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빈집 3546] ④있으나 마나한 빈집정비사업

소유주 동의 없으면 빈집정비 불가, 붕괴 가능성 높은 빈집 제외될 수도
달성군, 농어촌 정비법보다 자체 조례로 정비…'300만원 철거 비용 지원'이 전부

[대구 빈집 3546] 연재 순서

<1편> 바이러스처럼 번지는 빈집

<2편> 황폐화된 도시, 고립된 사람

<3편> 주택공급 과잉의 기원, 빈집

<4편> 있으나 마나한 빈집정비사업

<5편> 방치된 '빈집' 해법 찾아야

대구 달성군에 위치한 빈집 모습. 사람들의 발길이 끊겨 잡초만 무성히 자라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대구 달성군에 위치한 빈집 모습. 사람들의 발길이 끊겨 잡초만 무성히 자라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대구 빈집 정비사업 현황. 자료-대구시
대구 빈집 정비사업 현황. 자료-대구시

지난달 28일 오전 찾은 달성군 옥포읍 교향리 인근. 길이가 50m도 되지 않는 골목에 6채의 집이 있었다. 이 가운데 3개가 빈집이었다. 한 채는 담장이 허물어져 누구나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마당에는 부서진 항아리와 시멘트 포대가 나뒹굴었다. 잡초들도 듬성듬성 자라고 있었다.

인근 다른 골목에 있는 빈집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지나가던 박희문(80대·가명) 씨는 "원래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많았다. 오래전부터 비교적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많았다"며 "여기는 젊은 사람들을 찾기 힘들다. 어른들이 돌아가시니 자연스레 빈집이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주인들도 빈집을 찾지 않자 허락 없이 사유지를 침범하기도 한다. 같은 날 달성군 논공읍의 몇몇 빈집에는 건축을 위한 자재들이 쌓여있었고, 공사 트럭이 주차장으로 쓰고 있었다. 한 인부는 "올해 초 공사를 시작한 이래로 단 한 번도 집주인을 본 적이 없었다"며 자재를 올려둔 이유를 설명했다.

◆소유자 동의 없으면 무용지물

장기간 방치된 빈집을 지자체 권한으로 정비할 수 있는 대표적인 정책이 '빈집 정비사업'이다. 도시환경을 저해하고 안전사고 위험이 있는 빈집을 철거하고 주민 생활 공간으로 조성하는 사업이다. 보통 주차장과 텃밭, 쌈지공원 등 공공용지로 조성한다.

문제는 빈집 정비사업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주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조성되더라도 3년의 유효기간이 끝나면 다시 방치될 가능성이 높다. 사유지인 탓에 정작 정비가 시급한 빈집은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대구시에 따르면 지난 2013년 사업이 시작된 이래 2021년까지 모두 370개의 빈집 정비사업이 이뤄졌다. 1년에 약 41채 정도가 주민들의 공간으로 조성되는 셈이다. 2014년~2020년 사이 대구의 빈집이 한 해 평균 170개씩 늘어난 점을 감안하면 약 24% 가량이 정비됐다. 올해도 모두 25개의 빈집을 정비할 계획이다.

대구시는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소규모주택정비법)에 따라 빈집을 정비하고 있다. 빈집 정비를 위해 시와 구는 합동실태조사를 벌이고 철거‧불량 정도가 심한 3~4등급의 빈집을 우선 대상으로 선정한다. 어떤 용도로 조성될지는 소유주와 인근 주민 의견을 검토해 결정한다. 개선 유형으로는 주차장이 152개로 가장 많았고, 꽃밭 85개, 텃밭 78개, 쌈지공원 51개, 운동시설 4개 순이다.

하지만 지자체가 나서서 정비 사업을 펼쳐도 일회성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빈집 정비로 조성된 공공용지 유효기한은 3년이다. 토지 소유주가 재동의하지 않을 경우 지자체가 개입할 권한이 없어 다시 빈집과 다를 바 없이 방치될 우려가 있다.

정비가 시급한 빈집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취재진이 찾은 빈집촌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주택들이 얼마 남지 않은 이웃들을 위협하고 있었지만 사유지인 탓에 소유주 동의 없이는 사업을 진행할 수 없는 곳들이었다.

