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무대 옮긴 증권사 '영업전'…고령화에 퇴직연금 유치 치열

서울 명동 하나은행 본점에서 직원들이 증시 및 환율을 모니터하는 모습. 연합뉴스
서울 명동 하나은행 본점에서 직원들이 증시 및 환율을 모니터하는 모습. 연합뉴스

국내 한 증권사 PB로 근무하는 A(42·대구 수성구) 씨는 최근 본사로부터 공문 한 통을 받았다. 연금사업부에서 작성한 퇴직연금 영업 대상 기업 명단이 첨부되었는데, 자신이 담당하는 고객 중 이들 기업에 근무하는 이가 있거나, 지인이 근무 중인지 등을 확인한다는 내용이었다. 개인 사업자가 대부분이던 A씨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기려다가 한 곳에 눈이 꽂혔다. 울산 출신인 그가 대구에서 생활하며 알게 된 이른바 '사회 친구'가 다니는 회사 이름이 떡 하니 적혀 있어서다.

A씨는 "공문을 회신했더니 본사에서 연락이 와서는 '친구 분 회사가 200인 이상 고용한 기업이라 영업 대상이다'면서 '추후에 연금사업부에서 영업하러 갈 때 함께 가야 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증권사가 퇴직연금 시장에서 점유율 늘리기에 한창이다. 이 분야가 은행과 보험사의 각축장이라 '레드 오션'으로 보는 게 당연하지만, 고령화로 인해 노후를 대비하는 연금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새로운 사업 영역을 노리는 증권사의 가세가 이뤄진 것이다.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에 따르면 2016년 147조원에 그쳤던 퇴직연금 적립액은 지난해 336조원으로 6년 만에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작년 국내 증권사 14곳의 퇴직연금 적립액은 73조8천467억원으로 그 전해(63조991억원)와 비교해 17.03% 증가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퇴직연금 시장 규모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욱 커질 전망이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이 최근 발간한 퇴직연금시장 전망 보고서를 보면 2032년 860조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작년 말 기준 퇴직연금 시장 규모(336조원)에서 약 2.5배 성장할 것으로 본 것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퇴직연금 시장 전체를 보면 분명히 '레드 오션'이다. 그런데 증권사로서는 타 업권에서 고객과 자금을 뺏어오는 시장이라 '블루 오션'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국내 퇴직연금 시장의 강자는 은행이다. 노후를 대비하는 자금인 만큼 안정성이 담보된 원리금 보장 상품이 강세였기 때문"이라면서 "그런데 최근 인플레이션을 잡으려고 각국이 금리를 급격하게 올리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예·적금과 채권 위주로 투자하는 원리금 보장 상품으로는 10년 넘게 넣어둬도 돈이 불질 않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퇴직연금 운용에 관심이 생기면서 수익성 중심 자산운용을 하는 증권사로 눈길이 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도적 변화도 한몫했다. 오는 7월 퇴직연금 디폴트 옵션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디폴트 옵션은 연금 가입자가 별도로 운용 방법을 고르지 않으면 자동으로 사전에 지정된 포트폴리오로 운용되는 것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디폴트 옵션이 시행되면 퇴직연금 중 적극적으로 운용되는 자금 비중이 높아질 것으로 본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일정 규모 이상 기업은 대개 기업이 책임지고 운용하는 확정급여(DB)형 퇴직연금을 운용한다. 그런데 최근 고용 시장 유연화로 이직이 활발해지면서 개인이 운용하는 확정기여형(DC)이나 개인형퇴직연금(IRP)의 시장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면서 "'머니 무브' 기대감이 생기니 증권사도 앞다퉈 고객 유치에 나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