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문환의 세계사] 여름해변 수놓는 비키니…4세기에도 입었다

혼탕서 살짝 가리고 공놀이…황제도 스캔들 걱정 "안 가겠다"
1946년 佛서 등장한 줄 알았던 패션 로마 황제 별장 바닥장식에서 확인
일자로 가슴에 두르는 다양한 형태…비치 발리볼 떠오르게 하는 모습도

여름 피서라고 하면 바다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한없이 안기고픈 푸른 하늘, 무작정 뛰어들고픈 쪽빛 바다, 곱디고운 흰 모래. 파라솔 그늘서 쉬거나 멀리 수평선 위로 아른거리는 흰구름과 갈매기…. 무엇보다 수영복, 특히 여인들의 비키니(Bikini)는 여름 바다의 상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키니는 언제부터 입기 시작했을까? 해변 모래사장에서 펼쳐지는 원색의 향연, 비키니 차림 비치 발리볼(Beach Volleyball)은 현대의 경기일까?

카잘레 빌라. 이탈리아 시칠리아 피아짜 아르메리나에 자리한 로마시대 4세기 유적이다. 내부에 다양한 로마 모자이크가 바닥에 그대로 남아 있다.
카잘레 빌라. 이탈리아 시칠리아 피아짜 아르메리나에 자리한 로마시대 4세기 유적이다. 내부에 다양한 로마 모자이크가 바닥에 그대로 남아 있다.

◆원자폭탄 실험장소 비키니 환초에서 따온 이름

비키니는 태평양의 절해고도(絶海孤島). 아주 외로운 섬. 북태평양 마샬 군도 북쪽 북위 11도 지점의 푸른 바다 위에 살짝 얼굴만 내밀고 앉은 섬을 가리킨다. 정확히 비키니 환초(環礁, Bikini Atoll)다. 그러니까 산호가 죽어서 쌓여 생긴 섬인데, 가운데가 뻥 뚫려 고리처럼 생겨 환초라고 부른다.

이 비키니 환초가 1946년부터 미국의 원자폭탄과 수소폭탄 실험장소로 활용됐다. 지금부터 정확히 77년 전 1945년 8월 7일 히로시마, 9일 나가사키에 미국이 단 2번 사용한 가공할 위력의 핵폭탄만큼이나 충격적이라고 붙인 이름이 비키니다.

비키니는 2차 세계대전 뒤인 1946년 프랑스에서 등장했다. 뭔가 깜짝 놀랄만한 자극이 필요한 시대적 분위기 아래 패션의 나라 프랑스에서 첫선을 보였다. 수영복의 위아래 그러니까 상반신과 하반신을 연결하는 부분을 없앤 거다.

원피스 수영복에서 투피스 수영복으로 바꾼 비키니를 입고 사진을 찍은 모델 베르나르디니는 무려 5만 통의 팬레터를 받았다고 한다. 그만큼 선풍적인 관심이 쏠렸지만, 바로 대중화되지는 않았다. 여성의 신체를 드러낸다는 것이 이때만 해도 용인되기 쉽지 않은 분위기 탓이다.

1951년 국제 여성 미인선발대회에서 비키니 수영복 심사를 도입했다가 그 이듬해 이브닝 드레스 심사로 바꾼 점은 당시 지구촌의 분위기를 잘 말해준다.

가톨릭의 보수적 문화가 강했던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에서는 법으로 금할 정도였다. 미국에서는 비키니를 갈리아(프랑스의 로마 시대 지명)의 키 작은 여인(라틴민족은 게르만 민족보다 체구가 작음)이 커 보이려고 입는다면서 깎아내렸다.

비키니 모자이크 전경. 카잘라 빌라 내부의 여러 모자이크 가운데, 상의 스트로피움, 하의 수블리가쿨룸 복장을 한 여인들이 등장한다. 4세기.
비키니 모자이크 전경. 카잘라 빌라 내부의 여러 모자이크 가운데, 상의 스트로피움, 하의 수블리가쿨룸 복장을 한 여인들이 등장한다. 4세기.

◆유명 여배우들이 입으며 1960년대 대중화

1950년대 프랑스의 여배우 브리지뜨 바르도가 고향이 프로방스 지방 지중해안 생 트로페 등지 해변에서 입기 시작하며 눈길을 끌었다. 1953년 프랑스 칸느 영화제에 브리지뜨 바르도가 비키니를 입고 등장한 것은 물론, 영화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1956년)'에서 입으며 비키니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다.

