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항해(大航海) 시대에 이어 열강(列强)은 18세기 들어 산악에서 각축을 벌인다. 등산이 대중화되기 훨씬 이전 엘리트들이 중심이 돼 도전과 탐험·모험정신으로 무장한 채 국가주의를 구현하려는 하나의 '운동'이었다. 오늘날 선진국들이 우주 개발 경쟁을 벌이는 것과 다르지 않은 개념이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한국산악회가 앞장 서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대한민국 최초 산악단체인 한국산악회를 이끌고 있는 변기태 회장은 "한국산악회의 창립 목적은 '국토 구명(究明) 사업과 학술조사'"라며 "가장 한국산악회적인 패러다임의 변화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독도표석 재건립 작업을 한 것도 이 같은 다짐의 실천이다. 그는 "70년 전 대선배들이 독도표석을 처음 세웠다"며 "독도의 역사를 밝혀 우리 영토임을 알리고, 수호 의지를 이어가자는 취지를 계승·발전시키고자 한다"고 재건립 배경을 설명했다.
-왜 독도표석인가?
▶우리 산악회는 울릉도·독도를 지난 1947년 8월 16일~28일 1차를 시작으로 1952년 9월 17~28일(2차), 1953년 10월 11일~17일(3차) 등 32일 동안 학술조사했다. 제1차 조사는 해방 후 일본의 불법 독도 침탈과 영유권 주장이 계속됨에 따라 이를 내버려두면 외교적인 문제로 비화할 수 있어서였다. 때마침 당시 과도정부는 안재홍 민정장관을 위원장으로 '독도에 관한 수색위원회'를 조직하고 있어서, 공무원과 한국산악회 전문가로 구성된 학술조사단을 파견해 독도를 조사했다. 그 결과 독도의 동식물 표본이 채집됐고, 독도의 측량과 사진 촬영이 이루어졌다. 이와 함께 독도에 '조선 울릉도 남면 독도'라는 푯말(독도영토표석)을 설치해 독도가 한국의 땅임을 밝히고자 했다.
-지난 8월 초 독도표석을 복원 했는데.
▶지난해 태풍으로 유실된 탓이다. 애초 독도경비대가 있는 동도 몽돌해변 인근 암석에 설치돼 있었는데 울릉도와 독도를 강타한 태풍 '힌남노'의 영향으로 쓸려갔다. 지난 4~6일 독도를 찾아 복원과 재건립 작업을 마쳤다. 한국산악회는 오는 9월 2일 회원 200여 명이 입도하여 제막식과 더불어 독도표석 건립 70주년 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어려움은 없었나?
▶70년 전 대선배들도 해낸 작업이다. 독도의 역사와 자연 환경을 확실히 밝혀 우리 영토임을 세계에 알리고, 수호 의지와 국토를 지키자는 정신을 이어가자는 취지였다. 저는 물론 유실된 표석 제막 당시 회장이셨던 장승필 고문·이상세 총무이사·유학재 이사·이영준 학술위원장·박준기 촬영담당(영화감독)·김동관 문화재 보수 기능보유자 등의 회원이 참여했다. 과거 표석과 규격과 내용이 같은 화강암으로 육지에서 제작해 독도현지로 옮겨 4시간여에 걸쳐 작업했다. 힌남노로 유실돼 30m를 날아 간 옛 표석은 회수해 울릉도 독도박물관에 기증했다.
-18일 개최한 독도세미나도 관심이다.
▶독도표석 설치 70주년을 기념하는 독도학술세미나이다. 광복 후 울릉도·독도 학술조사를 재조명한 행사다. 이영준 한국산악회 학술문헌위원장이 '한국산악회의 국토 구명 학술조사 전개와 의의', 이태우 영남대 독도연구소 교수가 '제1차 울릉도·독도 학술조사단의 조사 활동과 성과', 최선웅 한국산악회 자문위원이 '한국산악회의 독도 측량과 지도제작'을 주제로 발표했다. 지정 및 종합 토론으로 독도의 역사를 다시 한 번 조명하고 미래로 가는 길을 모색하는 기회로 삼고자 했다. 또 지난 17일부터 10월 30일까지 동북아역사재단이 주최하고 저희가 후원하는 '1947, 울릉도·독도 학술조사를 가다' 전시가 서울 영등포 독도체험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한국산악회를 소개해 달라.
