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봉화광산매몰사고] 221시간의 '기적'…"대한민국에 희망 전했다"

고립자 '필사의 노력', 구조대도 '사투'…생환자들 "감사" 건강상태도 양호

경북 봉화군의 한 광산에서 열흘간 고립됐다 구조된 작업자들이(오른쪽이 작업반장 박모씨, 왼쪽은 보조작업자 박모씨)가 5일 경북 안동시 안동병원에서 이철우 경북지사를 만나고 있다. 구조된 이들의 건강상태는 양호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주치의는
경북 봉화군의 한 광산에서 열흘간 고립됐다 구조된 작업자들이(오른쪽이 작업반장 박모씨, 왼쪽은 보조작업자 박모씨)가 5일 경북 안동시 안동병원에서 이철우 경북지사를 만나고 있다. 구조된 이들의 건강상태는 양호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주치의는 "두 분이 수일 내 퇴원까지 할 수 있을 걸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경북 봉화 아연광산에서 사고발생 10일만에 극적으로 구조된 광부 2명이 치료를 받기 위해 안동병원에 도착했다. 윤영민 기자

4일 밤 11시 3분. 경북 봉화군 아연 채굴광산 매몰사고로 고립됐던 2명의 광부가 부축을 받을 채 두 발로 걸어서 갱도 밖으로 나오면서 대한민국에는 새로운 기적이 또하나 만들어졌다.

사고부터 구조까지 221시간. 생환자들은 그 시간을 커피 믹스와 갱도 내 지하수로 허기를 채우고, 모닥불과 비닐 텐트로 체온을 유지하며 구조를 기다렸다. 밖에서는 밤낮을 가리지 않는 구조작업을 펼쳤고 마침내 매몰사고는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었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다. 사고가 난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재발을 방지할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기적'이 이뤄지다…광산매몰 고립자들 생환

광산 매몰사고 생환자들은 고립 당시 기한을 알 수 없는 공포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발파 소리를 듣고 희망을 가졌다고 했다.

"밖에서 구조하고 있구나. 반드시 살아야 한다."

25년 광부 생활을 한 작업반장 박정하(62) 씨는 이를 마음으로 수없이 되뇌며 필사의 탈출을 시도했다. 갱도 내에 있던 사다리를 이용해 암벽을 올랐고 가지고 있던 화약 20여 개를 두 번에 나눠 발파했다. 하지만 탈출로는 확보하지 못했다.

박 씨는 함께 갱도에 갇힌 보조작업자 박모(56) 씨와 함께 괭이로 10여m 흙을 파내며 구조 시점을 앞당기려 했다.

주변에 있던 비닐과 마른 나무를 챙겨 안전한 곳(사고지점 30m)에서 비닐 천막을 치고 모닥불을 피워 추위를 이겨냈다. 두 명의 고립자는 서로 의지하며 구조를 기다렸고 10일째 지하 갱도 진입로 마지막 구간이 뚫리면서 둘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생존자 가족과 구조당국 등에 따르면 작업반장 박 씨는 지하 190m 갱도에 사고로 고립됐고 구조대가 온다면 자신들이 들어온 입구 쪽일 것이라 판단해 사고 발생 때 작업하고 있었던 제1수직갱도 3편 작업장 인근에 머물렀고 그 판단은 적중했다.

광산구조대와 소방구조대원들의 부축을 받았지만 두 발로 걸어나온 두 사람은 곧바로 안동병원으로 옮겨졌고 의료진은 "건강상태는 양호하다"고 했다. 두 사람은 일반 병동 2인실에서 치료받고 있으며 회복 속도도 빨라 6일에는 아침 식사로 죽과 미역국, 나물 반찬, 소고기 등을 먹었다고 박정하 씨의 아들 박근형 씨는 전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5일 경북 봉화 매몰 광산에서 구조된 광부 2명을 면회한 뒤 취재진에게 건강 상태 등을 설명하고 있다. 이 지사는
경북 봉화 아연광산에서 사고발생 10일만에 극적으로 구조된 광부 2명이 치료를 받기 위해 안동병원에 도착했다. 윤영민 기자

◆ "반드시 살린다"…기적 일군 구조대, 동료 광부들

두 사람이 걸어나 나온 제2수직갱도는 구조당국이 10일간 밤낮 가리지 않고 325m를 파들어 간 곳이다.

구조당국은 사고가 발생한 다음날 신고를 받고 119특수대응단 등 장비 12대를 투입, 구조 작업에 착수했다. 인원 114명, 장비 32대, 구조견 4마리, 광산구조대 4개조 12명이 구조작업에 나섰지만 제1수직갱도 내 무너진 흙더미가 너무 많아 구조작업이 쉽지 않았다.

지난달 28일 진입로 방향을 수정하고 1988년 폐쇄돼 사용하지 않던 제2수직갱도로 진입로를 확보하기 시작했다.