스위스 출신의 여배우 안드레아 우르술라는 숀 코네리가 주연한 '007 본드' 시리즈 1편 [닥터 노(1962년)]에서 본드걸로 비키니를 입고 등장해 찬사를 받았다.

이 영화는 비키니의 대중화는 물론 미국진출의 촉매제가 됐다.

미국에서 포르노 잡지 '플레이보이'에 1962년 처음 비키니 차림의 여성이 등장했다. 그리고 2년 뒤, 1964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I)라는 잡지에 비키니 차림이 실렸다. 비키니는 1960년대 중반 이후 미국과 전 세계 해변으로 퍼져 나갔다.

1960년대 말 이후 반전 문화, 히피 문화, 미니스커트 문화와 맞물리면서 여름철 여인 수영복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이제 60여 년 역사다.

현대 비치발리볼을 연상시킨다. 목욕탕 체력단련장인 팔레스트라의 공놀이방 스파이리스테리온에서 펼쳐지던 하르파스툼이라는 공놀이 장면이다. 4세기.
현대 비치발리볼을 연상시킨다. 목욕탕 체력단련장인 팔레스트라의 공놀이방 스파이리스테리온에서 펼쳐지던 하르파스툼이라는 공놀이 장면이다. 4세기.

◆이탈리아 시칠리아. 로마 비키니 모자이크

발길을 여름 해변에서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의 내륙 한가운데 산속으로 옮겨보자. 알파치노가 열연했던 영화 [대부(1972년)]의 무대이기도 했던 시칠리아는 유럽 최고봉 애트나 화산을 지붕 삼아 아름다운 자연과 온화한 기후가 한데 어우러진 곳이다.

로마시대 유적도 여럿 있는데, 특히 주목받는 곳이 중부 내륙 산간 지역에 있는 시골마을 피아짜 아르메리나(Piazza Armerina)다. 뾰족 지붕을 가진 하얀 집들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낡아 가는 아담한 마을 피아짜 아르메리나 시내 중심지에서 남동쪽으로 3km 정도 가면 만고네산이 나온다. 울창한 숲 사이로 로마시대 카잘레 빌라(Casale Villa)가 탐방객을 맞이한다.

카잘레빌라는 63개의 방으로 이뤄졌으니, 우리네 99칸 대갓집보다 방의 수는 적다. 하지만, 호화롭기는 한참을 앞선다. 발굴을 통해 보니 43개 방에서 바닥 모자이크(Mosaic, 대리석이나 유리를 1~5mm로 잘게 조각내 원하는 디자인으로 포장한 바닥장식)를 확인할 수 있었다.

모자이크로 덮인 면적만 3천 5백㎡, 논으로 치면 1천 평, 5마지기나 된다. 3세기 말이나 4세기 초 서로마 황제 막시미아누스의 별장이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학자가 많다. 이 빌라 바닥 모자이크에 비키니를 입은 여성들이 다수 아름다움을 뽐낸다.

◆로마시대 이름. 상의 스트로피움, 하의 수블리가쿨룸

위에 입는 상의를 스트로피움(stropium), 아래 입는 하의를 수블리가쿨룸(subligaculum)이라고 불렀다.

스트로피움은 여성전용이다. 어깨끈이 없는 브레지어와 같은 형태다. 일자로 가슴에 두른다.

수불리가쿨룸은 남녀 공용이다. 로마시대 영화를 보면 검투사들이 삼각팬티를 입고 검투경기를 펼친다. 그 하의가 수블리가쿨룸이다. 카잘레 빌라 스트로피움과 수블리가쿨룸을 보면 색상이나 디자인이 달라 당시 여인들이 패션을 고려해 입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원래 모자이크에 묘사된 여성은 모두 10명인데, 1명이 훼손돼 9명만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1명은 한쪽 가슴이 터진 긴 드레스를 입었고, 나머지 8명이 비키니 차림의 스트로피움과 수불리가쿨룸을 입었다. 8명 가운데, 2명의 여성이 비치 발리볼 풍경을 연출해 낸다.

