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같은 시기에 '미생물이 우리를 구한다'는 책 제목이 불편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2년간 억압된 삶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말이다. 한마디로 바이러스라고 하면 징글징글하다. 하지만 흥분을 잠시 가라앉히고 책장을 찬찬히 넘겨봤다.
지은이는 미국 미네소타대 의대 명예교수이자 40년간 감염병 전문가로 활동한 전문의다. 인류에게 우주는 여전히 미지의 공간인 것처럼 현미경 속 세상도 마찬가지다. 지은이는 현미경 속 세상의 주인인 미생물에 대해 평소 우리가 몰랐던 사실들을 책 속에 녹여내고 있다.
과학자들은 전자현미경을 통해 모래알마다 수천 개의 박테리아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한 예측에 따르면 지구에 서식하는 박테리아의 수는 대략 우주에 있는 모든 별을 합한 수의 100만 배쯤 된다고 한다. 그 만큼 지구는 미생물의, 미생물에 의한 행성이라고 볼 수 있다.
책에서 다룬 '마이크로바이옴'도 흥미롭다. 인체에 사는 미생물을 가리키는 마이크로바이옴은 인간의 뇌와 비슷한 무게인 1.5㎏ 정도이지만, 우리 장기 곳곳에 수없이 많이 공생하고 있다. 이들은 대장이나 입, 여성의 생식기 등에 존재하며 pH 균형을 맞춰주기도 하고, 나쁜 균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장기의 내벽에 방어막을 치는 등 건강한 신체가 유지되도록 선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종류가 워낙 많다 보니 그만큼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뎅기열, 스페인 독감, 에볼라 바이러스 등이 있다.
'박테리아파지'는 박테리아를 감염시키는 거대한 바이러스 집단이다. 이것이 주목받는 데는 질병을 치유하고 예방하는 치료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효과적인 항생제가 없는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인체를 공격할 때 이들을 사정없이 파괴해 인간의 목숨을 구해주는 구세주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세계 곳곳에서 의미있는 성과를 내고 있다. 한 예로 2019년 보고된 사례가 제시됐다. 낭포성 섬유증을 앓는 15세 소녀가 폐이식 이후 항생제 내성의 박테리아에 고통받았지만, 유전적으로 조작된 박테리오파지에 의해 놀라울 정도로 건강을 회복했다.
먹는 것과 관련한 박테리오파지도 눈길을 끈다. 2006년 미국 식품의약국과 농무부는 식품 처리를 위한 몇 가지 박테리오파지를 승인했다. 식중독이나 식품 감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식품에 박테리오파지 혼합물을 뿌려 가공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한 타인의 대변을 이식해 그 안의 미생물 생태계를 통해 병을 치료하는 사례는 물론, 플라스틱을 분해하고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여 지구의 기후변화 위기 극복에 이바지하는 미생물 사례 등도 소개하고 있다.
이처럼 이 책은 '바이러스=절대악'이라는 우리의 선입견을 경계한다. 일부 인류에게 해로운 바이러스가 분명 있지만, 대다수는 인간과 지구의 생존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강조한다. 지은이는 한국 독자를 위한 서문에서 "인간의 독창성이 결합된다면 우리가 현재 처한 곤경으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한 희망적인 답을 미생물로부터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한다. 438쪽, 1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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