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산시 평산동 652-9, 코발트 광산터.
이념의 무덤, 암흑의 굴 속에 다시 불을 밝혔습니다.
전쟁 통에 민간인 수천 명이 억울하게 스러진 곳.
일제가 금·은·코발트를 수탈했던 이 폐 광산에서
72년 전 그날,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1948년 국방경비대 군인들의 반란과 이에 동조한
좌익 시민들이 봉기한 여·순 사건으로, 위기에 처한
이승만 정권은 좌익 분자들을 전향·계도 시킨다며
이듬해 6월 '국민보도연맹'을 만들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인원 할당. 충성경쟁이 시작됐습니다.
빨치산에 식량 제공자는 영순위. 이들의 강압에
마지못해 협력한 민간인도 '좌익'으로 찍혔습니다.
그래도 모자라자 쌀·밀가루·비료를 주겠다며
때로는 경찰이 협박하며 도장을 받았습니다.
연맹원 상당수는 땅만 파던 농민들이었습니다.
1950년 6월 전쟁이 터지자 사단이 났습니다.
졸지에 인민군과 한패, '빨갱이'로 몰렸습니다.
경산·청도·창녕·밀량, 멀리 영동에서도 보도연맹원이
끌려와 대구 형무소에, 유치장에, 창고에 갇혔습니다.
전세가 급변하자 형무소 소개 작전이 시작됐습니다.
군 트럭으로 끌려 온 연맹원·재소자들이 10명 씩
굴비처럼 묶여 저 수평굴 너머 수직굴 앞에 섰습니다.
한 명이 꼬꾸라지자 줄줄이 아래로 굴러떨어졌습니다.
재판도 없는 잔인한 총성이 종일 골짜기를 울렸습니다.
7월 20일부터 두 달간 100m 수직굴을 꽉 메웠습니다.
정부 산하 진실화해위원회는 2007년부터 3년간
처음으로 이곳에서 유해 520구를 발굴했습니다.
억울하게 희생된 지 57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정권의 부침속에 진실을 밝히던 불이 꺼진 지 10년.
마침내 출범한 2기 진실화해위가 다시 팔을 걷었습니다.
발굴 준비가 한창이지만 갈 길이 태산입니다.
10년 전 발굴하던 유해 섞인 흙자루는 아직 그대로,
끝 모를 굴 속엔 지금도 유해가 칠흙을 헤매고 있습니다.
당시 이곳 희생자는 최소 1천800명(진실화해위 주장).
유족회측은 족히 3천500명은 될거라고 말합니다.
학살자는 인민군이 아닌 우리 군과 경찰이었습니다.
114개 시‧군에서 최소10만, 최대 30만 명의 민간인이
'빨갱이'로 둔갑돼 국가 권력 총부리에 쓰러졌습니다.
전쟁보다 더 무서웠던 이념 갈라치기, 진영의 싸움질.
72년이나 흘렀지만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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