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문경시 점촌5동 행정복지센터 출입문에 들어서면 특이하게도 마트에서나 볼 수 있는 대형 냉장고가 자리 잡고 있다. 그 안에는 두부, 김치, 돼지고기, 라면, 채소, 떡, 쌀을 비롯해 작게 포장된 여러 종류의 먹거리가 진열돼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이른 아침이나 저녁 무렵, 약간 누추한 차림새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냉장고 안을 살펴보고 필요한 음식을 가져간다. 한 번에 많이 가져가실 줄 알았는데 드실 만큼만 가져가니 정말 고마운 일이다.
점촌5동 행정복지센터 양심냉장고 앞의 풍경이다. 양심냉장고는 3년 전쯤인 2018년 처음 시행했다. 당시는 어려운 이웃들이 편안하게 이용하지 못했다. 행정복지센터 문 밖에서 머뭇거리며 차마 먹거리를 가져가지 못하고 서성이다 돌아서는 어르신도 있었다.
반면 한꺼번에 많은 양을 가져가서 골고루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30여 명으로 구성된 점촌5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 회원과 행정복지센터 직원의 지속적인 홍보와 노력이 더해지면서 생활이 어려운 분들의 지킴이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사정이 딱한 이웃들을 재발견하면서 추가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이 열리기도 한다.
양심냉장고 안을 채우는 산타클로스는 채소가게 아저씨, 떡집 총각, 두부가게 아줌마, 식육식당 사장님, 식품회사 대표를 비롯해 다양한 직업을 가진 분들이었다. 점촌5동 주민자치위원회, 통장자치회, 바르게살기위원회를 비롯한 도움 단체들도 십시일반 힘을 보태고 있다. 특히 새마을남녀지도자협의회에서는 회원들이 정성껏 가꾼 배추와 무를 제공하기도 하고, 김장과 밑반찬을 정성껏 조리하여 넣어 놓기도 한다.
요즘 양심냉장고는 하루 평균 20명 정도 이용을 해서 먹거리를 채워놓기 바쁘다. 이틀 이상 보관되는 음식물이 없을 정도로 신선도 만점이다. 도움을 주는 분들은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조건도 없다. 오히려 어려운 분들이 힘든 것을 안타까워하고 그 아픔을 함께하며 너무 작은 도움이라며 미안해한다.
코로나19로 국민들의 삶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시기다. 하지만 이런 힘든 시기에도 아픔을 감내하며 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는 산타클로스가 있어 세상은 아직도 따뜻하다. 이분들 역시 코로나로 인한 피해자들이라 어려운 상황은 매한가지이지만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헌신과 봉사는 변치 않아 보인다.
다른 자치단체의 벤치마킹도 이어지고 동참하는 소상공인들도 늘어나고 있어 고무적이다. 지난해 12월 의성군 단북면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과 담당 공무원 등 20명이 점촌5동 행정복지센터를 방문했다. 이들은 양심냉장고 사연(?)을 듣고 단북면에도 양심냉장고를 들이기로 했다고 한다.
점촌5동 행정복지센터에서는 양심냉장고에 이어 양심공구를 마련해 필요한 시민들에게 빌려주고 있다. 올해에는 점촌5동 행정복지센터를 방문하는 민원인들이 갑작스럽게 비가 와서 당황스러울 때나 강렬한 햇빛으로 건강이 염려스러울 때 누구에게나 양심우산, 양심양산을 빌려주는 사업도 시작한다.
일명 양심 시리즈다. 사회를 어둡게 만드는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양심 시리즈의 역할이 새삼 필요해 보인다. 앞으로 더욱 다양한 사업을 발굴하고 꼼꼼히 실행해 문경시 점촌5동에서 시작된 따뜻한 나눔이 전국으로 확산되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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