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덕일의 내가 보는 가야사] 고구려 372년 불교 전래?

"더 일찍 들어왔을 가능성"
삼국사기 "소수림왕 2년 불상 전달"…역사학계, 사료 근거 전래 시기 파악
고승전 "동진 승려 고려도인에 편지"…승려 366년 사망 이전 불교 알 수도
삼국지 "박사제자에게 부도경 전수"…이들 고구려·백제·신라와 많은 교류

당(唐)나라 한간(韓干)이 그린 신준도(神駿圖)의 지둔(가운데 승려), 366년 사망한 지둔은 고구려도인과 편지를 주고 받았다.
당(唐)나라 한간(韓干)이 그린 신준도(神駿圖)의 지둔(가운데 승려), 366년 사망한 지둔은 고구려도인과 편지를 주고 받았다.

◆가야 불교사는 언제 시작되었나?

가야가 건국된 서기 1세기경에 가야불교가 시작되었다는 견해가 있다. 이는 문헌사료와 고고학 사료로 뒷받침되는 견해이기도 하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수로왕이 가로되 내가 서울을 정하고자 한다…이 땅은 좁기가 여뀌 잎과 같지만 (경치가)수려하고 기이하여 16 나한(羅漢)이 살만한 곳이다."라고 말한 기록이 있다. 나한은 아라한(阿羅漢)의 준말로 부처의 열여섯 제자를 뜻하므로 이는 수로왕이 불교에 대해서 알고 있었음을 뜻하는 문헌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삼국사기 가락국기 원본에 나오는 16나한 이야기.
삼국사기 가락국기 원본에 나오는 16나한 이야기.

또한, 서기 48년 서역의 아유타국에서 온 허왕후가 싣고 온 파사석탑이 지금까지 전하는 것 또한 가야불교가 이때 시작했음을 말하는 유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김해와 부산 일대에는 허왕후의 오빠 장유화상이 세웠다는 여러 사찰의 연기(緣起:절이 조성된 유래)가 전해진다.

그러나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신편한국사(7권)》은 "(가야의) 주변 삼국에의 불교 전래가 4·5세기였던 점을 감안한다면 이들 (김수로왕·허왕후 관련) 설화는 불교가 들어오고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고 부인하고 있다. 그러면서 "왕후사의 창건을 원가(元嘉) 29년(452)라고 기록한 기사는 어느 정도 역사성을 가진다"고 말하고 있다.

즉 가야불교가 452년에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 근거는 고구려·백제·신라의 3국에 불교 전래가 4~5세기라는 점을 들고 있다. 따라서 고구려·백제·신라 3국의 불교 전래 기사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불교의 전래 시기는?
우리나라 불교의 전래시기에 대해서 지금껏 372년이라고 가르쳐왔고,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민족문화백과사전》은 〈불교〉항목에서 우리나라의 불교 전래에 대해서 "삼국 가운데에서 제일 먼저 불교를 받아들인 것은 고구려이다. 372년(소수림왕 2) 여름인 6월, 전진(前秦)의 왕 부견(符堅)은 순도(順道)를 시켜 불상과 불경을 고구려에 전하였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 전래한 시기가 고구려 소수림왕 2년인 372년이라는 것인데, 이는 《삼국사기》 〈고구려 소수림왕 2년〉조를 근거로 삼은 기록이란 뜻이다. 이 사전은 뒤이어 "이에 소수림왕은 사신을 보내서 감사의 뜻을 표하고, 순도로 하여금 왕자를 가르치게 하였다."라고 덧붙이고 있다. 《삼국사기》 원문을 확인하지 않으면 《삼국사기》에 소수림왕이 순도에게 왕자를 가르치게 했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여길 것이다. 그러나 '소수림왕이 순도에게 왕자를 가르치게 했다'는 내용은 사료에 없는 창작이다.

