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영화 ‘캐릭터’

안 풀리던 만화가, 우연히 목격한 살인마 캐릭터로 만들어 대히트
만화 작화·장면 묘사 디테일 공들였지만 정형화된 캐릭터 아쉬워

영화 '캐릭터'의 한 장면.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영화 '캐릭터'의 한 장면.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그림 솜씨는 좋지만 사실적인 악역 캐릭터가 없어 만년 어시스턴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만화가 야마시로 케이고(스다 마사키). "경험이 부족한 것 아냐?"라는 조롱까지 받아, 이제 만화가의 꿈을 접으려고 한다. "오늘까지만 일하겠다"고 선언한 그날, 행복한 집 스케치를 자청해 한적한 주택가에 도착한다. 그리고 끔찍한 일가족 살인사건을 목격한다.

'캐릭터'(감독 나가이 아키라)는 무명 만화가가 연쇄 살인마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스릴러이다. 야마시로는 살인범의 얼굴을 기억한다. 스타일리시한 모습에 흉기를 든 손도 보았다. 그러나 경찰에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이를 소재로 만화를 그린다. 그가 그린 리얼한 범죄 시리즈물 '34'는 대히트를 치며 유명 작가가 된다.

드디어 선명한 악역 캐릭터를 창조해낸 것이다. 창백한 소름, 소름 돋는 미소, 공허한 눈빛. 그가 실제 보고 피 냄새를 맡았기에 살해 현장에 대한 묘사도 끔찍할 정도로 리얼하다. 팬들은 그의 만화에 열광한다.

먹을 머금은 펜촉의 사각거리는 소리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만화의 왕국답게 작화의 디테일한 과정을 영화 속에 잘 녹였다. 일본 유명 만화가 후루야 우사마루, 에노 스미가 참여해 디테일이 살아 있는 작화를 구현했다. 만화 잡지 연출부도 실제 공간을 빌려 촬영해 실감난다. 만화를 좋아하거나 지망생이 보면 꽤 가슴이 뛸 만한 배경이다.

무명 만화가의 애환도 잘 묘사하고 있다. 창작가의 고통과 이름을 알리고 싶은 욕망도 잘 녹아 있다. 원안과 각본을 맡은 나가사키 타카시('20세기 소년' 공동집필)의 솜씨다. 무명 만화가의 끊어지는 생명을, 실제 벌어지는 살인으로 다시 살려내 서스펜스를 고조시키는 설정도 무난하다.

영화 '캐릭터'의 한 장면.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영화 '캐릭터'의 한 장면.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캐릭터'는 살인범을 찾는 수사물이 아니다. 시작부터 범인의 얼굴은 노출된다. 영화는 살해의 동기에 초점을 맞추고, 이를 인기 만화와 연계시켜 흥미를 유발한다. 만화 속 장면과 동일한 수법의 살인이 이어지면서 형사 세이다 슌스케(오구리 슌)가 야마시로를 찾아온다. 그리고 또 한 명의 팬이 그에게 접근한다. 끔찍한 연쇄살인마이다.

만화가와 살인마, 이를 쫓는 형사의 삼각 인물설정이다. 왜 4인 가정의 행복한 가족들을 타깃으로 노리는지, 살인마의 정체는 누구인지, 그가 왜 만화에 열광하는지 등이 후반을 떠받치는 서스펜스 요소들이다.

'캐릭터'는 촬영이나 미술, 미장센 등에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광기로 가득 찬 살인마의 방이나, 습작과 자료로 가득 찬 만화가의 방, 피로 범법이 된 살해 현장 등에서 디테일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일본영화의 전유물(?)이라고 할 샤우팅 연기가 많이 줄었다. 과몰입, 과잉 연기로 리얼리티를 떨어뜨리던 일본식 연기가 좀 더 리얼한 연기로 바뀌었다는 말이다. '은혼', '큐브' 등 드라마와 영화에서 활약하고 있는 스다 마사키, '클로우즈 제로'의 오구리 슌, 인기 보컬 후카세 등이 자신의 캐릭터를 무난하게 연기해낸다. 살인마를 연기한 후카세는 처음 도전한 연기지만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신인배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영화 '캐릭터'의 한 장면.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영화 '캐릭터'의 한 장면.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제공

영화의 제목이 '캐릭터'이다. 캐릭터를 창조하는 창작자들의 길고 어려운 고난이 느껴진다. 캐릭터는 만화뿐 아니라 영화의 생명이다. 캐릭터가 죽으면 영화가 죽는다. 모든 등장인물의 행동은 캐릭터의 생각의 그림자이다. 행동은 캐릭터의 특징과 성격에서 나온다.

그러나 이 영화의 캐릭터가 살아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판에 박혀 있기에 새롭지도, 꿈틀대지도 않는다. 만화가와 살인마, 형사는 정형화된 캐릭터이다. 머리에 물을 들인 미소년 스타일의 사이코패스, 검은 정장 차림의 말쑥한 일본 형사, 콧수염이 듬성듬성 난 추레한 만화가. 이들의 외형적 특징은 내면적 성격과 동일하며, 이들의 행동 또한 충분히 예상된다. 긴장감을 자아낼 서스펜스의 감미료를 스스로 걷어내 버린 것이다.

사이코패스 살인마는 4인 가정만을 노려 아이들까지 무참히 살해한다. 한 번만 발생해도 4명이 희생된다. 이런 일이 3번 발생하면 12명이 죽는 셈이다. 그런데도 살인마는 변장도 하지 않은 채 거리를 배회한다. 만화가의 뛰어난 작화로 이미 몽타주가 인기 연재만화로 전국에 배포된 상황에서도 말이다.

'캐릭터'는 이런 개연성이나 서사보다 장면 묘사에 더 공을 들인 영화다. 선술집의 내부, 골목의 인파 등 만화의 작화를 떠올리게 한다. 호러에 버금가는 피의 등장은 만화의 다크한 콘트라스트를 그대로 묘사하기 위한 것이다.

통상 만화를 실사화하던 일본 영화의 행태에서 벗어나 '캐릭터'는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들고, 만화를 병행한 프로젝트다. 그럼에도 만화의 그림자가 더 짙다. 시나리오 작가를 비롯해 창작자들이 만화 생각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125분. 15세 이상 관람가.

김중기 영화평론가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