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정보학과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일을 했다. 모든 사서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는 다른 사서들에 비해 유난히도 책에 관심이 없는 편이다. 매일 책을 만지고 정리하고 대출·반납 업무를 하니 흥미가 없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책을 좋아하는 대신 시사프로를 즐겨보고 뉴스를 매일 본다. 제일 좋아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그것이 알고 싶다', 좋아하는 영화 장르는 범죄 스릴러다. '내가 만약 범어도서관에서 수서팀으로 일하게 된다면 범죄 스릴러 장르의 도서로 도서관이 가득 차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좋아한다.
이 일의 시작은 상호대차 책을 반납하고 있을 때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출근을 하고 책을 한 권씩 감정 없이 정리 중이었다. 예약도서를 정리하는 중에 검정 양장본인 책을 하나 발견했다. 그 책은 나에게 보라고 손짓하는 느낌이었다. 찢어진 종이커버로 씌어 진 정말 낡고 빛바랜 책.
평소라면 거들떠도 보지 않았을 것 같은 모양새였지만 호기심에 책을 펴보았다. 훑어본 그 책은 제일 좋아하는 장르인 범죄 프로파일링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범죄심리와 과학수사) 프로파일링'이었다. 책의 제목을 확인한 후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책을 검색해보았다. 수성구립도서관 내에는 한 권 뿐인 책이었다. 책을 빨리 받아볼 수 있는 상호대차를 신청하여 읽고 싶었지만 이 책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던 만큼 나에게 책이 들어오려면 최소 1~2주의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으로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고 나는 바로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 그 책을 찾아보았다. 출판된 지 10년이 넘은 책이라 구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이미 모든 서점에서 절판이 되었고 중고로도 구할 수 없었다. 평소 성격이라면 포기했겠지만 이 책만큼은 꼭 읽고 싶었다. 사흘이 걸려 인터넷을 다 뒤져본 결과, 상태가 괜찮은 중고책 하나를 구할 수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이틀을 더 기다려 낡은 범죄 프로파일링 책을 손에 넣게 되었다.
오래 기다려 받은 이 책은 생각보다 더 흥미롭고 유익한 내용이었다. 브라이언 이니스(저자)는 연쇄살인에 대한 내용을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설명했고, 실제 범죄자들의 얼굴을 보여주면서 살인 현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두 달 남짓한 기간에 매일 출퇴근할 때 프로파일링 책을 들고 다녔고 점심시간마다 그 책을 꺼내 읽었다. 언젠가부터는 동료들이 "그런 책을 언제까지 들고 다닐거냐"고 묻기까지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처음으로 갖고 싶은 물건을 가진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계속 들고 다녔었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책장을 펼쳐보았을 때 적나라한 범죄현장 사진과 내용들이 담긴, 남들은 잘 읽지 않는 이상한 책을 점심시간마다 꺼내 읽는 모습이 어떻게 보였을지 가끔 궁금해진다.

권은지 범어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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