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경규의 행복학교] 아름답게 나이가 든다는 의미

최경규

변화란 시간이 만드는 일인지라, 간격을 두고 보는 만남이란 변화를 느끼기 마련이다. 오랜만에 보는 사람의 작은 변화가 한눈에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요즘처럼 만남이 쉽지 않은 시기, 몇 해 만에 보는 지인의 얼굴에서 세월의 흔적이 여실히 느껴지곤 한다. 늙지 않을 것만 같았던 사람의 얼굴에도 어느새 주름이 잡히고, 탄력 있었던 피부도 중력의 힘을 이기지 못하는 것을 볼 때면 세월 앞에 장사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을 포함한 동식물들은 출생과 더불어 성장을 거치며 노화의 시기를 맞는다. 영화 속 불멸의 존재가 아닌 이상, 눈으로 보이는 피부는 수분이 빠지면서 주름이 지고, 몸속 보이지 않는 장기(臟器) 역시 시간의 흐름과 발맞추어 다소 느린 움직임으로 함께 살아간다. 21세기 최대의 발명품이 있다면 그것은 노화 방지 제품일 것이다. 그만큼 항노화(Anti-aging)가 국가를 불문하고 현 인류 최대의 바람처럼 인식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고대부터 인간은 늙는 것을 경계하며 최대한 젊음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사막의 모래바람과 열대의 강렬한 태양 빛에도 불구하고 매혹적인 백옥 피부를 간직했다는 클레오파트라, 그녀의 젊음과 피부 관리법이 수천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학습되고 회자되는 이유는 바로 젊음을 구하는 인간의 욕망 때문이다.

주기적으로 관리를 받고, 자신을 가꾸는 사람이 스스로를 더 존중하고 타인에게 사랑받는 모습일 거라는 생각에 조금의 부정도 없다. 하지만 정말 나이가 들어가는 것, 노화(老化)라는 것이 무조건 멀리하고 터부시해야 할 대상인가?

유명 패션잡지인 일루어(Allure)의 편집장인 미셜 리는 노화 방지라는 말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했듯이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하여 부정적인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조금은 자유롭게 사고를 할 필요가 있다. 벨기에 패션디자이너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는 "나이 드는 것은 누구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어떻게 나이 드느냐, 그것은 나 자신에게 달렸다"고 했고, 미국 연방 최고재판소 판사였던 올리버 웬델 홈스는 "70세의 젊은이가 된다는 것은 40세의 늙은이보다 훨씬 더 즐겁고 희망적이다"라고 하였다.

아름답게 나이 드는 것, 우리는 이제 그것에 좀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팽팽하고 매끈한 구릿빛 피부가 아니라 주름이 잡힌 얼굴에서도 그 못지않은 신비로움과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더 이상 나이가 듦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먼저 가질 것이 아니라, 흐르는 세월에 따라 삶을 어떻게 더 아름답게 맞출 것인가에 관한 공부가 필요하다.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 생물학적 노화가 진행된 사람이라도 열정적인 청년 못지않게 살 수 있다. 70대인 메이 머스크(Maye Musk.)는 2017년부터 세계적인 화장품브랜드인 커버걸의 공식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100세 철학자인 우리나라 김형석 교수 역시 왕성한 강연과 집필을 하는 것을 보면 나이가 든다는 이유로 결코 꿈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그의 말이야말로 명언일지 모른다.

나이가 든다는 것. 젊은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후배들에게 행복의 지름길을 안내해줄 수 있고, 실패의 아픔을 함께할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을 가진 든든한 선배가 된다는 의미이다. 또한, 삶을 보다 진솔하게 살 준비가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스위스의 심리학자

칼 융이 말했던 수많은 페르소나, 즉 가면을 벗고 진심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가치 있는 시간에 몰입하고 삶을 정돈할 시기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비싼 음식과 옷들로 자신을 내보이던 시간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모래가 고운 공원이 보이면 양말을 벗어 맨발로 땅을 느껴보고, 비 오는 날 허름한 선술집에서 들려오는 노래에 혼자라도 들어가 소주 한잔을 마실 수 있는, 행복을 취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다.

잘 살아간다는 것은 잘 나이 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제대로 나이 드는 사람들은 매력적이다. 그들은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한 가치를 잘 알고, 시간의 제한 속에서도 우선순위를 제대로 둘 수 있는 혜안(慧眼)을 가진다. 지금의 소중함 역시 잘 알 수 있는 시기에 우리는 살고 있다. 어릴 적 평생 늙지 않고 살 것만 같아 삶의 소중함도 모를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아침마다 나에게 행복과 웃음을 주는 우리 강아지가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리라는 것을 이제는 알기에 그와 함께 웃고 산책하는 오늘이 더 소중한지 알고 있다. 내일만을 위해 어제를 돌아보지 않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더이상 마음의 상처를 주지 않아도 되는 여유를 찾을 수 있고, 남은 삶을 어떻게 설계할지에 대하여 고민하는 총감독이 되는 시기이다.

아름다움. 비단 젊은이들의 소유물이 아니며 얼마나 더 아름답게 나이들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속 늙지 않는 열정, 타인과 자신을 사랑하는 진심에 달렸다. 인생의 각 시기는 나름대로 아름다움이 있다. 어린이는 어린이다울 때, 청년은 청년다울 때, 노년은 노년일 때 가장 아름답다. 그러므로 나이 들어가는 것에 부담감보다는 마음 놓고 편안하게 나이 들어감을 즐겨보면 어떨까.

최경규

행복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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