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부부와 사회초년생을 노리는 '깡통전세' 피해가 확산하고 있다. 정부의 부실한 방지책, 수사기관의 느린 대처가 더해져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전세금 반환보증보험 의무가입 대상을 확대하거나 문턱을 낮추는 등 후속대책을 주문하고 나섰다.
◆선순위 보증금 확인 못 해 '속수무책'
이번 전세 사기의 범행 수법은 2019년 대구에서 있었던 대규모 깡통전세 사건과 유사하다. 잠적한 집주인은 거짓 계약서로 선순위 보증금을 숨기면서 추가적인 피해를 양산했다. 이를테면 먼저 내줘야 할 선순위 보증금이 11억원에 달하는데 새로 들어올 임차인과의 계약서에는 4억원으로 속이는 방식이다.
현행법상 전세 계약이 체결되기 전에는 다른 세입자의 보증금이 명시된 '확정일자 현황'이 공개되지 않는다. 계약을 체결했더라도 집주인의 동의 없이는 확인할 수 없다. 2019년 대구에서 일어난 깡통전세 사기사건의 피해자들 역시 선순위 보증금 현황을 세입자가 알기가 어려워 작심한 사기에 대비할 수 없었다.
그동안 국토교통부는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임대인의 허락 없이는 선순위 보증금을 열람할 수 없게 했다. 임차인은 물론이고 공인중개사도 이를 자유롭게 확인할 수 없었다. 다만 지난해 12월 법무부와 국토교통부는 임대차보호법 개정안 및 시행령 일부개정안을 공포했다. 앞으로 선순위 보증금 등 정보 제공을 의무화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피해자들에게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의 공허한 사후 대책일 뿐이었다.
◆수사 기관 대처도 미비
이번 사건처럼 깡통전세 의심 사례가 나오더라도 수사기관이 신속하게 대처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사건이 커지고 피해자가 속출하면 그제서야 경찰 수사가 시작되고, 이마저도 피해자들이 구체적인 피해 내용을 취합하지 않으면 '민사로 해결하라'며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다.
대명동 전세사기 피해자 A씨는 "피해자 5명이 모여 경찰서를 찾아갔더니 담당 수사관이 '돈을 받으려면 형사가 아닌 민사로 진행하라'고만 했다고"고 말했다. A씨는 "추가적인 피해가 예상될 것이 불 보듯 뻔한데 직접적 피해가 없으니 고소할 수 없다는 경찰의 태도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최근 빌라왕 등 전세사기가 빗발치자 경찰청은 전세사기 전담반을 꾸려 집중 수사하겠다고 공언했다. 대구경찰청 또한 지난해 8월부터 올해 1월 24일까지 전세사기 특별 단속을 실시했다. 피해자들은 경찰서에 방문할 당시에도 '전세사기 특별 단속기간'이라는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반면 현장에서는 전세사기만을 위한 수사팀을 구성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일선 경찰서 관계자는 "전담팀은 구성됐으나 매일 벌어지는 것도 아닌 전세 사기만 전담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사회초년생 리스크 취약, 보증보험 가입 확대해야
깡통전세 피해자 다수는 신혼부부, 청년 등 20·30대 비중이 높다. 최초 제보자 A씨 역시 31세로 비교적 사회 경험이 적은 상태에서 피해를 입었다. 청년층의 주거비용 부담을 덜고자 '버팀목 전세자금 대출' 등 정책자금 조달 방안이 풍부한 점도 피해를 키우는 요인이다.
대구 북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버팀목 대출'은 요즘 같은 고금리 시대에 특히 인기가 많다"며 "월세가 아깝다고 생각하는 젊은 직장인들이 많이 활용하는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도 알아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전세사기 대책을 막으려면 보증보험 의무가입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비용 부담 탓에 보증보험 가입을 꺼리는 세입자에 대해서는 집주인의 가입 의무를 확대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김대명 대구과학대 금융부동산과 교수는 "보증금이나 전세가율이 일정 수준 이상인 경우 임대인에게 보증보험을 의무가입하게 하거나, 임차인의 보험료 일부를 정부가 지원해주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임대차 표준계약서에 선순위 담보 유무를 체크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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