구조작업은 쉴 틈 없이 돌아갔다. 갱도 진입로 공사장의 포클레인과 덤프트럭, 실종자 생존 확인용 시추작업, 지하 갱도 작업용 엘리베이터 등은 24시간 작동됐고 지휘본부와 상황실은 숨 가쁘게 돌아갔다.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5일 경북 봉화 매몰 광산에서 구조된 광부 2명을 면회한 뒤 취재진에게 건강 상태 등을 설명하고 있다. 이 지사는 "고립된 분들이 버텨냈고 현장에 있는 분들이 24시간 쉬지 않고 구조해 무사히 돌아오셨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생존 확인용 시추작업이 실패로 끝났을 때는 가족들의 원망을 온 몸으로 받아냈지만 "꼭 살려야 된다"는 구조대원들의 의지는 더 강해졌다.

구조 활동에는 소방 397명, 경북도 27명, 봉화군 81명 등 연 인원 1천145명과 장비 68대가 동원됐다.

동료들도 힘을 보탰다. 측량 전문가와 채탄공 등 20여 명은 지난 1일부터 구조현장을 찾아 구조작업에 동참했다. 매몰사고 소식을 접하고 자발적으로 지원 나온 발걸음이었다.

광산구조대 등 광부 28명도 4교대로 투입, 암석을 제거하는 구조활동 최일선에 섰다. 사고로 두려움이 있었지만, 묵묵하게 지하 막장으로 들어갔다.

◆경북도 대책반 편성…정부 지원도 요청

구조당국 등에 따르면, 막혀있던 갱도에 4일 오후 10시 40분쯤 공간이 생겼고 구조대가 그 공간으로 넘어가 고립자들의 이름을 외쳤다. 고립자와 구조대는 마침내 만났고 고립자들은 의식이 명료하고 건강 상에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생환까지는 순탄치 않았다. 진입로 확보 작업이 늦어지자 구조당국은 실종자 생존 확인부터 하기로 했고 지난달 29일부터 실종자들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에 76㎜, 98㎜ 크기의 구멍을 뚫기 시작했다. 관을 통해 실종자의 생존 확인 후 음식과 의약품 등을 내려보낼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난달 31일 두 차례 시추는 목표지점을 빚나갔다. 원인은 좌표 오차였다. 구조당국이 광산업체가 보관해 오던 22년이나 지난 도면을 근거로 실종자 생존 확인 시추 작업을 벌였기 때문이다. 재 측량한 시추 작업 위치는 실패한 위치와 25~30m 나 차이가 났다.

당시 실종자 가족들은 "골든타임을 허비했다. 추가 장비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위험한 순간을 맞게 됐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지난달 31일 현장을 방문했던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적극적인 구조 지원에 나서면서 동시에 정부에도 지원 요청을 했다.

경북도는 행정부지사를 반장으로 하는 구조대책반을 가동했고 구조당국은 광산이 많은 강원도 삼척 등지에서 측량전문가와 채굴전문가 등 20여 명을 투입, 정확한 좌표를 설정하고 재 시추작업에 돌입했다. 심지어 땅굴 전문 탐지 군부대까지 동원했다. 시추 작업도 11개로 늘렸다.

◆경찰…원인 규명 수사 착수

경북경찰청은 7일 오전 광산 사고 전담수사팀과 경북청 과학수사과, 산업통상자원부 동부광산안전사무소가 함께 사고 광산 현장에서 합동감식을 벌인다고 6일 밝혔다.

경북경찰청은 5일 이번 사고와 관련, 3개팀 18명으로 구성된 전담수사팀을 편성했다.

경찰은 광산 구조도를 확보하고, 갱도 내로 쏟아진 '펄'(토사) 시료를 채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에 성분 분석을 의뢰할 방침이다.

광산업체 내부에서는 업체 측이 불법 매립한 광물 찌꺼기가 갱도로 유입된 탓에 사고가 났다는 의혹이 나오기도 했다. 업체 측은 허가받은 광미장(돌가루를 모아 두는 장소)이 있고, 슬라임(끈적끈적한 형태의 폐기물)은 다 거기로 보내고 있다며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사고 당시 탈출한 동료 작업자 5명 등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당시 상황 파악에도 나선다. 광산업체 간부 등에 대해서도 순차적으로 조사할 방침이다.

광산업체 내부에서는 업체 측이 불법 매립한 광물 찌꺼기가 갱도로 유입된 탓에 사고가 났다는 의혹이 나오기도 했다.

수사 상황에 따라 국과수와 함께 추가 현장 감식에 나설 수도 있다.

경찰은 또 광산업체가 지금껏 받은 행정처분 이력 등을 두루 검토하고서 앞서 지적받은 문제를 제대로 개선했는지 등 여부도 살필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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