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정치보복

김태진 논설위원
김태진 논설위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진하게 각인된 장면이 있다. 투항한 러시아 병사에게 빵과 홍차를 주고, 고국의 어머니에게 영상통화를 하게 한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태도였다. 전황의 열세에 있는 그들로서는 쉽지 않은 대처였을 것이다. 제네바협약에 따라 포로를 학대해선 안 된다지만 사람 마음이 그런가. 당한 만큼 복수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함무라비법전의 동태 복수의 원리까지 따질 것도 없다.

선거가 끝나면 단골로 나오는 당부가 '국민 통합'이다. 77%라는 높은 투표율이 입증하듯 각 후보 측은 전쟁 못지않은 선거를 치렀다. 지지 후보 낙선을 패망이라 여길 만큼이다. 누구를 지지했든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한 선택이었다. '국민 통합'이라는 열쇠 말을 무겁게 인식해야 하는 까닭이다.

'국민 통합'의 해법을 알려주겠다는 이들이 으레 불러오는 이가 있다. 당 태종과 위징이다. 당 태종 이세민이 권좌에 오르기 전, 위징은 이세민을 제거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권력을 쥔 이세민의 숙청 일순위는 위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세민은 위징을 신하로 모신다. 능력을 본 것이었다. 이후 300차례가 넘는 간언도 수용한다. 이 시대가 태평성대의 대명사인 '정관의 치'(貞觀之治)로 기록된 이유다.

"잘못한 게 없으면 두려워할 게 없다"는 말은 교과서적 정언이다. 반대쪽에서는 명백한 실책도 정치 보복이라는 동류항에 넣는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속담부터 떠올리기 마련이다. '구시대 혁파'라는 구호로 진행되는 정치 보복은 뫼비우스의 띠와 같다. 누군가가 마음먹고 끊어내야 한다.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1997년 대선에서 정치 보복을 않겠다는 후보가 있었고, 2000년대 '정치 보복 금지법' 제정 움직임이 있었다. 실현되진 못했다. 범법 행위도 보복 행위로 둔갑할 거라는 반론 때문이었다.

명심보감은 '욕지미래 선찰이연'(欲知未來 先察已然·앞날을 알려면 지난날을 살피라)이라 알려준다. 지난 정권의 과오는 오답 노트처럼 삼을 일이다. 하나씩 바로잡을 때 차별점은 드러나게 돼 있다. 위법과 불법의 정황을 국민 통합의 조건으로 눙치자는 말이 아니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 데 구원(舊怨)이 들어가선 곤란하다는 뜻이다.

김태진 논설위원 nove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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