《삼국사기》는 소수림왕 2년(372) 여름 "대학을 설립해서 자제들을 교육했다[立大學 敎育子弟]"라고 말하고 있지 '순도에게 왕자를 가르치게 했다'고 말하지 않고 있다. 이 대학은 태학(太學)이라고도 하는데, 《삼국사기》는 고구려에서 "대학을 설립해 자제들을 교육시켰다"고 말했을 뿐 "순도에게 왕자를 가르치게 했다"고 말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민족문화백과사전》은 '소수림왕이 순도에게 왕자를 가르치게 했다'고 사료에 없는 이야기를 써 놨는데 이런 식의 서술방식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이 사전의 〈불교〉 항목에는 가야불교에 대한 서술 자체가 없다.

◆고구려인들은 372년 전에는 불교를 몰랐는가?

현재 우리나라 역사학계는 《삼국사기》를 근거로 고구려 소수림왕 2년인 372년에 불교가 전래하였다고 해석하고 있다. 고구려 사람들은 과연 372년에 처음 불교를 접했을까? 중국의 《양 고승전(梁高僧傳)》은 이런 통설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양고승전》은 《고승전》이라고도 불리는데 양나라 승려 혜교(慧皎)가 편찬한 불교 서적이다.

후한 영평(永平) 10년(67)부터 중국 남조(南朝) 양(梁) 천감(天監) 18년(519)까지 453년간 주석했던 257명의 승려에 대한 기록이다. 이 승려들을 불경 번역에 능한 '역경(譯經)', 불경의 뜻풀이에 능한 '의해(義解)', 신비로운 사적의 '신이(神異)', 참선에 익숙한 '습선(習禪)', 불교 계율에 밝은 '명률(明律)' 등 10여 종류의 전문분야로 나누어 수록했다.

그중 의해(義解)에 밝은 14명의 승려 중에 동진(東晉)의 승려 지둔(支遁:314∼366)이 있다. 지둔은 하남성 개봉(開封) 출신으로 스물다섯 살에 출가해서 현재 소주(蘇州)시 서쪽 교외의 지형산(支硎山)과 지금의 절강성(浙江省) 소흥(紹興) 신창(新昌)일대인 섬현(剡县)에서 주석했던 승려이다. 그래서 《양고승전》은 지순을 진나라 섬현의 옥주산(沃洲山)에서 주석했던 승려라고 이름 붙이고 있다. 지둔은 학(鶴)을 좋아한 것으로 유명했다.

학을 무척 좋아했기에 선물 받은 학 두 마리의 죽지가 차츰 자라자 날아갈까 두려워 이를 꺾어버렸는데 학이 축 쳐져서 우는 듯한 모습을 보고는 '하늘을 나는 천성을 어찌 사람의 이목을 위해 희생시키겠는가'라면서 잘 치료해 날려 보냈다는 고사가 있다.

이 지둔이 고려도인(高麗道人)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기록하고 있다. 지둔은 전진의 승려 순도가 고구려에 도착하기 전인 366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 전에 고려도인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고려도인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동진의 유명한 승려 지둔과 편지를 주고받을 정도인 고려도인, 곧 고구려도인이 불교에 대해서 몰랐을 가능성은 없다.

단순히 아는 정도가 아니라 상당한 조예를 갖고 있었기에 동진의 유명한 승려 지둔과 편지를 주고받았을 것이다. 우리는 불교 전래 역사를 서술할 때 최소한 366년 이전에 불교에 저명했던 '고려도인'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모른 체하고 372년에 불교가 처음 전래하였다고 서술해야 할까?

◆백제는 384년에 불교를 처음 접했는가?
《삼국사기》에서 고구려에 승려 순도를 보냈다고 말하는 전진은 서기 350년 저족(氐族)인 부홍(符洪)이 세운 나라이다. 원 국호는 진(秦)인데 진시황의 진과 구별하고자 전진(前秦)이라 달리 부른다.