북구 침산동 한 빈집에서 자란 오동나무가 이웃집을 덮칠 것처럼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임재환 기자
북구 침산동 한 빈집에서 자란 오동나무가 이웃집을 덮칠 것처럼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임재환 기자

지난달 21일 찾은 북구 침산동 한 빈집촌에서는 방치된 빈집의 오동나무가 이웃집을 덮칠 것처럼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이 집은 주인이 집을 비운 지 30~40년이 넘었다.

마을에서 만난 박진숙(75‧가명) 씨는 "나무가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는데, 왜 이렇게 잘 크는지 모르겠다. 늙은 노인들이 무슨 힘이 있어 나무를 벨 수 있겠냐"며 "동사무소에 몇 번이고 이야기를 했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 지자체가 나서서 해결해주면 소원이 없겠다"고 하소연했다.

땅 주인이 다수일 경우 의견 통일부터 어려워 정비사업은 더욱 난항을 겪는다. 한 구청 관계자는 "공동 소유주들에게 공문을 보내고 전화도 꾸준히 취했지만 명확한 답변을 받지 못하기도 한다"며 "이런 경우는 구청에서도 가장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빈집 정비를 강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어도 무용지물이다. 소규모주택정비법에 따르면 시장 및 군수는 붕괴와 화재 등 안전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있거나 위생상 문제가 있는 빈집의 경우 소유주에게 철거 등 조치를 명할 수 있다. 이때 소유주는 60일 이내에 조치해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이행강제금이 부과된다.

하지만 지자체는 절차가 복잡하다는 이유로 빈집 정비 강제이행에 손을 놓고 있다. 지난 2013년 빈집정비사업이 시작된 이래 강제 이행은 단 한 건도 없었다. 대구시 관계자는 "지자체 내에서 주민 의견을 수합하고, 지방건축위원회 심의까지 거쳐야 한다. 소유자가 있는 상황에서 법적인 근거를 갖고 이를 강제하는 데 부담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 농어촌정비법도 속수무책

농어촌특별정비구역에 해당되는 달성군은 농어촌정비법에 근거해 빈집을 정비할 수 있다. 1994년 제정된 농어촌정비법은 2017년 제정된 소규모주택정비법보다 역사가 깊고 빈집 소유자에 대한 재정적 지원에 관한 규정도 담고 있다. 도시 지역에만 적용되는 소규모주택정비법과 달리 주택뿐만 아니라 건축물도 빈집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달성군은 농어촌정비법은 활용하지 않고 있다. 지난 2017년부터 '빈집 정비 및 관리에 관한 조례'를 자체적으로 만들어 빈집을 관리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1년 이상 거주하지 않거나 사용하지 않는 주택 또는 건축물을 철거하는 소유자에게 최대 300만원의 철거비용을 지원한다.

문제는 300만원의 철거 비용을 제공한 뒤로 어떠한 개입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앞서 7개 구가 빈집을 철거한 후 소유주와 주민 의견을 반영해 공공용지까지 조성하는 것과는 비교된다. 심지어 달성군은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사후 조사도 하고 있지 않다.

달성군 화원읍 한 빈집이 철거된 후 방치된 채 돌멩이들만 나뒹굴고 있다. 심헌재 기자
달성군 화원읍 한 빈집이 철거된 후 방치된 채 돌멩이들만 나뒹굴고 있다. 심헌재 기자

이 때문에 빈집이 철거된 땅이라도 빈집과 다름없이 방치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실제 올해 달성군청의 지원을 받아 빈집이 철거된 5곳을 돌아보니 3곳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한 곳은 철거가 언제 됐는지 모를 정도로 돌멩이들만 나뒹굴고 있었다. 또 다른 한 곳은 어떤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지 알 수조차 없었다.

이 땅 주인 윤미숙(60대‧가명) 씨는 "빈집이 흉하다는 말에 철거했지만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계획은 없다. 현재는 간이 주차장으로 쓰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달성군이 빈집을 철거하더라도 '1년 동안 나대지로 놔둬야 한다'는 조건을 둔 탓에 방치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달성군청 관계자는 "해당 사업은 빈집을 철거하는 데 중점을 뒀다. 1년 동안 나대지로 둬야 한다는 조건이 없으면 빈집 철거 후 신축과 텃밭 등 사익을 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해명했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