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당신의 노래는 무엇입니까

임수현 시인

임수현 시인
임수현 시인

사람의 인생은 음악에서 시작해 음악으로 끝난다. 나는 뱃속에서부터 클래식보다 대중가요를 즐겨들었다. 엄마의 태교는 남달랐는데 카세트 테이프를 되감아가며 눌러쓴 가사 적기였다. 노트 가득 적은 가사들이 내 최초의 언어였고 그래서인지 가사가 좋은 노래들을 좋아한다. 멜로디 이전에 가사가 귀에 들어와야 듣게 되니 말이다.

내 음악적 계보는 이상은에서 윤하로 백예린으로 이어진다. 이상은을 좋아하게 된 건 그가 큰 키에 탬버린을 흔들며 담다디를 부르던 시절이 아니었다.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그가 언젠가부터 브라운관 화면에서 사라지고 일본에서 생활할 즈음이었을 것이다. '언젠가는', '비밀정원', '삶은 여행' 같은 노래를 들으며 그의 가사에 흠뻑 빠졌다. 나도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되감기하며 가사를 받아 적곤했으니 내 문학적 소양을 그렇게 쌓였는지도 모르겠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한참을 살아봐야 알게 되거나 끝끝내 알지 못할 수도 있는 사랑에 단상들. 그는 스물둘에 이 가사를 썼다.

시를 쓰다보면 내 시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을 때가 있다. 모르는 이의 블로그나 카페에 내 시가 옮겨져있는 걸 보면 마음이 조금 놓인다. 좋아요! 하트라도 누르고 싶지만 참는다. 그저 내가 아는 이야기를 꾸준히 쓰다 보면 알아봐 주는 이가 있겠지 싶어 없던 기운도 생긴다.

얼마 전 윤하는 새 앨범을 냈는데 전곡이 다 좋지만 '오르트 구름'이 특히 좋다. 운전하며 들으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녹슨 가슴에 피는 꽃'이라는 역설적인 가사가 시적 태도와도 닮았다.

근래 좋아하게 된 백예린은 우리나라에도 이제 이런 가수가 나오는구나! 싶어 행복했다.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에이미 와인 하우스를 닮은 백예린. 그이의 가사를 듣고 있으면 이번 생을 다 알아버린 청춘의 아슬아슬함이 느껴진다. 바람의 목소리 같고 바람 위에 흔들리는 나뭇잎 같다. 노래를 부를 때 느껴지는 자유로움도 좋다. 바람 위를 걷는 새들처럼 새의 날개 속으로 스치는 바람처럼. 삶은 음악과 함께 늙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아에게 들려주는 엄마의 허밍 속에 심수봉과 남진이 있었고, 이상은과 윤하와 백예린으로 나는 늙어간다. 방탄소년단을 빼놓고 글을 마칠 수 없어 사족을 붙인다. 늦은 나이에 등단한 나에게 그들의 음악은 응원가였다. 코로나를 겪으며 방탄소년단은 'Life Goes On'을 노래한다.

시련 속에서도 삶은 계속된다. 그렇기에 삶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 내는 것. "우리는 자유로이 살아가기 위해" 태어났으며, 나의 노래도 이 글을 읽는 이들의 노래도 그 끝은 아름답길 바란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