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언젠간 이렇게 될 줄 알았다"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희곡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 겸 소설가이자 비평가였던 죠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다. 그는 우리에게 생을 마칠 때까지 허투루 살지 말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인간은 누구나 유한한 삶을 산다. 그 유한한 생애에서 마지막으로 쓴 글씨를 절필(絶筆)이라 한다.
현재 코엑스 옆에 있는 봉은사에는 추사 김정희의 절필작인 '판전(版殿)'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당시 봉은사에서 남호 영기 스님이 화엄경 80권을 필사해 목판으로 찍어 인출한 화엄경판을 완성하자, 경판전을 짓고 그 건물에 걸 현판글씨를 추사에게 부탁했다. 일설에 추사는 병든 몸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판전 두 글자를 휘호한 사흘 뒤 생을 마쳤다고 전한다.
'판전' 두 글자의 왼쪽에 보이는 '칠십일과병중작(七十一果病中作)'이란 낙관글씨를 통해 71세(1856년)에 과천에서 병 중에 썼음을 알 수 있다. 당나라 손과정은 서예수련과정을 초기엔 평정의 기본을 익히는 생(生)으로, 중기엔 다양한 기교와 변화를 구하는 숙(熟)으로, 마지막엔 농익은 기교를 벗어난 생(生)으로 변모한다고 했다.
추사의 절필작은 마지막 생(生)으로 마치 아이의 천진함이 서린 졸(拙)의 궁극적 미학을 보여준다. 70평생 벼루 10개를 밑창냈고 붓 일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든 추사의 내공이 녹아있어 눈을 멈추게 된다.
또 다른 절필작은 경북 봉화 닭실마을에 있는 미수 허목이 쓴 '청암수석'(靑巖水石)이다. 이 현판은 조선조 기묘사화의 여파로 파직돼 중앙정가로 복귀할 때까지 15년 간 머물렀던 충재 권벌이 지은 서재 옆 거북바위 위 청암정(靑巖亭)이란 정자에 걸려있다.
허목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서예가로서 중국 상고시대 고전(古篆)을 집중 탐구해 가늘면서도 운치있는 전서체를 만들었는데, 세상에서는 이를 미수의 전서라는 의미에서 '미전'(眉篆)이라고 불렀다. 그는 88세(1582년) 되는 해 청암정에 걸 편액글씨를 부탁받고 '청암수석'(靑巖水石) 네 글자를 휘호한 며칠 뒤 세상을 하직했다.
우리는 추사의 판전에서 추사체의 진면목과 그의 예술적 심미안을 엿볼 수 있고, 미수의 청암수석에서 전서를 재해석한 미전의 진수를 음미하게 된다. 조선의 두 거장을 통해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연암 박지원의 법고창신(法古創新)이란 가르침을 되새겨 보는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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