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위기, 약한 고리부터 챙겨야

한윤조 사회부 차장
한윤조 사회부 차장

한 지인이 "70만 원 수준이었던 아파트 대출 원리금이 170만 원까지 치솟았다"면서 "1년 새 월급쟁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수준으로 이자가 치솟았는데 이제 와서 아파트를 팔자니 부동산 가격이 올 들어서만 1억 원 가까이 떨어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정"이라고 땅이 꺼져라 한숨만 내쉬었다.

더 큰 걱정은 이게 끝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여전히 금리 인상 기조가 유지될 전망이 우세하다 보니 이 사례의 경우 곧 한 달 대출 원리금 상환액이 200만 원을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

시장에서는 깻잎과 시금치 등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워낙 가격이 치솟다 보니 상인들이 가져다 팔기조차 부담스러워 아예 물건을 떼 오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10만 원을 들고 장을 보러 가면 예년에 비해 장바구니에 담기는 물건의 양이 절반도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체감 물가 상승은 심각하다.

각종 경제지표들이 경기 침체의 신호를 뚜렷하게 보내고 있다. 코로나19가 진정 단계로 접어드는가 싶더니 이젠 코로나19 파고를 넘어서기 위해 세계 각국이 풀었던 돈이 부메랑이 돼 경제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 코로나 집합금지에서 벗어나 이제 거의 일상을 회복하고 있지만, 경제는 오히려 정반대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문제는 그 여파를 서민 개개인들이 고스란히 감당해야 할 뿐, 정작 정부는 현실적인 삶의 고충 해결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를 지켜보며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대체 닭이 먼저일까, 달걀이 먼저일까와 비슷한 의구심이다.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한 고금리는 과연 효과가 있는 것인가? 효과가 있다 하더라도 그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서민들의 고충은 간과해도 되는 것인가?

물가를 억제하기 위해 금리 인상을 통해 거시경제지표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것이 전 세계 금융 당국의 기조다. 하지만 여기에는 큰 대가가 따른다. 코로나19 사태가 계속되는 동안 대출로 근근이 사업을 유지해 왔던 자영업자들은 벼랑 끝에 내몰렸고, 대출을 받아 집을 구매하거나 전세를 살고 있는 이들 역시 막대한 이자 부담을 안게 되기 때문이다.

반면 금리는 '빅스텝'으로 껑충껑충 뛰는 데 비해 물가는 좀처럼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애초 물가 상승의 원인 중 하나가 전 세계 각국이 통화량을 크게 늘린 탓도 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사태로 촉발된 연료와 곡물 유통이 크게 줄어든 이유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아무리 금리를 올린다 하더라도 서민들의 삶과 직결되는 갖가지 물가를 안정화시키기엔 역부족인 상황이다.

경기 상황마저 좋지 않다. 무역수지가 적자로 돌아서면서 전문가들은 '퍼펙트 스톰'(초대형 복합 위기)을 경고하고 있다. 개인들은 치솟는 금리와 물가에 소비 여력조차 없어 지갑을 닫고 있고, 이는 기업들의 매출 감소로 직결된다. 게다가 기업들은 고물가, 고환율에 차라리 생산을 포기해야 할 상황이라고 아우성이다.

결국 이 상황에서 새우 등 치이는 것은 월급쟁이와 자영업자 서민들이다. 지금의 경제 위기는 과거 1997년 IMF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역사상 직면해 본 적 없는 다양한 위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문제를 푸는 해법 역시 기존의 방법이 아닌 새로운 접근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방법만으로는 좀처럼 벼랑 끝에 내몰린 서민의 삶을 구할 길이 없어 보인다. 부디 가장 약한 고리인 서민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정부의 노력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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