알록달록한 공을 머리 위에서 쳐내는 장면이 모자이크에 담겼다. 남아메리카 어느 해변에서 1970년대 이후 생긴 것으로 추정되는 비치 발리볼과 한 치의 오차가 없다.

탐방객들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혀가 절로 나온다. 그렇다면, 로마여인들도 해변에서 비치 발리볼을 즐겼을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로마 여성들이 비키니 차림의 옷을 입고 공놀이를 하는 것은 맞는데, 경기종목은 비치 발리볼이 아니라 하르파스툼(harpastum)이라는 공놀이다.

216년 완공된 카라칼라 황제 목욕탕 잔해. 수천 명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었다. 이런 대형 목욕탕에서 하르파스툼이 펼쳐졌다.
216년 완공된 카라칼라 황제 목욕탕 잔해. 수천 명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었다. 이런 대형 목욕탕에서 하르파스툼이 펼쳐졌다.

◆로마 목욕탕 스파이리스테리온의 공놀이, 하르파스툼

"베나리(VENARI)=사냥, 라바리(LAVARI)=목욕, 루데레(LUDERE)=경기, 리데레(RIDERE)=쾌락, 호끄 에스트 비베레(HOC EST VIVERE)= 이것이 사는 것." 북아프리카 알제리에 남아있는 로마시대 유적 팀가드의 건물 초석에 적혀 있던 말이다.

라틴어 단어들이 낯설지만, 살만한 인생으로 보인다. 사냥 다니고, 목욕으로 피로를 풀며 지인들과 교유하고, 검투경기나 전차경주 관람으로 스트레스를 날리고, 저녁이면 심포지엄에서 포도주를 즐기며 쾌락에 탐닉하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로마 목욕은 요즘 생각하는 동네 목욕탕의 때밀이 차원을 넘어선다.

로마제국의 심장부였던 이탈리아 수도 로마로 가보자. 5만여 명 가까운 관중을 수용할 수 있었던 광기의 살육현장 콜로세움에서 가까운 거리에 카라칼라 황제 목욕탕의 거대한 잔해가 자리한다.

216년 카라칼라 황제(재위 211년~217년) 시절 완공된 목욕탕의 건물 높이는 무려 40여m에 달했다. 바닥의 질척거림을 방지하려고 설치한 화려한 모자이크가 아직도 일부 남아 화려했던 전설을 피워 올린다.

수천 명의 로마 시민들이 한꺼번에 목욕을 즐기던 이곳에는 다양한 시설이 있었다. 목욕이나 사우나 시설, 주점, 음식점…. 이 가운데 눈길을 끄는 장소가 체력단련장인 팔레스트라(palestra)다. 알몸으로 운동하던 팔레스트라에 공놀이 하르파스툼을 즐길 수 있는 스파이리스테리온(spairisterion)이 있다.

◆기독교 시대, 게르만족 시대 사라진 목욕과 비키니의 부활

목욕탕에서 여성들이 비키니 차림으로 알록달록한 작은 공을 머리 위로 치는 하르파스툼 장면을 시칠리아 카잘레 빌라에 모자이크로 설치한 것이다. 물론 하르파스툼은 남녀가 모두 즐길 수 있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재위 117년-138년)도 목욕탕을 찾아 공놀이에 탐닉할 정도였다. 남녀 혼탕이 흔했던 로마시대 스파이리스테리온에서 하르파스툼에 열중하는 비키니 차림의 여인들은 뭇 남성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을 것이다. 당연히 스캔들도 생겨났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스캔들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목욕탕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할 정도였다. 이런 분방한 문화는 2가지 요인이 겹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먼저 기독교의 등장이다. 313년 서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동로마 리키니우스 황제가 밀라노에서 칙령을 발표하고 기독교를 공인했다.

이어 393년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기독교를 국교로 삼았다. 엄숙하고 단정한 기독교 문화에서 여성들이 비키니 차림으로 목욕하고 운동하는 문화는 퇴조해 갔다. 또 하나, 476년 서로마 제국을 무너트리고 등장한 게르만족의 등장이다.

목욕에 익숙하지 않던 게르만족이 지배하면서 로마의 목욕문화는 자취를 감췄다. 비키니 차림 의상은 1천 600여 년 지나 2차 세계대전 이후 부활의 날갯짓을 펼쳤고, 현대사회 여름날 해변을 화려하게 수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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