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원 참사 이후 전 국민 정신건강에 빨간불이 켜진 가운데, 특히 정서적으로 예민한 시기인 10대 청소년들의 심리 안정과 트라우마 관리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달 29일 이태원에서 발생한 압사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156명인데, 이 가운데는 중·고생도 6명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취재진은 참사 발생 나흘 후인 지난 3일 지역 초·중·고교생 각 10명을 대상으로 참사 트라우마와 관련된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우선, '참사 관련 장면이 자신도 모르게 떠오른다'는 항목에 대해 중학생 응답자는 70%, 고등학생과 초등학생은 각각 60%가 '그렇다'고 답해 과반수가 참사 관련 플래시백(flashback·과거 트라우마와 관련된 것을 접했을 때 당시의 감각이나 심리 상태 등이 재현되는 것)현상을 경험한 것으로 확인됐다.
'참사 이후 자주 긴장·불안·두근거림 등이 나타난다'고 응답한 비율은 중학생에서 80%로 가장 높았고, 이어 초등학생 70%, 고등학생 50% 순으로 나타났다.
참사 소식을 가장 먼저 접한 매체로는 유튜브,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SNS'라고 답한 비율이 중학생은 100%, 고등학생은 80%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반면 초등학생의 경우 80%가 '텔레비전'을 통해 사고를 접했다고 응답했다.
대구 수성구 만촌동의 한 고등학교 2학년 학생 A양은 "트위터에서 리트윗된 영상으로 사고를 처음 접했는데 친오빠 또래의 사람들이 축 늘어진 채로 CPR(심폐소생술)을 받는 모습이 너무 끔찍했다"며 "이후 친구와 함께 밥을 먹으러 시내에 갔다가 동성로 중앙무대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모습을 보고 사고 장면이 떠올라 기분이 이상했다"고 했다.
중구 대봉동의 한 초등학교 6학년에 재학 중인 B군은 "학원을 마치고 집에 갈 때 좁은 골목을 지나야 한다. 평소엔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갔던 길인데, 요즘은 이태원 사고 모습이 떠올라 그 골목을 지나갈 때마다 답답한 느낌이 든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 후 자주 화가 난다고 느낀다'는 항목과 관련해선 중학생의 50%가 '그렇다'고 응답했으며, 고등학생과 초등학생은 각각 30%, 20%가 '그렇다'고 답했다.
수성구 범어동 한 중학교 3학년 학생 C양은 "이번 참사 이후 국가 안전 체계에 대해 의심이 생겼다"며 "사고가 발생하기 전 경찰서로 계속 신고 전화가 왔다고 하는데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점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SNS 사용이 많은 중·고등학생은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콘텐츠에 반복적으로 노출되기 쉽다는 점을 강조했다.
서완석 영남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SNS 상에서 학생들이 접하는 참사 관련 콘텐츠는 필터링을 안 거쳐 더 자극적일 수 있는데, 여기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다 보면 향후 참사 상황과 비슷한 환경에 놓일 때마다 트라우마가 재현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이러한 트라우마에 대한 치유가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만성화가 이뤄지면 학교생활 및 정서 조절 상 문제를 겪을 수 있어 부모나 교사 등 주변 어른들이 도움이 필요한 학생이 빨리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교원단체에서도 이태원 참사가 청소년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지 않도록 교육 당국의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대구지부는 최근 성명문을 통해 학생들이 이번 참사를 너무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세심한 관찰과 트라우마 관리를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도 밝혔다.
임성무 전교조 대구지부장은 "애도기간은 끝났지만 진실규명과 책임을 두고 논란의 여파가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며 "학생들에게 우리 사회가 참사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알려 국가에 대해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또한, 이 같은 사회적 쟁점에 대해 학생들이 배제되지 않고 제대로 이해하며 주관을 가질 수 있도록 수업이 이뤄져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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