▶1945년 광복과 더불어 한국진단학회에 이어 두 번째로 설립된 사회단체이다. 이후 80년 가까이 의지와 애정의 산악인 정신을 계승하고 산으로 외길을 가며, 그 산길을 걷는 산악인들의 우정을 지키고 있다고 자부한다. 회원이 약 6천 명이다. 대구를 비롯 전국에 12개 지부가 있다. 또 한국산악문화연구소와 한국산악자료원 등을 두고 있다. 회원 간의 신뢰와 화합을 다지고, 우리나라 산악문화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국내 정통 산악회로서의 모습을 항상 튼실하게 만들어 가도록 하겠다.

한국산악회는 지난 1941년 결성된 백령회가 전신이다. 백령회는 1931년 일본인들이 조선산악회를 조직하자 이에 자극받은 한국 산악인들이 결성한 등산 조직으로 첫 걸음을 뗐다. 1945년 9월 15일 결성취지문이 인상적이다. '생각컨대 전 세계 산악계의 추세는 특히 강대한 제국의 손으로서 히말라야 고악(高嶽) 원정, 극지 탐험, 오지 조사, 개척 등 고도의 발전과 업적을 보며…우리 악계(嶽界)가 아직 젊고 빈약하다 하더라도 일본 산악 수준에 비견할 만한 소지를 가진 오늘날 우리도 우리 손으로 이러한 열(㤠)과 힘을 가질 수 있을진대 전도는 웅대하고도 더욱 다난함을 느낍니다….'
변 회장은 "영국은 국가 이름을 딴 산악회가 1857년에, 일본은 1905년에 창립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하지만 출발은 미미했으되 창대한 결과를 낳고 있다. 31대 변 회장에 이르기까지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산악회를 진두지휘한 데 힘입었다. 대언론인 홍종인 주필·노산 이은상 선생·구자경 LG 회장·국어학자 이숭녕 박사 등이 회장을 역임했다. 산악회 초기 일제 때 유린된 국토의 산하를 연구해 밝히기 위해 1946년부터 1955년까지 11차례에 걸쳐 전 국토를 대상으로 학술조사를 벌였다. 그 중 4차·9차·10차였던 울릉도와 독도 학술조사대의 보고회와 전시회는 전 국민적 호응을 불러 일으켰다.
또 ▷파키스탄 그레이트 타워 초(初)등정 ▷매킨리봉 키차트나 스파이어 동벽에 코리안 직등 루트를 초등반 ▷세계 최대의 난봉으로 꼽히는 가셔블럼 4봉에 원정대를 파견해 서벽 중앙립에 코리안 루트 초등반 ▷1978년 한국산악회 최초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4봉 등정 기록을 세우는 등 빛나는 역사를 썼다. 1969년에는 해외 원정을 앞둔 설악산 10동지 조난 사고가 발생하는 시련도 겪었다.
-산하 기구로 학술문헌위원회를 두고 있는 등 학술·연구 활동이 두드러져 보인다.
▶산악회보 편집과 학술연구와 포럼 개최에도 중점을 두고 있다. 1959년부터 발간된 연감 '한국산악'은 42호를, 1968년 8월 31일에 창간한 회보 '산'은 279호를 냈다. 주로 사무국 소식과 회원들의 활동 상황(등반기·산악칼럼)을 싣는다. 그 뿐만 아니라 1975년부터 산악관련 단행본을 13권 발간했고, 각종 등반과 학술보고서 출간은 헤아리기 어렵다.
-회장 취임 계기는?
