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강의를 시작하기 전 바흐가 좋은지 쇼팽이 좋은지 학생들에게 질문한 적이 있었다. 마흔 명의 피아노 전공 학생 중 단 한 명이 바흐가 좋다고 대답했고 나머지 학생은 모두 쇼팽이 좋다고 했다. 바흐보다 쇼팽 음악을 더 좋아할 것이라고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바흐가 좋다는 학생이 단 한 명밖에 없는데 대해 조금 놀랐다. 그날 강의 내용은 바흐의 음악에 관한 것이었다.
바흐(J. S. Bach·1685~1750)는 바로크시기 정점에서 이전의 음악을 집대성하고 미래의 음악을 개척한 오르가니스트 겸 작곡가다. 바흐는 독일의 대위법적 전통을 바탕으로 프랑스와 이태리 등 여러 나라의 음악양식을 융합해 새로운 음악을 탄생시켰다. 그는 르네상스 다성(多聲)음악 위에 화성(和聲)음악 체계를 확립했고 평균율 조율법을 사용해 조성음악을 확장시켰다. 또 푸가(Fuga)의 기법을 완성했고 오페라를 제외한 모든 장르에 방대한 작품을 남겼다. 음악사에서 그의 업적을 능가하는 음악가는 전무후무하다.
그의 수많은 걸작 중 '클라비어를 위한 평균율'(이하 '평균율')은 12반음의 장‧단조를 평균율 조율법으로 실험한 클라비어(피아노의 전신) 곡이다. 이 곡은 전주곡과 푸가로 짝을 이루어 모두 48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푸가의 기법은 주제가 제시된 후 다른 성부에서 응답을 하고 응답하는 동안 대선율이 펼쳐진다. 이러한 모방대위법은 조(調)적인 법칙을 지키면서 마치 집을 짓는 것처럼 치밀하게 구성되어 나간다.
바흐는 이 곡에 대해 평균율을 실험하고 교칙용으로 사용하거나 어느 정도 음악을 익힌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려고 작곡했다고 한다. 그러나 쇼팽은 "바흐의 평균율이 피아니스트에게 일용할 양식이자 최고의 교본"라고 극찬했다. 또 베를린 필하모닉오케스트라 초대지휘자 뷜로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타나가 신약이라면 바흐의 평균율은 구약성경이다"고 했다.
피아노 전공 학생들이라면 바흐의 평균율 때문에 적잖게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바흐를 마냥 좋아할 수 없는 학생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바흐의 음악을 좋아한다는 한 명의 학생은 마치 고급 물리학을 전공하는 연구원처럼 보였는데 매우 높은 IQ 소지자라 생각되었다. 두뇌를 풀가동하지 않으면 다성음악의 각 선율들을 추적하거나 푸가의 치밀한 기법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IQ를 높이려면 학생들에게 바흐의 음악을 감상시키거나 평균율을 연주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평균율 중 전주곡 제1번은 프랑스의 작곡가 구노가 이 곡을 반주로 바이올린과 피아노와 하모늄을 위한 기악곡으로 편곡했다. 여기에 알퐁스 드 라마르틴의 시를 넣어 성악곡으로 재탄생시킨 곡이 잘 알려진 구노의 '아베 마리아'다. 이 곡은 바흐의 전주곡을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에 바흐의 곡이라 해야 한다.
이어지는 푸가 제1번은 8분음의 상행하는 주제 '도레미파~'가 가온성부에서 제시되고 곧이어 완전5도 위에서 '솔라시도~'로 응답하는 동안 대선율이 펼쳐진다. 이러한 푸가의 기법은 평균율의 모든 곡에서 사용되며 성부간의 정교함에 더하여 전체의 음악은 통일성을 갖는다. 제시부-전개부-재현부를 거치면서 에피소드나 스트레토(주제의 겹침)의 출현은 음악의 극적인 효과를 증대시킨다. 24곡의 푸가는 하나도 동일한 진행이 없다. 다양하면서도 독특한 과정을 거치면서 음악적 아름다움을 갖는다. 당분간 인공지능(AI)도 이러한 음악을 만들어 내기 어려울 것이다. 바흐는 대가 중 대가다. 그래서 위대한 바흐에게 '음악의 아버지'라는 별칭을 부여했다. 본래 'Bach'라는 말은 독일말로 실개천이나 작은 도랑을 뜻한다. 하지만 베토벤은 이렇게 외쳤다. "바흐는 실개천이 아니야, 바다야!"
대구시합창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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