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관람료 인상의 역습

1만5천원 3년 만에 2배…차라리 집에서 보자
코로나 손실 만회 위해 매년 인상…10명 중 8명 "1만2천원 아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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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범죄도시2'의 한 장면.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제공

극장이 텅 비었다. 한두 명이 관람하는 경우도 부지기수. 극장가가 혹독한 기근을 겪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지난 15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0월 극장 전체 매출액은 615억 원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의 49.7% 수준에 머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10월 개봉한 영화 중에 관객 100만 명을 넘긴 영화도 없었다. 이런 현상은 11월 들어서면서 더욱 심해지고 있다.

할리우드 액션 대작 '블랙 아담'이 10월 19일 개봉했지만, 개봉 한 달이 다 되도록 100만 명(11월 15일 현재 77만7천 명)을 넘기지 못하고 있다. 11월 9일 개봉한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116만 명(11월 15일)을 동원했다. 영화의 호불호를 떠나 할리우드 액션 대작들마저 맥을 못 추는 상황이다.

코로나19가 창궐할 때는 방역 때문이라고 했지만, 지금의 불황은 관객이 자발적으로 극장을 찾지 않는 이유 때문이다. 흥미를 끌만한 흥행영화가 없는 것도 원인이 될 것이고, OTT 등이 활성화되면서 굳이 극장가를 찾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 원인일 수 있다.

또 하나는 관람료 인상이다. 어쩌면 이것이 가장 직접적인 원인일 수가 있겠다.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등 극장 체인들은 코로나19로 엄청난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 2020년은 2019년에 비해 4분의 1 수준, 2021년은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지난 3년 간 매년 입장료를 인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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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블랙 아담'의 한 장면.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팬데믹 기간 중 가장 먼저 관람가격을 인상한 것은 CGV였다. 2020년 10월 18일 평일 2천원, 주말 1천원을 인상하고, 좌석 차등제를 폐지했다. 11월과 12월에는 메가박스와 롯데시네마가 뒤따르면서 평일 1만2천원, 주말 1만3천원이 됐다. 이 가격은 심리적으로 큰 인상이었다. 1만원으로는 더 이상 영화를 볼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팬데믹 전에는 포인트 사용이나 조조할인 등을 통해서 7천~8천원에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혜택도 사라지고, 조조 영화도 없어지면서 관객들은 5천원이나 인상되는 느낌을 받게 됐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과거의 관람료 인상은 2~4년 간격으로 이뤄졌다. 2008년에는 무려 8년 만에 1천원 가격이 인상되기도 했다. 그런데 2021년 4월 CGV가 1천원을 인상한데 이어, 11월과 12월에는 메가박스와 롯데시네마가 뒤를 이었다. 2022년 4월과 7월에는 다시 1천원을 올려 평일 1만4천원, 주말 1만5천원 시대를 열었다. 아이맥스나 4D, 돌비관 등 특수관은 2천원을 더 인상했다. 코로나 이전의 2배가 된 것이다. 그것도 3년 만에 말이다.

이제 관객들은 관람료 인상이 피부로 느끼게 된다. 3인 가족이 영화를 보고 저녁까지 먹으면 5만원으로 해결되던 것이 이제는 10만원으로 부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히 데이트를 위해 극장을 애용하던 커플들은 신중하게 영화를 골라 보게 됐다. 과거에는 싼 맛에 하루에 두 편을 보기도 했지만, 이제는 후회하지 않을 1편을 골라야 한다.

예전에는 영화평론가의 리뷰도 참고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꼼꼼하게 살펴보고 입소문도 신경을 쓰게 됐다. 그래서 영화흥행에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생겼다. 1천270만 명을 동원해 올해 처음으로 1천만 관객을 동원한 '범죄도시2'가 그런 현상의 수익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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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의 한 장면.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그렇다고 한국 영화관람료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아니다. GDP 상위 20개국 중 평균 수준이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티켓지수로 알아본 영화관람가격 적정성 점검'(2022년 10월 발표)에 따르면 한국은 8.2달러로 9위에 해당한다. 20개국 평균인 7.5달러보다 살짝 높은 수준이다.

그럼에도 극장 안이 한산할 정도로 극장을 외면하는 것은 심리적 마지노선이 단기간에 급격하게 깨진 것에 대한 저항 때문이다. 영진위가 조사한 '2020~2021 영화소비자 행태조사'에 따르면 영화 티켓 한 장을 구매 시 지불의향을 묻는 질문에 '8천원~1만원'이라는 응답이 전체의 33.5%, '5천원~8천원'이 27.4%였다. '1만원~1만2천원'이 20.2%로 결국 10명 중 8명이 관람료가 1만2천원을 넘으면 지불하지 않겠다고 응답한 것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91.5%의 사람들이 극장에서 영화를 봤지만, 이제 62% 정도로 줄었다. 대신 OTT의 스트리밍 서비스로 영화를 보는 이들이 크게 늘었다. 37.1%에서 60.9%로 증가했다. OTT의 월 구독료가 1만2천원 안팎이니 극장 한 번 갈 돈으로 한 달을 구독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OTT로 직행하는 영화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병헌, 유아인 주연의 '승부'(감독 김형주)가 극장을 거치지 않고 넷플릭스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한국 바둑의 전설로 불리는 조훈현‧이창호의 실화를 담은 영화로 현재 세부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결국 손해를 만회하기 위한 극장의 무리한 요금 인상이 역습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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