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색됐던 한일 관계가 중대 변곡점에 섰다. 최대 난제였던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두고 한국 정부가 자국 재단 주도의 '제3자 변제 방식'을 해법으로 제시하면서다.
일본도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표했던 역대 내각을 계승하고 있다는 입장을 내며 동조했지만 일본 피고기업이 빠진 탓에 '반쪽짜리' 해법이라는 반발도 적잖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6일 외교부 청사에서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관련 정부 입장 발표' 회견을 열고 "2018년 대법원으로부터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국내 재단이 대신 판결금을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2018년 나온 3건의 대법원 확정판결 원고들에게 판결금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고, 현재 계류 중인 관련 소송이 원고 승소로 확정되면 역시 판결금 등을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재원은 포스코 등 16개가량 국내 한일 청구권자금 수혜기업의 기부를 통해 마련될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강제징용 판결 문제 해법을 발표한 것은 미래 지향적 한일 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결단"이라고 했다. 기시다 총리는 한국 정부의 발표를 "한일 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기 위한 것"으로 평가하고 "역사 인식에 관해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해 왔고 앞으로도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1998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가 발표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는 일본의 과거 식민지배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죄'가 담겨 있다.
한국 주도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해법이 공식화된 만큼 이 문제로 파생됐던 한일 관계 주요 이슈도 속속 정상화할 전망이다. 2018년 10월 일본 피고기업이 피해자에게 배상하라는 한국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나자 일본은 이듬해 7월 불화수소 등 3개 품목의 한국 수출 규제에 나서며 반발했고 수출 절차 간소화 혜택을 주는 '백색국가' 리스트에서도 제외했다. 한국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고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를 통보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양국은 해법 발표 직후 수출규제 해제 협의에 돌입했으며 지소미아도 조만간 정상화할 전망이다. 한일 정상회담 등 정상 간 셔틀 외교도 본격 가동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본 피고기업 참여가 담보되지 않은 탓에 일부 피해자 측이 반발하는 등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일본제철·미쓰비시중공업 등 두 피고기업이 배상 의무를 지게 됐지만, 일본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강제징용 배상 책임이 끝났다고 버틴다.
제3자 변제를 위한 재원 마련에 일본기업 참여 가능성도 열려 있지만 현실화 가능성은 낮다. 피해자 측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 행정부가 일본 강제동원 가해 기업의 사법적 책임을 면책시켜 주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여야 반응은 선명히 갈렸다. 국민의힘은 정부의 배상 문제 해법에 대해 "미래와 국익을 향한 대승적 결단"이라고 치켜세웠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제2의 경술국치", "외교사 최대의 치욕"이라며 맹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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