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아청소년과 진료체계 붕괴 위기] 낮은 수익에 갈수록 외면받는 '소아청소년과'

수련기간 4년에서 3년으로 줄였지만 효과 없어
저출산에, 의료 사고 책임 부담으로 기피 현상 심화
전공의 부족 갈수록 심화될 우려도

대구 북구 한 여성병원 신생아실에서 간호사들이 신생아들을 돌보고 있다. 매일신문 DB
대구 북구 한 여성병원 신생아실에서 간호사들이 신생아들을 돌보고 있다. 매일신문 DB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이 갈수록 줄고 있어 향후 소아 진료에 공백이 우려되고 있다. 소아청소년과 진료 체계 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지원율 제고를 위한 처우 개선 등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대구의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은 최근 몇 년 새 급격히 떨어지는 양상을 보였다. 2019년과 2020년 대구 내 수련병원 6곳의 소아청소년과 지원율은 각각 86.6%, 80%였다. 그러다 지난해와 올해는 각각 12.5%, 13.3%로 급감했다. 80%대를 유지하고 있던 전공의 지원율이 최근 2년 사이 10%대로 급감한 것이다.

전국적으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모집이 어려워지자 보건복지부는 지원 독려 방안의 하나로 올해부터 수련 기간을 기존 4년에서 3년으로 줄였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저출산·코로나19… 낮은 수익에 갈수록 외면

최근 2년 새 전공의 지원율이 줄어든 것을 두고 의료계는 저출산 분위기와 코로나19가 맞물려 환자 수가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지역 한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A씨는 "소아청소년과 환자 대부분은 호흡기 관련 질환으로 병원을 찾는데, 코로나19로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다 보니 이런 환자들이 급격히 줄어들어 소아과 사정이 좋지 않다"며 "코로나19 초창기에는 하루에 환자 10명을 채우지 못할 정도로 환자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에는 전공의가 10명 정도는 있었는데 지금은 나까지 합해서 3명뿐"이라며 "코로나19뿐 아니라 계속 출산율이 떨어지고 앞으로 환자 수가 더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소아청소년과 전공을 선택하는 의사들도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고 했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은 낮은 의료수가로 '박리다매' 식의 운영을 이어온 과 특성상 병·의원들의 수익은 환자 수와 직결된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저출산으로 인한 절대적인 환자 수 감소로 수익에 타격이 더욱 크다고 호소했다.

한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과장 B씨는 "소아청소년과는 미용과 관련된 다른 진료과 등과 달리 높은 수익을 담보로 하는 의료 행위가 없다. 따라서 환자 수가 줄면 안정적인 미래 수익도 불투명해진다. 이 때문에 젊은 의사들 사이에선 점점 소아청소년과 기피 현상이 심해지는 것"이라며 "소아청소년과가 병원 수익 구조에 기여하는 것이 적다 보니 병원 측 지원도 미미한 상황"이라고 했다.

20일 오전 대구 수성구의 한 코로나19 소아특화 거점전담병원이 신속항원검사를 받기 위해 내원한 아이들과 부모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이날 0시 기준 코로나19 신규확진자 38만 여명 중 10살 미만 소아는 4만 8천 여명으로 12.8%를 기록, 인구 10만 명당 발생률이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20일 오전 대구 수성구의 한 코로나19 소아특화 거점전담병원이 신속항원검사를 받기 위해 내원한 아이들과 부모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이날 0시 기준 코로나19 신규확진자 38만 여명 중 10살 미만 소아는 4만 8천 여명으로 12.8%를 기록, 인구 10만 명당 발생률이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대구 한 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 C씨는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은 소아 환자를 다루는 것도 까다롭고, 소아의 부모로부터 들어오는 민원도 상당하기 때문에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다"며 "특히 중환자를 담당하는 상급의료기관의 경우 소아청소년과 교수나 전공의로 근무하던 분들이 형사 처벌을 받으신 분들이 많다. 수익은 낮은 반면 의료사고에 대한 책임은 엄하게 따지는 등 '저수입·고강도' 분야로 인식돼 기피하는 경향이 크다"고 했다.

◆응급실 전공의 감소… 소아 응급진료 공백 위기

전공의가 급감하면서 지난 17일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는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인력 공백으로 진료 체계가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며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지역 의료계는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부족이 소아 응급진료 체계에 공백을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대부분 수련병원에서 소아 중증 환자 및 외래 환자는 전문의가, 응급실은 전공의가 당직을 서며 진료를 맡고 있다. 응급실에 온 환자가 15세 이상이면 응급의학과에서, 15세 미만의 환자가 오면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1차 진료를 담당하는 식이라 응급실 당직을 서는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부족할 경우 현장 진료에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역 대학병원 등에 따르면 당직을 서는 전공의가 부족해 업무가 가중되면서 기존 전공의가 중도 이탈하거나 전문의들까지 응급실 업무에 동원되는 경우가 많은 상황이다.

지역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D씨는 "보통 1, 2년 차 전공의들이 응급실 당직을 서는데 새로 들어오는 전공의가 2년째 없다시피 해 3, 4년 차 전공의들이 당직을 서는 실정"이라며 "현재 4년 차 전공의들은 내년엔 전공의 과정이 끝나기 때문에 병원을 떠나게 될 것이고, 내후년엔 지금 3년 차 전공의도 떠나 병원에 전공의가 1명도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했다.

대대적인 지원책이 나오지 않는 이상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부족 현상이 갈수록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대구 한 소아청소년과의원 의사 E씨는 "전공의 지원자가 한 번 없었던 과는 웬만한 유인책이 나오지 않는 한 계속 지원자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며 "해당 과에 일할 사람이 없다는 뜻이기 때문에 전공의로 들어가면 일을 홀로 떠맡아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전공의는 중환자실을 전담해야 하고, 중환자실과 응급실을 겸해서 근무할 수는 없기 때문에 전문의와 교수들까지 응급실 진료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우리 병원은 중환자실 담당과 코로나 전담 등을 제외하고 현재 소아청소년과 교수 3명이 시간대별로 1명씩 응급실 당직을 서고 있는데, 이 소수만으로 하루 50명 정도 되는 소아 환자를 진료하다 보니 고사 직전이다. 그래도 우리 말고는 환자를 봐줄 곳이 없으니까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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