전진은 고구려에 순도를 보내기 2년 전인 370년경에는 서북쪽의 전량(前凉)과 북쪽의 대국(代國)은 물론 고구려와 국경을 맞대고 있던 동쪽의 전연(前燕)까지 멸망시키고 북방을 통일한 강대국이었다. 진왕 부견은 '대진천왕(大秦天王)'이라고 불린 강력한 군주였는데 이런 강대국의 국왕이 외교사절로 순도를 보내오자 소수림왕이 사신을 보내 사례했던 것이지 이것이 고구려에 처음 불교가 전해졌다는 기사는 아니다.

백제불교도 마찬가지다. 《삼국사기》는 백제 "(침류왕) 원년(384) 9월에 호승(胡僧) 마라난타가 진(晉)에서 와서 이르자 왕이 영접하고 궁궐 내로 맞아 예로써 공경했다. 불법이 이로부터 시작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백제는 384년에 불교를 처음 받아들였다고 해석한다. 《민족문화백과사전》은 이에 대해서 "백제에는 고구려보다 12년 뒤인 384년(침류왕 1)에 불교가 전래하였다.

인도의 고승 마라난타(摩羅難陀)가 동진(東晉)으로부터 바다를 건너서 서울인 광주(廣州)의 남한산으로 들어오자 왕은 그를 궁 안에 머물도록 하였고, 그 이듬해 10명의 백제인을 출가시켜 승려로 만들었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삼국사기》 원문에는 마라난타가 '동진으로부터 바다를 건너서 서울인 광주의 남한산으로 들어왔다'는 이야기는 없다. '바다를 건너서', '(백제) 서울인 광주의 남한산' 등은 사료에 없는 내용을 사전 집필자가 자의적으로 삽입한 것이다. 《삼국사기》 원문은 "(마라난타가)진에서 와서 이르자 왕이 영접하고 예로써 공경했다"라고만 되어 있다.

앞의 고구려 기사는 진왕 부견의 외교사절로 승려 순도가 온 것으로 말하고 있지만 백제 기사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 호승(胡僧)은 인도에서 온 승려를 뜻하는데 그가 백제에 오자 침류왕은 바로 영접하고 예로써 공경했다. 침류왕이 불교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어도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중국의 불교 전래 시기
불교는 중국에 언제 전래하였을까? 진수(陳壽)가 쓴 《삼국지(三國志)》에는 《위략(魏略)》 〈서융(西戎)열전〉을 인용해서 한(漢) 애제(哀帝) 원수(元壽) 원년(서기전 2)에 대월지(大月氏) 국왕의 사신 이존(伊存)이 한나라 박사제자(博士弟子) 경로(景盧)에게 《부도경(浮屠經)》을 입으로 전수해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경로가 《부도경》을 외워서 중국에 전했다는 기사로서 중국 학계에서는 서기 전 2년 중국에 불교가 전래한 기사로 받아들이고 있다. 박사제자는 한나라 박사에게 수업을 받는 학생을 뜻하는데 명(明)·청(淸)시대에는 생원의 별칭이기도 했다.

후한은 물론 그 이후의 위·촉·오(魏蜀吳) 삼국과 그 뒤를 이은 진(晉)은 모두 고구려 및 백제·신라와도 사신을 자주 주고받는 관계였다. 그런데 중국에 불교가 전래한 지 370여 년 후에야 고구려에 처음 전해졌고, 그 뒤에 백제에 처음 전해졌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침류왕은 그 전에 불교에 대해서 알았기에 호승 마라난타를 보자마자 영접했을 것이다.

또한, 고구려·백제의 불교 전래 기사는 모두 북방불교에 관한 이야기다. 북방불교는 인도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에 전해진 대륙불교로서 주로 대승불교(大乘佛敎)를 말한다. 반면 인도에서 바다나 대륙을 거쳐 남아시아에 전해진 불교를 주로 남방불교, 또는 소승불교(小乘佛敎)라고 말한다.

《삼국사기》에서 말하는 것은 모두 북방불교의 전래 이야기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그 이전에 남방불교, 즉 소승불교가 이 땅에 먼저 전래되었을 개연성도 충분하다. 역사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연구할 때 그 실체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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