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푸른 산에 머물고 계신지요(問余何事棲碧山)/ 가만히 웃으며 대답 않으니 마음 절로 한가하네(笑而不答心自閑)/ 흐르는 물 따라 복사꽃 아득히 흘러가니(桃花流水杳然去)/ 그곳이 별천지라 인간세상이 아닐세(別有天地非人間)'
학창시절 이백의 시 '산중문답'을 접하고 지겨운 입시의 중압감에서 벗어나고자 별유천지를 찾아 떠나고픈 충동에 사로잡힌 적이 있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그때의 별유천지를 제대로 찾아내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
그런데 장태묵 작 '木印千江-꽃피다'를 보는 찰나, '아!'하는 탄성과 함께 이런 곳이라면 바로 '별유천지'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비록 그림에 불과하지만 화면에 코를 박듯 가까이 하면 오른쪽 노란 수선화의 향기가 후각을 찔러 세상 시름을 달래고, 수면 위 물결 따라 흐르는 연분홍 복사꽃잎의 퍼레이드는 시각을 끌어 잡아 당겨 홍진(紅塵)에 찌든 안구를 말끔히 씻어주고 있다. 그야말로 연분홍 복사꽃잎들이 물 위로 떨어지면서 흐르며 천 개의 강물을 비추는 '목인천강'의 형상이 펼쳐진 셈이다.
장태묵은 회화에 눈을 뜨기 시작할 무렵부터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찾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자연의 변화를 고정된 화면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그의 이러한 회화적 질문은 어느덧 10년의 세월을 넘기고서야 답을 얻게 된다.
2008년 어느 날. 작가는 그의 그림에서 예상하지 못한 특성을 찾게 되는데, 그것은 고정되어 있어야 할 이미지가 시선 방향과 빛의 방향에 따라 움직이는 듯 보였던 것이다. 그림 속 물이 바람이 불어오는 길을 따라 잔잔하게 흐르고 있는, 살아 움직이는 화면의 창출을 보았던 것이다. 회화적 질문의 답을 찾는 '유레카'이자 '회화문답'이 완성되는 시점이었다.
'변하는 자연을 어떻게 그릴까 했더니/ 붓 가는 대로 그저 맡겼지요/ 어느 날 물 흐르고 빛 들어오더니/ 이제야 찾았네. 살아 숨 쉬는 세상의 재현'
이로써 장태묵의 '목인천강-꽃피다'는 그림 속에서 꽃잎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꽃잎이 떨어지는 순간, 또 다른 잉태를 맺게 되는 참꽃이 핀다는 내용을 담게 됐다. 나무에서 꽃잎이 떨어지고 그렇게 수면을 가득 채운 꽃잎은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하려는 상징성이 되어 오묘한 매력으로 끝 모를 그곳을 향해 아득히 흘러간다.
"나는 나의 제작의지로 화면에 돌진함으로써 그 요구에 반응하고 또한 나의 의지를 못내 회화 속에 내려놓은 것으로 일말의 예술적 보답을 받아왔다."
그림 속에서 빛의 흐름이나 관람자의 움직임에 따라 모습이 바뀌는 그림을 그리는 장태묵은 보이지 않는 인간 본연의 심상을 자연에 비추어 서정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작가에게 자연관찰은 그림 그리기의 중요한 충동이며 통찰이다. 마치 마술과 같은 화면을 구사함으로써 평면이 입체가 되고 입체가 다시 평면이 되는 놀라운 빛의 세상을 보여준다.
동북아시아의 철학적 전통에서 얻은 관조를 통해 내면의 심미적 세계관을 자연으로 재구성하고 또 이야기하는 장태묵은 이러한 자신의 경험과 성찰을 계명대 미술대학에서 후학들과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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