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조선의 역사를 전해준 고마운 책 '산해경'
사대주의자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신라가 조선의 유민이 세운 나라라고 말하면서도 고조선이 어떤 나라인가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 고조선이 사라질뻔한 일로서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일연스님이 '삼국유사'를 저술하면서 고려시대까지 전해오던 우리 민족의 옛 기록 '고기古記'를 인용하여 삼국시대 이전에 단군의 고조선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후손들에게 알려준 것은 천만다행이다.
다만 '삼국유사' 고조선조는 그 기록이 너무 빈약하다. 이것만으로는 단군조선이 신화인지 실제 역사인지 한반도의 대동강 유역에 있었는지 대륙의 발해유역에 있었는지 알 길이 막연하다.
'삼국유사'에서 '산해경'의 발해조선 관련 기록을 인용하여 고조선을 설명했더라면 고조선 신화설, 반도사관은 아예 생겨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필자가 '산해경'에 있는 고조선 관련 기록의 정확한 해석을 통해 발해조선의 위치와 강역을 구체적으로 밝힌 것은 비록 늦었지만, 우리 상고사의 재정립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산해경'은 사마천도 인용한 세계적으로 공인된 상고사 자료
상고사는 자료의 정확한 인용이나 해석도 물론 필요하지만, 사료적 가치가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발해조선의 역사를 우리에게 전해준 고마운 책 '산해경'은 어떤 책인가.
'산해경'은 모두 18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분량이 약 3만 1,000자에 달하여 '논어'보다도 훨씬 방대하다.
'산해경'의 내용을 살펴보면 상고시대의 신화, 역사, 문화, 천문, 지리, 동물, 식물, 의학, 종교, 인류학, 민족학, 해양학 등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상고시대 인류의 지리환경, 생활상, 사상체계, 문화상태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이 책은 현대적으로 표현하면 '상고세계문화사대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산해경'의 사료적 가치는 세계적으로 공인을 받고 있으며 '주역', '황제내경'과 함께 동양 상고시대 삼대 명저로 꼽힌다.
그러면 '산해경'은 언제 누구에 의해서 저술된 책인가.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산해경'의 저자에 관하여 최초로 언급한 사람은 전한 시대의 유흠劉歆(약 서기전 50년~서기 23년)이다.
유흠은 당시 황실 도서를 정리하다가 '산해경'을 발견하고 이 책에 대해 황제에게 보고하는 '상산해경上山海經表'를 올렸는데, 하夏나라 국조 우禹임금이 치산치수할 때 백익伯益(?~약서기전 1973)이 하우와 동행하면서 지은 것이라고 말했다.
후한시대의 조엽趙曄이 춘추전국시대 오, 월 두 나라의 역사를 기술한 '오월춘추'에서도 '산해경'의 저자는 백익이라 하였고 후한시대 '논형'의 저자 왕충 또한 '산해경'의 저자가 백익이라는 데 견해를 같이했다. 적어도 한나라 시대까지는 '산해경'의 저자가 백익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없었다.

한족 민족주의가 강조되던 명나라 시대에 호응린胡應麟이 '산해경'이 상고시대 백익의 저술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고 춘추전국시대 이후의 작품이라고 말했는데 근, 현대 중국 학계에서는 이 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현대의 중국 학자는 하우시대에 백익이 초창草創했고 춘추전국시대에 완성되었으며 양한, 위진시대를 거치면서 보완되었다는 절충적인 견해를 제시하기도 했다.
백익은 4,000년 전 발해유역 산동성 비현費縣 출신으로 동이족 계통의 인물이다. 진시황의 조상이기도 하다. 전한시대 유흠이나 후한시대 조엽, 왕충의 말처럼 '산해경'이 백익의 저술이라면 '산해경'은 '주역'보다도 연대가 1,000년 이상 앞서는 책인 셈이다.

'산해경'은 유흠이 2,000년 전 발견했을 당시 이미 한나라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상고시대의 문자로 기록되어 있었다고 한다.
'산해경'의 해외동경과 해내동경 두 곳의 말미에는 "건평 원년(서기전 6년)에 유흠이 '산해경'을 교열 정리하는 작업의 주요업무를 담당했다"는 "영주성領主省"이라는 내용이 실려 있다.
