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서점에서 책 한 권 펼치고 앉아 있자니 책방지기가 가게 앞을 정돈하며 문을 활짝 열어둔다. 열린 문으로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오는데 어라, 바람이 차지 않다. 살짝 코끝으로 느껴지는 포근한 기운에 잠시 멍해져 밖을 바라보았다. 차가 지나고 사람이 지나는 것을 넋을 잃고 바라보며 이렇게 문을 열어놓아도 이제 춥지 않구나 싶었고, 그러니 정말 봄이구나 싶었다. 바람이 하나도 차지 않다고 중얼거리니 책방지기가 맞장구친다. "그렇죠? 요즘은 되레 책방 안이 추워요. 오히려 밖이 더 따뜻하다니까요."
그러고 보니 봄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절기, 춘분이 시작된다. 춘분은 24절기 중 네 번째에 해당하는 절기로 경칩과 더불어 봄을 대표하는 절기다. 태양의 중심이 적도 위를 똑바로 비추어 밤과 낮의 길이가 같으며, 춥지도 덥지도 않아 농사일하기에 가장 좋은 때이기도 하다.
춘분의 날씨로 그 해 풍년과 흉년, 장마와 가뭄을 점치기도 했는데, '증보사시찬요'(增補四時纂要)에 따르면 춘분에 청명하고 구름이 없으면 만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열병이 많으며, 흐리거나 비가 오면 병자가 드물고, 해가 뜰 때 정동 쪽에 푸른 구름 기운이 있으면 보리 풍년이 든다고 한다.
날씨는 우리가 매일매일 너나없이 똑같이 겪는 것이다. 하지만 그 날씨를 어떻게 느끼는가는 저마다 다르다. 개인적으로는 흐리거나 비 오는 날을 즐기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조금은 쌀쌀한 기운이 남아 있는 이른 봄날, 바람결에 살짝 흙냄새가 묻어 있는 봄비 오는 날씨를 좋아한다. 물론 그런 날씨엔 몸도 마음도 축 처진다며 싫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날씨만큼 개인의 취향이 갈리는 것도 없다.
맑은 날씨라 편한 사람, 맑아서 힘든 사람, 궂은 날씨라 좋은 사람, 궂은 날씨라 고단해진 사람…. 오늘도 우리는 맑든 흐리든 따뜻하든 춥든 자신만의 날씨를 겪으며 산다. 그리고 그런 일상이 계절에 따라, 절기에 따라, 낮과 밤에 따라 다행히도 어김없이 반복되는 것이 바로 매일의 기적이다. 그런 기적적인 일상을 누리며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일까. 영문학자 알렉산드라 해리스는 '예술가들이 사랑한 날씨'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날씨를 겪어내면서 열심히 일하는 것"이라고 한 바 있다.
옛 농가에서는 춘분에 들면 파종할 씨앗을 이웃끼리 바꾸거나 종자를 가려내기도 하고. 겨우내 얼었다 풀리는 논두렁과 밭두렁이 무너지지 않도록 말뚝을 박는 등 성실한 봄맞이를 했다. 본격적으로 봄이 시작되는 이즈음, 올 한해와 내 삶을 살펴 무른 곳은 단단히 다지고 흐트러진 곳은 가다듬어 놓을 시기임을 상기하며 우리의 모든 봄맞이가 성실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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