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연약한 존재들의 연결이 갖는 생명력, 미완의 아름다움…봉산문화회관 ‘자라나다’전

반주영 작가 유리상자 설치 작품…9월 25일까지

반주영, Life(ongoing project), approx 394x372cm, hand sewing work, tracing paper, thread, acrylic, 2004~2022.
반주영, Life(ongoing project), approx 394x372cm, hand sewing work, tracing paper, thread, acrylic, 2004~2022.

얼핏 보면 거대한 꽃잎 하나가 투명 유리로 둘러싸인 전시장을 가득 채운 모습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붉은 색의 종이 조각들이 한땀 한땀 바느질로 이어져 있다. 멈춰진 상태지만, 바깥을 향해 뻗어나가려는 움직임이 역동적이기까지 하다.

반주영 작가의 작품 'Life'는 2004년부터 2022년 현재까지 18년간 제작된, 앞으로도 진행될 장기 프로젝트다. 작가는 불투명한 트레이싱지에 붉은 색의 아크릴 물감을 바르고 말린 뒤, 찢은 조각들을 손바느질로 꿰매어 이어간다.

그는 대학원 시절 작업실 바닥에 흩어져 있던 붉은 트레이싱 조각들을 주워서 즉흥적으로 붉은 실로 바느질하며 조각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완성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나 의도 없이, 일종의 놀이이자 실험으로 '자라나가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

작품은 전시마다 조금씩 다른 형태와 크기를 보여왔다. 작품 초기 벽에 설치됐던 작품은 시간이 흐르며 점점 자라나 전시장 한가운데로 나오게 됐다. 조각이 꿰매지면서 틈과 굴곡이 자연스럽게 생겼고, 일부는 노르스름하게 변색되거나 손상된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끊임없이 형태의 구성이 해체되고 재배치되며 성장하는 작품. 작가는 시간의 흐름을 통해 달라지는 작품이 마치 매순간 변화를 겪는 우리의 삶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반주영, Life(ongoing project), approx 394x372cm, hand sewing work, tracing paper, thread, acrylic, 2004~2022.
반주영, Life(ongoing project), approx 394x372cm, hand sewing work, tracing paper, thread, acrylic, 2004~2022.

그는 작가노트를 통해 "연약한 종이 조각들이 서로 꿰매어져 연결되면서 강한 힘과 생명력을 지니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작은 한 조각의 종이가 나, 우리들 같다는 생각이 든다. 힘을 합치면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커다란 무언가가 될 수도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들"이라고 했다.

이어 "우리의 삶은 불투명한 종이처럼 불안정하고 불확실하며 불완전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미완이기에 아름다우며 존재함 그 자체로 완전함을 말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반주영 작가의 작품 'Life'는 봉산문화회관이 지난해 공간 확장을 주제로 한 '유리상자-아트스타' 전시공모에 선정돼 현재 2층 아트스페이스에서 전시 중이다. 전시명은 '자라나다'.

조동오 봉산문화회관 큐레이터는 "넓은 의미에서 과정미술이라 볼 수 있는 작가의 이러한 실험은, 지난해 공모 심사 당시 인내와 끈기, 정성을 쏟아 붓는 작업 태도, 시간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환원시킨 직관적 표현의 참신함까지 다방면으로 좋은 평을 받았다"며 "무계획적으로 보이지만 지속적으로 자라나고 변화하는 작품을 실현하는 과정을 통해 작가는 존재의 본질을 구성하는 힘과 활동성을 키워가고 있다"고 말했다.

전시는 9월 25일까지. 월요일과 추석 연휴는 휴관이다. 053-661-3500.

반주영, Life(ongoing project), approx 394x372cm, hand sewing work, tracing paper, thread, acrylic, 2004~2022.
반주영, Life(ongoing project), approx 394x372cm, hand sewing work, tracing paper, thread, acrylic, 200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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