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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멋대로 그림읽기(끝)] 정소연 작 '달빛이 흐르고' 45.5x53cm,한지에 먹, 분채.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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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갓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뭇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팔십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한 장면이다. 많은 소설을 읽지 못했으나 도심 속에서 우연히 둥근 달을 볼 때마다 생각나곤 하는 구절로, 개인적으로는 밤길 묘사의 걸작이라고 여기고 있다. 특히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란 어떤 느낌일까. 취재차 강원도 봉평에 갔을 때 밤늦은 시간에 하얀 꽃이 지천으로 핀 메밀밭에 들어가 본 적은 있지만, 아직까지도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어떤 느낌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살면서 강렬한 태양의 눈부신 빛보다 은은한 달빛에 마음이 더 기울어지는 건 눈부심이 없는 달빛의 민낯이 오롯이 삶을 돌아보고, 현재의 자리와 오지 않은 시간에 대한 기대감이 함께 어우러지기 때문이리라.

정소연 작 '달빛이 흐르고'는 밤이 돼 사위가 고요한 순간, 달빛이 세상에 흘러내리며 이러한 인간의 시간과 감정을 감싸 안아주고 있다. 은은하고 소란하지 않은 달빛, 하늘에 스미어 있는 별빛, 이리저리 떠밀릴 듯한 종이배와 풀꽃은 여린 인간의 모습으로 투사된다. 정소연은 소소한 일상에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일기라는 주제로 작업하고 있다. 작가의 그림은 이를 위한 표현의 장치이다.

허생원이 산길에서 마주한 달빛은 고된 삶에서 맞닥뜨린 짐승의 거친 숨소리로 공감각화되었다면, 정소연이 표현한 '흐르는 달빛'은 희망을 꿈꾸는 인간의 자화상을 시각화한 것이다. 이를 위해 작가는 작업에서 종이배에 항상 풀꽃들을 동행시키고 있다. 살면서 부침에 쉽게 흔들릴 수 있는 인간의 마음을 다잡고 후회와 반성을 넘어 꿈과 희망으로 다가가기 위한 마음의 힘을 화폭에 옮기고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시공간 속에서 많은 일과 만남을 겪으며 기쁨과 슬픔, 그리움과 행복을 공유한다. 특히 감정의 면면들은 어떤 때는 억압과 굴레가 되어 나를 압박하는 한편, 어떤 때는 귀한 인연들이 보내주는 소리없는 응원과 지지가 돼 내가 다시 설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한다. 이런 가운데 되도록이면 자신의 미래를 희망과 꿈의 방향으로 이끌어가고자 원한다. 그 원하는 바는 사람마다 다르며 제각기 주어진 재능에 따라 미래를 개척하고 있다.

"나에게 생(生)은 베틀에 매여 있듯 느껴지는 시간이다. 일기를 쓰듯, 베를 짜듯 지나온 날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많은 감정과 생각이 쌓인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마치 먼 옛날 어느 순간 반짝였던 별빛이 우주의 시공간을 넘어와 지금 이 순간 내게서 반짝인 것 같은 감정을 느낀다."

정소연의 고백처럼 먼 하늘에서 다가온 각자의 별빛을 찾아 꿈과 희망의 씨앗을 뿌려 하늘 높이 날려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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