▶산은 그대로인데 국내 산악환경이 급변했다. 전문산악인구가 줄고 고령화라는 구조적인 문제에다 용품업계의 불황이 더해져 어려움이 크다. 또 어느 모임이나 회장 경선을 하게 되면 사분오열되는 부작용이 있다. 정관까지 개정하고 회장추대위원회를 만들어 아무런 특별함도 없는 제가 단지 젊다는 이유만으로 하게 됐다. 봉사하고 희생하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운영 방향은?
▶중책을 맡긴 건 가장 한국산악회적인 패러다임의 변화를 구축하라는 명령이라고 믿는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말씀처럼 근본을 잃어버리지 않고, 끊임없는 성찰과 학습으로 산악회와 제 자신을 완성해 나가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선대 회장님들이 다져놓은 기초를 더욱 공고히 하여 앞으로 100년을 준비하도록 하겠다. 원로 선배님들에게는 젊음을 바쳤던 산악회에서 후배들이 잘하고 있다는 믿음을 드리겠다는 각오다.
-계획은?
▶한국산악회는 정부 지원을 1원도 받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국가에서 정말 해야 하는 산악 운동이라든가 하는 활동을 열심히 펼치고 있다.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에 있어서도 반대 목소리를 분명히 냈다. 산악 운동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온 힘을 쏟겠다.
-산과 관련한 번역서를 발간하고 있는데 이유는? 또 오늘도 산을 오르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일반적인 등산 동호인에게는 좋아하는 산을 건강하게 오래 다니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게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산에 목숨을 바칠 만큼의 열정으로 전문 등반을 하는 분들은 그렇지 않다. 우리 선배님들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어렵게 외국의 등산 책을 구하고 번역해서 돌려봤다. 지금은 어떨까? 몇몇 출판사에서 적자를 감수하고 외국의 명저들을 번역해 내놓아도 외면당하기 일쑤이다. 등산에 임하는 열정의 1%만이라도 책을 매개로 외국 산악계의 동향을 파악하고,등반가들에게 관심 가져주시기를 부탁드린다.

◆변기태 회장은 누구?
"목표를 추구하는 사람은 그것을 달성하는 순간 마음이 허전하다. 그러나 길을 찾는 사람은 마음 속에 항상 목표가 있다." 변기태 회장이 인용하고는 하는 슬로베니아의 저명 산악인이자 문필가인 네이츠의 저서 '길'의 한 구절이다.
경북 봉화 출신인 그는 어릴 적 서울로 고향을 떠나왔지만 고려고 재학 중 산에 빠진 뒤 독도를 포함한 우리 국토의 중요성과 가치에 눈 뜨게 됐다. 고교 재학 시설 인근 학교에서 등반 강의를 요청하고는 했는데 지름길로 가다가 밭 한가운데에 있는 똥통에 빠진 경험을 계기로 산 앞에서 한 없이 겸손해야 한다는 진리를 깨닫게 됐다고. 1983년 남미 아콩카구아를 등정했고, 최근에는 키르키즈스탄 악사이산군(山群)·네팔 카조리봉·맥킨리 및 요세미티를 등반했다. 국내에서는 오대산 귀면암 오버행코스와 불암산 천보암을 개척했다.
첫 직장은 한국조폐공사였다. 동양투자신탁을 거쳐 사업을 벌였고, 곧 자리를 잡았다. 이후 산악서적 전문출판사인 하루재클럽 대표로 있다. 북 클럽에는 회원이 1천200명에 달한다. 현재 익스트림라이더 등산학교 교장을 겸임하고, 한국산서회와 한국등산사연구회 창립회원·파키스탄 스카루드지역 고아원을 지원하는 아름다운 유산 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다.
한국산악회 도서관장·한국애서가(愛書家)클럽 회장을 지낼 정도로 책을 사랑한다. 월간 '사람과 산' 산악지도자상과 한국산악회 한국산악상 노산 이은상 상(償)·한국대학산악연맹 산악문화상 등을 받았다.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