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순한 말, 순한 마음

김은경 프리랜서 편집자

김은경 프리랜서 편집자
김은경 프리랜서 편집자

'바디버든'(body burden). 일정 기간 체내에 쌓인 유해 물질의 총량을 이르는 말이다. 우리도 모르게 일상생활 중에 몸속에 쌓여 체내에 머무르는 유해 화학 물질은 그것이 쌓이고 쌓여 우리 건강에 치명적인 위험이 되니 많은 사람이 경각심을 가진다.

그런데 그런 유해 화학 물질을 접할 일이 생각보다 많다. 모두 우리가 평소에 흔히 사용하는 일용품이나 먹거리와 관련 있기 때문이다. 화장품이나 샴푸, 세제, 향수 같은 생활용품에서 소시지나 햄, 콜라, 감미료 등의 식료품까지, 그것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성분들이 모두 바디버든에 영향을 주는 원인으로 꼽히는 것들이다.

언젠가 영수증을 만지작거리고 있자니 친구가 그러지 말라며, 만지작거리지도 말고 무심결에 입에 무는 짓은 더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영수증 용지로 쓰이는 감열지에서 검출되는 비스페놀이라는 물질이 내분비계 이상을 일으킨다고 해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이런 상식이나 정보가 적잖이 알려져, 많은 이들이 바디버든의 원인이 되는 유해 물질과 접하지 않도록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는 듯하다. 과일이나 채소를 씻을 때 농약 잔류물이 남지 않도록 꼼꼼히 세척하고, 화장품이나 샴푸 등을 살 때도 전 성분표를 꼼꼼히 확인하려 애쓴다.

그런데 우리 몸 속에 쌓이는 유해 물질도 있지만 마음에 쌓이는 유해 물질도 있지 않을까. 그 중 하나가 독한 언어인 것 같다. 나와 직접적인 상관이 없어도 거친 언어나 독한 말을 듣는 일이 되풀이되면 그것이 우리 마음에 쌓이는 유해 물질인 것 같다. 요즘은 텔레비전이나 신문, 라디오 같은 전통 매체는 물론이고 인터넷처럼 더 전파력이 큰 매체까지 합세해 온갖 거친 말을 전달하고 쏟아낸다.

영상으로, 글로 쏟아지는 많은 말 중에는 인용이라는 이유로 대중에게 그대로 알려지는 거친 말도 많다. 그런 거친 언행을 보고 들은 피로감으로 "안 본 눈 삽니다, 안 들은 귀 삽니다" 하는 유행어가 우스갯소리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유해 물질이 체내에 차곡차곡 쌓여 우리 건강을 해치듯, 유해한 언어가 난무해 차곡차곡 쌓이면 우리 마음을 망가뜨린다. 거칠고 독한 말이 부끄럼 없이, 거침없이 횡행하는 사회가 곧 병든 사회일 것이다.

봄기운이 완연한 날씨에 동네 산책길에 나섰다. 드문드문 벚꽃도 피고 목련꽃은 만개했다. 만개한 백목련나무 아래에 서서 한참을 쳐다보고 계시는 할머니 옆을 지나는 데 혼잣말처럼 하시는 말씀이 귀에 꽂힌다. "야, 참 환하다!"

순수한 환희와 벅찬 감탄이 그대로 실린 할머니의 순한 말에 내 마음까지 다 환해졌다. 좋은 것만 보고 좋은 일만 겪으며 살 수 없는 것이 세상사겠지만 우리 사는 세상이 좀 더 순한 말, 결 고운 생각으로 만발하길 바란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