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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소설 좀 써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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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혁 소설가

김동혁 소설가
김동혁 소설가

소설가로 등단하고 몇몇 시답잖은 작품을 잡지에 발표한 후, 꽤 많은 이들로부터 들었던 말 중 하나는 '나 혹은 누군가의 인생을 소설로 써 보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들의 부탁이 진심을 담은 청탁이 아니라 소설가라는 조금은 낯선 직함을 하나 얻은 나에게 건네는 인사와 축하의 한마디였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시절, 격의 없이 지내던 지인들이나 혹은 집안 어른들과 술자리를 하게 되면 조금 피곤한 상황이 벌어지고는 했다.

'너, 내 인생으로 소설로 한 번 써 봐라. 못 해도 책 열 권은 넉넉히 나올 게다'라는 식으로, 밑도 끝도 없는 대하소설을 요구하거나 '너희 큰아버지 젊었을 적에 그 좋은 전답(田畓) 다 팔아먹고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든 이야기로 소설 쓰면 바로 베스트셀러 작가로 뜰 거다'라는 식으로, 소설을 일종의 응징적 도구로 악용하려는 경우도 있었다. 눈물겨운 회고를 시작하려는 그들에게 '예, 뭐 언제 한 번 써 보죠' 하고 슬쩍 넘겨버리는 경우가 많지만 그때는 무언가 쓰려는 욕구가 강해서였는지 그들의 이야기를 하염없이 들어주다가 결국은 아무런 창작적 영감도 얻지 못한 채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 다반사였다.

소설이 인생을 다루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 사건을 만들고 사건에 휘말린 인생을 소설은 선호한다. 난관에 봉착하고 좌절하고 방황하다가 다시 그 역경을 헤쳐 나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사연은 얼마나 감동적이며 또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가? 문제는 '내 인생'을 단순한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아니라 감동적인 서사로 만들 수 있는가, 글로 적혔을 때 과연 남들도 내 인생을 감동적으로 바라봐 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지인과 술자리에 마주 앉아 '내가 그때 사업에 실패한 후 얼마나 좌절했는지 또 재기를 위해 어떤 각고의 노력을 했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은 참으로 쉽다. 대화는 많은 것을 생략해도 핵심을 전달하는 데 큰 무리가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은 그럴 수 없다. 글자에는 소리나 표정, 분위기 등, 전달을 보조하는 장치가 전혀 없다. 오직 글자로 모든 것을 다 전해야 한다.

또 어디서부터 내 인생의 이야기를 시작할 것인가 하는 구조적 난관도 큰 문젯거리다. 내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태어나면서부터인지, 가난을 이기지 못해 가출을 결심하던 순간부터인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쓴 결혼을 하고 나서인지 등등 수많은 삶의 고비가 적어도 '나'에게는 모두 소중하기 때문에 내 인생 소설의 주요한 테마를 함부로 확정하기가 쉽지 않다.

그뿐이겠는가? 소설에서 다루는 주요 사건이나 인물은 인간 삶이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어떤 '의미'를 가져야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데 내 삶의 한 단면이 그런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는가? 자칫하다간 '뭐 이 정도 사연으로 소설을 쓰고 있어'라는 비아냥거림 속에 내 소중한 인생이 평가절하될 수도 있다.

어느 날, 아주 편안한 술자리에서 이런 인생 소설 창작이 갖는 어려움을 한 친구에게 말해 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야, 사람들이 그런 거 다 알면 직접 소설 쓰지, 뭐 하러 너한테 부탁하겠냐?"

대꾸할 말이 없어 한참 동안 그 친구의 '감동적인 인생스토리'를 들어주다가 나는 녹초가 되어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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