이는 2,000년 전에 유흠이 '산해경'을 발견하고 이를 교열 정리했음을 보여주는 흔적인데 근대 중국의 국학대사國學大師 장태렴章太炎은 유흠을 "공자 이후의 최대 인물이다."라고 높이 평가하였다.
지금 '산해경'이 4,000년 전 백익의 저술인지 춘추전국시대 이후의 작품인지 속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전한시대의 저명한 학자 유흠이 교열 정리작업에 참여한 것을 보면 2,000년 이전의 상고사 자료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사마천은 서기 전 145년에 태어나 최초의 기전체紀傳體 역사서 '사기史記'를 저술하여 중국 역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인데 그가 '사기' 대완전大宛傳을 쓰면서 '산해경'을 인용했다. 이는 두 가지 면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첫째 '산해경'은 한국상고사에 쌍벽을 이루는 두 책 '삼국사기', '삼국유사'보다 무려 1천여 년이나 앞선 전한 시대에 이미 존재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사마천도 인용한 바 있는 사료적 가치가 세계적으로 공인된 상고사 자료라는 것이다.
◆'산해경'을 왜곡 폄하한 근, 현대 중국 일본학자
'산해경'은 고대의 중국 학자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근, 현대 일본과 중국 학자들로부터 평가절하되었다. 역사가 아닌 신화로 또는 위서로 폄하되기도 했다.
'산해경'이 근, 현대 중국 일본 학자들로부터 평가절하된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첫째는 일본은 물론 중국 한족의 첫 국가인 한나라 또한 그 역사가 2,000년을 넘지 않아서 2,000년 이전의 역사자료인 '산해경'에 일본 한국漢國 관련 기사는 한마디도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는 한때 일본의 식민지였고 중국의 속국이었던 조선은 그와 관련된 기록이 '산해경' 여기저기서 나타날 뿐 아니라 한반도가 아닌 발해만 부근에서 건국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중국과 일본의 민족감정을 자극하기에 충분했고 역사대국, 경제대국을 자랑하는 저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저들은 뻔히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산해경'의 가치를 깎아내리고 내용을 왜곡했다.
1897년 상해에서 창업한 상무인서관은 중국출판업계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중국의 대표적인 출판사다. 오늘날 중국에 '산해경' 주석서가 수십 종이 나와 있는데 그것을 일일이 다 열거할 수는 없고 상무인서관 번역본을 통해 고조선 왜곡의 한 실례를 보기로 한다.
해내북경의 "朝鮮 在列陽東 海北山南 列陽屬燕"을 어떻게 역주하였는가.
▷역문: "조선은 열양의 동쪽에 있다. 황해의 북쪽, 산의 남쪽에 위치해 있다. 열양은 연나라의 땅에 속한다."
▷주석: "조선은 지금의 조선반도에 위치해 있었다. 열양은 지명이다. 열은 열수列水를 가리키는데 지금 조선의 대동강을 가리킨다는 설이 있다. 열양은 열수의 남쪽 즉 대동강 남쪽 지방을 가리킨다. 바다는 황해를 가리킨다. 산은 장백산을 가리킨다는 설이 있다."
'산해경' 상무인서관 번역본 역주자 풍국초馮國超는 해내북경에 나오는 조선을 현재의 한반도로 설정하고 열수를 대동강, 바다를 황해, 산을 장백산으로 인식하였다.
해내북경에서 "조선이 바다의 북쪽에 있다"고 말한 바다를 황해로 번역하면 해내경에서 "발해의 모퉁이에 조선이 있다."고 한 기록과 모순된다. 열수를 대동강으로 보면 열수의 동쪽에 조선이 있다고 한 기록과 맞지 않고 산을 장백산으로 보면 고조선을 언급할 때 갈석산이 등장하는 다른 기록과 어긋난다.
'산해경'에 나오는 조선이 만일 우리 밝족의 나라가 아닌 한족의 국가였다면 중국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상무인서관 출판사에서 이런 근거 없는 엉터리 번역본을 출간했겠는가. 이는 중국대륙에서 발해조선의 역사를 지우기 위한 의도적인 오역이다.
역사학박사·민족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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