍그리버드' 별명을 얻은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대구 수성구을)이 동참했다. 시민의 참여와 연대는 이렇게 힘이 세다. 합법화를 둘러싼 논쟁이 공론의 장에서 뜨겁게 펼쳐진 것도 민주주의의 건강함을 보여준 사례다.

'내가 정치를 왜'(한빛비즈)의 공동저자인 이형관 씨는 참여의 가치를 역설했다. 이 씨는 "정치도 결국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라며 "정치에 대해 최소한의 상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 표가 내 삶을 바꾼다"고 말했다. '정알못'으로 가볍게 넘어가기에는 현실 정치가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정치 무관심은 정치 불참여로 이어진다. 그 결과 정치와 민의가 괴리되고, 개개인의 무력감이 커지면서 정치적 무관심을 더 키우는 악순환을 부른다. 마침내 정치와 민의가 분리되면서 최악의 상황으로 흐르고 만다.

플라톤이 간파 했듯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 최선이 아니라면 차선을, 최소한 최악을 피해 차악을 선택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의미다. 박노해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다. '우리 시대에/가장 암울한 말이 있다면/남 하는 대로/나 하나쯤이야/세상이 그런데//'우리 시대에/남은 희망의 말이 있다면/나 하나만이라도/내가 있음으로/내가 먼저'('꽃 피는 말')라고.

◆정알못 체크리스트

- 정치 얘기가 나오면 핸드폰만 보게 된다

- 정치 기사의 반 이상을 이해하지 못 한다

- 정치 뉴스가 나오면 채널을 돌린다

- 정치 예능은 '자기들만의 리그'로 느껴진다

- "넌 왜 정치에 관심이 없냐"며 무시당한 적이 있다

- 정치 공부 시도해봤지만 포기한 적이 있다

(출처 '내가 정치를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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