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알파벳 'K'가 수식어로 붙는 분야가 참 많다. 'K-컬처(Culture)'가 대표적이다. 'BTS(방탄소년단) 보유국'이 만든 '기생충' '미나리' '오징어게임' 등은 세계를 놀라게 했고, 주인공들은 글로벌 스타 반열에 올랐다.
한국이 세계 영화제에서 첫 남우주연상을 받고 환호했던 1993년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이 든다. 그해 모스크바에서 이덕화 배우는 망나니의 삶을 그린 '살어리랏다'로 영광을 안았다. 경쟁자는 '아이언맨'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리차드 아텐보로 감독의 '채플린')였다!
그 장면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상품도 좋아야 하지만 마케팅 역시 중요하다는 점을 알게 됐다. 영화진흥위원회 관계자들을 비롯한 각계 인사가 물밑에서 백방으로 힘을 보탠 게 적지 않게 도움이 됐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기 마련이다.
30년 전 이야기를 꺼낸 건 최근 전해진 씁쓸한 소식 때문이다. 매년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하는 유엔 핵심 기구 가운데 하나인 인권이사회 이사국 선거에서 한국이 처음으로 떨어진 일이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외교 참사론' 공방이 벌어질 만큼 충격적이다.
한국은 아시아 몫 4석을 두고 경합한 6개 나라 중 득표 5위였다. 방글라데시·몰디브·베트남·키르기스스탄이 축배를, 아프가니스탄이 우리와 함께 고배를 마셨다. 취임사에서 "세계 시민 모두의 자유와 인권을 지키고 확대하는 데 더욱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새 정부로선 창피하기 짝이 없는 사고다.
정부는 전임 정부가 각종 국제기구 선거에 너무 많은 후보를 낸 게 패인이란 입장이다. 선거마다 지지를 호소하다 보니 마케팅 효과가 분산됐다는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보다 인권 선진국이라 할 수 없는 나라들에 뒤졌다는 건 납득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이 글로벌 인권 이슈에서 신뢰를 잃은 탓이란 해석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한국은 2019년부터 중국의 신장위구르족 인권탄압에 대한 비판 성명에 동참하지 않았다. 심지어 2020년에는 대북전단살포금지법으로 국제사회의 비난을 자초했다.
중국은 2006년 인권이사회 출범 때부터 자국에 대한 반대 여론 확산 차단에 공을 들였다. 호주 학자 클라이브 해밀턴과 머라이커 올버그는 저서 '보이지 않는 붉은 손'(Hidden hand)에서 "중국은 특정 국가에 대한 결의안을 채택하려면 회원국 3분의 2 찬성을 확보해야 하는 규정을 만들려고 애썼다"며 중국의 행태를 비판했다.
저자들은 또 '중국공산당이 세계를 어떻게 개조(reshaping)하려 하는가에 대한 폭로'라고 부제를 붙인 이 책에서 "중국은 자국 인권 상황을 기꺼이 찬양할 나라들에 발언할 기회를 주려고 애쓴다"라고도 지적했다. 정의용 전 외교장관이 지난해 미국외교협회 초청 행사에서 "중국은 국제사회 다른 멤버들에게 중국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싶은 것"이라며 중국의 공세적 외교를 두둔한 일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이 이번 주에 확정된다. 미국과 중국 사이 지정학적 단층대가 활성화되면서 우리에겐 어느 때보다 힘든 외교안보적 도전의 시기가 닥쳤다. 중간국의 국제관계 전략 중 '회피'(hiding)는 이번 일로 실익이 없는 것으로 드러난 가운데 그동안의 '양다리 걸치기'(hedging)와 '균형'(balancing)마저도 쉬워 보이지 않아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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