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상인동 사고 생각나" 가스公 정압관리소 증설 논란…전문가 "가능성 매우 희박"

위험성 느끼는 주민 불안감과 전문가 견해 엇갈려
인구 밀집지역 우회로 제안…한국가스공사 '난색'

9일 오전 10시 한국가스공사 앞에서 중리정압관리소 증설반대추진위원회와 대구 서구의회 의원들이 정압관리소 증설과 가스관 매립을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서구의회 제공
9일 오전 10시 한국가스공사 앞에서 중리정압관리소 증설반대추진위원회와 대구 서구의회 의원들이 정압관리소 증설과 가스관 매립을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서구의회 제공

대구 서구 중리 정압관리소 증설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시설 안전성을 문제 삼는 주민들과 사업을 추진하는 한국가스공사가 연일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과장된 위험성으로 인한 지역 이기주의 현상일 수 있다는 지적과 한국가스공사의 안일한 판단이 주민들의 반발을 부추겼다는 지적이 엇갈린다. 논란이 시작된 배경과 시민단체의 지적, 전문가 의견을 종합적으로 살펴봤다.

◆"상인동 가스 폭발 생각나요"…주민들은 '폭발'이 두렵다

9일 오전 10시 한국가스공사 앞. 서구 주민들로 구성된 '중리정압관리소 증설반대추진위원회'가 집회를 열고 "정압관리소 증설과 가스관 매립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스공사가 추진하는 중리 정압관리소 증설 사업에 대한 지역사회의 거부 반응은 격렬하다. 가스 사고는 '한 번 터지면 대형사고'로 번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정압관리소와 고압가스 배관 둘 다 위험시설이라고 주장한다.

오는 10월 말쯤 서구 평리뉴타운으로 입주하는 김초은(37) 씨는 "이사 예정인 평리 7구역은 중리동 정압관리소까지 차로 5분 거리"라며 "미래를 위해서라도 위험시설이 들어오는 건 어떻게든 막고 싶다"고 말했다.

정압관리소 논란은 지난해부터 본격화됐다. 정압관리소는 가스의 압력을 낮춰서 발전소와 도시가스 회사에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시설이다. 기존 벙커C유를 쓰는 성서열병합발전소에 액화천연가스(LNG)를 공급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시설이다

한국가스공사의 최초 계획은 달서구에 정압관리소를 지으려고 했다. 지난해에 달서구 갈산동의 한 염직공장 부지를 정압관리소 부지로 매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민단체와 인근 주민들의 반발로 서구에 있던 기존 정압관리소를 증축하기로 방향을 선회했다. 서구 중리 정압관리소는 대성에너지 등 도시가스 공급사에 가스를 제공하기 위해 1995년부터 가동됐다.

서구 주민들은 달서구에 지으려던 시설을 서구에 짓는다며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고 있다. 달서구 주민들도 중리 정압관리소와 성서열병합발전소를 연결할 고압가스 배관에 대해서 큰 우려를 표했다. 한국가스공사는 중리 정압관리소에서 용산·이곡·월성동 등을 거쳐 성서열병합발전소로 이어지는 약 7.6㎞ 고압가스 배관을 매립하려고 한다. 지하 1.5m 깊이에 매립될 예정인 고압가스 배관은 7.6㎞ 중 800m가 서구, 나머지는 달서구 구간으로 나뉜다.

달서구 이곡동에 거주하고 있는 김현미(47) 씨는 "아무래도 가스관을 매립한다고 하면 상인동 가스 폭발 사고가 떠올라 불안하다"며 "앞으로 매립이 시작되면 공사 중에도 아이가 학교에 다닐 텐데, 그런 현장을 계속 지나다니는 것도 위험할 것 같아 걱정된다"고 말했다.

김중진 대구안실련 공동대표는 "가스공사의 계획대로면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는 가스 사용압력보다 약 2천배 높은 압력인 4MPa(40기압)의 고압가스 배관이 도심지를 지나가게 된다"라며 "미국, 일본, 영국의 경우 일반적으로 도심지 가스배관은 2MPa 이하로 설계 및 공급이 된다. 해외에서도 사례를 찾기 어려운 위험한 사업"이라고 말했다.

◆전문가 "사고 가능성 매우 희박…주민들 불안감은 해소해야"

이번 사업을 바라보는 전문가의 관점은 다소 다르다. 기술 고도화와 주기적인 검사·관리체계로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 자체가 극히 희박하다는 얘기다.

이근원 아주대 환경안전공학과 교수(한국가스학회 수석부회장)는 "가스 배관 자체로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정압관리소 역시 가스를 전달하기만 하고 저장은 하지 않아 위험성이 현저히 낮아 실제로 도심지에 운영되는 사례가 전국적으로 많다"며 "과거의 사고 사례를 살펴봐도 공사 중이던 굴착기가 타공을 하다가 배관을 잘못 건드리는 등 외부 요인에 의해 발생한 게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요즘은 굴착공사에 대한 허가가 까다로워지면서 이런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도 원천 차단된 것이나 다름없다"며 "해당 사업은 중대한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되는 수준의 '받아들일 수 있는 위험(acceptable risk)'이라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 교수는 가스공사가 시민들이 납득할 수 있을 정도의 안전설비를 마련하고, 가스 배관 경로도 인구 밀집 지역을 우회해 설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안전성이 입증됐다고 해서 외부의 변수와 대형사고 가능성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현재로선 인구가 밀집되지 않은 지역으로 배관을 우회하는 게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가스공사는 기존 계획했던 달서구 부지는 지형적으로 정압관리소 설치에 맞지 않아 변경된 것이라며 서구 주민들을 달랬다. 서구 중리 정압관리소는 1995년 지어진 이후 꾸준히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다만 가스 배관을 인구 밀집 지역을 피해 설치하자는 제안에 난색을 표했다. 가스공사 관계자는 "도심지 기준으로 가스 배관 8km마다 정압관리소를 하나 설치해야 한다. 우회 설치를 하면 신규 정압관리소를 하나 더 설치해야 할 수도 있다"며 "그렇게 되면 모든 논의가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다. 현재로서는 주민들과 소통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수밖에는 없다"고 밝혔다.

한국가스공사가 계획하고 있는 배관 위치도. 달서구청 제공
한국가스공사가 계획하고 있는 배관 위치도. 달서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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