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99세 참전 노병 배수용 옹 "6·25전쟁 참상·희생 알아줬으면"

장사상륙작전 투입 등 6·25 전쟁 당시 죽을 고비 몇번 넘겨
"만약 전쟁나면 젊은이들 얼마나 참전 할지 걱정"

99세의 6·25 참전 유공자인 배수용 옹이 6·25 전쟁 당시의 상황 등을 설명하고 있다. 김진만 기자
99세의 6·25 참전 유공자인 배수용 옹이 6·25 전쟁 당시의 상황 등을 설명하고 있다. 김진만 기자

"전후 세대들이 전쟁의 참혹함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우리들이 이렇게 자유롭고 풍요롭게 잘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99세의 한국전쟁 참전 노병(老兵)인 배수용(경북 경산시 백천동) 옹은 많은 국민들이 6·25 전쟁을 잊혀진 전쟁으로 생각하는 현실이 서글프다고 했다.

100세를 앞둔 어르신이지만 안경을 끼지 않고 휴대폰의 글씨를 읽고 기억력이 또렷할 정도로 정정하다.

그는 1950년 대구에서 대동청년단 활동을 하던 중 전쟁이 발발했다. 국군이 그해 8월 낙동강 전선까지 밀리면서 북한군의 박격포탄이 대구 칠성동에까지 떨어지자 자원 입대를 결심했다.

"당시 27세의 나이로 이미 결혼했지만 내 한 몸 나라를 위한 길이라면 후방에서 몸을 사릴 수 없다는 생각을 했죠. 마침 대구역 광장에서 모병을 하던 육군본부 이명흠 대위의 연설을 듣고 '나라가 있어야 나도 있다'는 생각으로 자원 입대를 결심하게 됐어요."

자원 입대 소식을 고향인 경북 영덕군 지품면에 살고 계시는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알릴 수도 없었다. 자원 입대 한 수백명의 대부분은 18, 19세의 학도병이었고 나머지는 20대 청년들로 그해 8월 24일 대구역 광장에 집결해 대구역에서 화물열차로 밀양역으로 이동했다.

그는 동료들과 밀양 어느 농협 창고에서 가마니 두 장을 지급받아 숙영을 하면서 8월 27일 육군본부 직할 독립 제1유격대대 대원으로 편성됐다. 며칠 후 부산 육군본부로 이동, 12일 동안 기초적인 유격훈련을 받고 9월 13일 부산4부두에서 '문산함' (2천700톤급)을 타고 다음 날 새벽 5시쯤 경북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 해안 상륙작전에 투입됐다.

부대원들은 적의 포화를 뚫고 악전고투 끝에 상륙해 적 후방 교란과 보급로 차단, 퇴각로 봉쇄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당시 엿새간 전투를 벌여 국군 139명이 전사하고 92명이 부상하는 등 큰 희생을 치렀다. 그도 장사상륙작전 때 적의 박격포탄 파편이 양쪽 대퇴부에 박히는 부상을 입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편성된지 3주밖에 되지 않은 부대 대원들이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위한 양동작전의 희생양이었다는 사실에 많이 놀랐고 충격을 받기도 했죠."

장사상륙작전으로 제1유격대대는 많은 전우들을 잃고 부산 육본으로 철수했다. 이후 아군이 북으로 진격하면서 미처 후퇴하지 못한 북한군 패잔병들을 토벌하는 임무를 받고 홍천, 양평, 춘천 등지에서 전투를 하다가 그해 10월 하순 유격대대는 해체됐다.

그는 2사단 32연대로 배속돼 경기도 가평군 화악산을 중심으로 전방 전선에 배치돼 전투에 참여해 동상을 입기도 했다. 1951년 1월 1일 새벽 중공군의 공격에 뚫려 후퇴하던 중 어느 민간 초가집 뒤뜰에 숨어 있다가 적군의 공격을 받았고 변소 잿더미 속으로 몸은 던져 간신히 목숨을 구했다. 이후 보충대와 경북지구병사부사령부에서 근무하다 휴전 후 1954년 4월 제대했다.

그는 전역 후 대구에서 친척의 도움으로 철망제작업을 경영하다 목재회사와 직물공장 등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1980년대 '장사상륙작전 참전유격동지회'를 발족, 활동했다. 그는 상륙지점에 아무것도 없는 모래위에서 사라진 전우의 영혼을 달래는 위령제를 지내는 모습이 안타깝게 여겨졌다.

그래서 그는 최재명, 강정관 동지 등과 함께 50사단과 영덕군을 찾아 다니며 위령탑 건립을 추진했다. 마침내 1991년 9월 14일 위령탑 준공, 2020년 11월 장사상륙전승기념관 준공에 한몫했다.

"전후세대들에게 6·25 전쟁의 참혹함을 바로 알리고, 투철한 국가관을 정립해 주어야 해요. 만약 전쟁이 난다면 젊은이들 중에 과연 얼마나 국가를 위해 참전을 할 지 걱정스럽다."

99세의 6·25 참전 유공자 배수용 옹이 6·25 전쟁 당시의 상황 등을 이야기 하고 있다.. 김진만 기자
99세의 6·25 참전 유공자 배수용 옹이 6·25 전쟁 당시의 상황 등을 이야기 하고 있다.. 김진만 기자

그는 1992년부터 2011년 6월 말까지 무공수훈자회 경산시지회장과 경북도지부 사무국장을 맡아 활동했다. 2017년부터는 6·25참전유공자회 경산시 남부동 분회장 맡아 현재까지 봉사하고 있다.

배수용 옹은 "죽기 전에 장사상륙전승기념관 주위에 묻혀져 있는 무명용사의 유해들을 하루빨라 발굴해 국립묘역에 안장해 주길 바란다"고 희망을 전했다.

경산시재향군인회가 지난 17일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 견학을 하면서 배수용(앞줄 왼쪽 8번째) 호국영웅을 우리는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현수막을 내걸고 기념촬영을 했다. 경산시재향군인회 제공
경산시재향군인회가 지난 17일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 견학을 하면서 배수용(앞줄 왼쪽 8번째) 호국영웅을 우리는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현수막을 내걸고 기념촬영을 했다. 경산시재향군인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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