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었던 최고의 색은 소설 '내 이름은 빨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알리는 빨강이었다. "색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색은 눈길의 스침, 귀머거리의 음악, 어둠 속의 한 개 단어다.(중략)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일사병에 걸렸을 때 대왕의 아름다운 코에서 반짝이는 피, 거기에 내가 있었다"라고 말하는 빨강. 대담하고 아름다운 이 소설의 작가는 '바늘로 우물을 파듯이' 글을 쓴다고 말했다.
나는 위의 소설을 제외하고 색이 말하는 글을 본 적이 없다. 색이 흥미로운 지점은 이것만이 아니다. 여성이 남성보다 색의 농도 차이를 분명하게 인지한단다. 이는 색을 구별하는 원추세포가 X염색체에 있어서다.
염색체라니. 너무나 근원적이라 누구에게나 색과 연관한 에피소드는 무척 많을 것이다. 어차피 전부 밝힐 수 없으니, 더 확장해서 볼까. 빛. 사실 색을 얘기하면서 그 모체(母體)인 빛을 제외할 수는 없다. 오래 전 신화를 쓴 사람들은, 아폴론이 태양을 수레에 싣고 밤마다 어딘가로 갔다가 아침에 다시 돌아온다고 생각했다. 믿기는가.
빛이 색을 잉태하고 있다는 것을 밝힌 사람은 아이작 뉴턴이었다. 17세기까지는 색이 결정되는 이유가, 사물 안에 본래 존재한다거나 물체가 빛을 반사하거나, 눈에서 빛이 나와서라고 생각했단다. 뉴턴은 색이 어디에서 유래하는지 알기 위해 자신의 눈과 뼈 사이에 자수바늘을 깊숙이 찔러 넣어 압박을 했다. 나중에는 프리즘을 이용해 빨강에서 보라색 너머 비가시광선까지의 스펙트럼을 분류했다.
스펙트럼이란 단어는 색깔만이 아니라 소리에도 쓰인다. 색과 소리가 같은 용어, 즉 파동으로 설명된단다. 주황색은 보라보다 파장이 길다 등으로.
이런 소리의 파장을 캔슬링하는 방식으로 소음을 없애는 기계가 나왔단다. 혹시 빨강 소리를 초록 소리로 없애는 건가, 찾아보니 아니었다. 노란색 파장에는 같은 노랑의 반대파형을 덧씌워, 소음이 원래 없었던 것처럼 취소시킨단다.
색 얘기로 돌아오자. 눈으로 보는 것 말고 색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방식은 비유가 있다. 예를 들면 블루(blue)는 우울을 대변하는 색이다. 내게는 고2학년 남자아이로 인해, 슬프고 불편한 색이 정말로 블루가 됐다. 이십대 중반에 만난 아이였다.
하늘색 체육복을 입은 그 아이는 공고를 졸업하면 호스트바에서 접대부로 일할 거라고 말했다. 예쁘장하고 말투가 부드러워 모성애를 건드렸는데, 몇 년 후에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연을 묻고 싶지 않을 정도로 불편했다.
다른 불편한 것도 있었다. 이런 질문. "너는 어떤 글쟁이니?"
그때는 답을 못했다. 이런 지면이 주어졌으니, 이젠 작게 속삭여 볼까. 듣는 이도 희미하게 수긍해준다면 좋겠다. "그러니까 나는 문학이라는 프리즘을 장착한 사람이 되고 싶어. 그래서 세상에 모든 움직이는 것과 고정된 것에 나를 대보는 거지. 그러면 나와 그들이 조응하겠지. 그걸 가만히 지켜보는 거야. 어떤 색이 출렁이는지." 그런데, 무지개 너머 보이지 않는 데는 어쩌지? 음, 그냥 검고 깊은 심연으로 비워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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