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결혼·꿈 등 선택의 갈림길마다 생겨나는 우주…'멀티버스'와 B급 유머 버무려 신선한 맛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한 장면. 워터홀컴퍼니(주) 제공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한 장면. 워터홀컴퍼니(주) 제공

풍자, 해학, 유치, 병맛….

양자경 주연의 SF액션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감독 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는 한 가지로 콕 집어 얘기하기 어렵다. 팝콘 터지듯 사방팔방으로 날아다니는 영화다. 관객이 따라잡을 새도 없이 치닫는다. 혼란한 이미지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고, 쿵푸 액션이 난무한다.

이야기는 미국에서 빨래방을 운영하는 중국계 이민 1세대 아줌마 에블린(양자경)으로 시작한다. 그녀는 지금이 인생의 고비이고 최악이다. 왜 하필 이 남자와 결혼해 이 같은 딸을 낳았을까. 인생을 돌릴 수만 있다면 돌리고 싶다. 딱 이런 심정의 중년 여성이다.

빨래방에는 온갖 진상들이 설치고, 이마저 세무당국에 뺏길 판이다. 서류 준비에 눈코 뜰 새도 없는데, 착하지만 멍청한 남편(키 호이 콴)은 이혼 서류를 준비했다. 반항적인 딸(스테파니 수)은 동성 친구를 애인이라며 데려온다. 정신을 수습하고 아버지와 남편과 함께 세무조사관(제이미 리 커티스)을 찾아가는 엘리베이터 안, 어리숙하던 남편이 갑자기 변했다. 이상한 말들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눈앞에는 알 수 없는 모습이 펼쳐진다.

이 영화(제목을 왜 이렇게 어렵게 영어로 해놓았을까?)는 다중우주, 멀티버스를 소재로 하고 있다. 여러 개의 우주가 함께 존재한다는 것인데,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에서 선택에 따라 또 하나의 우주가 생성돼 한 인간은 수만 개의 우주를 가지고 있다는 설정이다.

아버지가 나를 버리지 않았다면, 이 남자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배우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면, 미국으로 건너오지 않았다면…. 두 개의 우주가 네 개의 우주가 되고, 여덟 개의 우주가 되면서 기하급수적인 우주가 생긴다. 이 우주를 파괴할 강력한 악인이 지금 에블린을 찾아오고 있다. 이를 알게 된 다른 세계의 남편이 그녀를 각성시키려고 한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한 장면. 워터홀컴퍼니(주) 제공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한 장면. 워터홀컴퍼니(주) 제공

이미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2022)나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2021) 등을 통해 멀티버스는 익숙한 세계관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풀어내는 방식과 표현이 가히 끝판왕이라 할 정도로 기상천외하다. 미국식 B급 유머와 키치 개그, 중국 무술과 할리우드식 액션, 고전과 현대의 패러디 등을 한 솥 안에서 볶아 버린다. 아예 B급이라고 내 세우니 주류와 키치를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소시지 손가락, 딜도 쌍절곤처럼 유치한 표현도 서슴없이 내 지른다.

그런데 이 영화 신선하다. 소위 '병맛'의 맛이다. '병맛'은 맥락이 없고 어수선한 콘텐츠를 뜻하는 인터넷 유행어다. 잘 만들 수 있지만, 일부러 비틀어 형편없어 보이는 것이다. 처음에는 조롱의 의미였지만, 지금은 B급 문화로 인정받고 있다. B급은 항상 열광적인 지지팬들이 형성된다. 새로움에 눈을 뜬 팬들의 선택이다.

지난 6일 부산국제영화제 오픈 시네마 상영에서는 4천여 명의 관객이 몰려 최다 관객수 신기록을 달성했다. 북미에서는 올해 3월 10개 상영관에서 개봉했지만 입소문 끝에 3천여 개 상영관으로 확대돼 6천9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고, 글로벌 수익 1억 달러를 돌파했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한 장면. 워터홀컴퍼니(주) 제공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한 장면. 워터홀컴퍼니(주) 제공

감독은 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의 공동 연출로 이들은 방귀 냄새 진동하는 '스위스 아미 맨'(2016)이란 영화로 함께 호흡을 맞춘 적 있다. 아예 '병맛'으로 진가를 발휘한 인물들이다.

이 영화는 진폭이 상당히 넓다. 아예 엄마와 딸이 태초의 무생물인 돌이 돼 대화를 나누는 우화는 상당히 심오하면서 시사적이다. "그냥 돌처럼 굴어!" 어떤 삶이 최선일까. 결국 지금의 삶이 최선이고 최고이지 않을까. 이를 인정하고, 좀 더 친절하게 굴면 그것이 잘 사는 것 아닐까.

기존 영화에 대한 패러디도 여럿 등장한다. 특히 호모 사피엔스가 탄생하기 전 유인원들이 처음으로 도구를 쓰게 되는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1968)를 패러디한 장면에서는 박장대소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흐르는데, 그 장엄함과 유치함의 간극은 놀랍기만 하다.

영화를 끌어가는 양자경의 연기는 힘이 있고 입체적이다. 더 이상 '예스 마담'(1985), '와호장룡'(2000)의 평면적인 캐릭터가 아니다. 세상 모든 것을 체득한 한 여자, 그리고 엄마, 아내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남편으로 나온 키 호이 콴은 '인디아나 존스2'(1984)에서 해리슨 포드와 함께 나온 재간둥이 중국 소년이다. '구니스'(1986) 등 40,50대 팬들에게 익숙한 배우지만, 20년 만에 이 영화로 연기를 다시 시작했다. 세무 조사관으로 나온 제이미 리 커티스 또한 인상적인 존재감을 보여준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멀티버스에 대한 이해와 B급 문화에 대한 관대함이 있는 관객이라면 틀림없이 환호를 보낼 영화다. 139분. 15세 이상 관람가.

김중기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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