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명. 7월 말 기준 대구 시내버스 여성 운전기사 수다. 전체 3천490명 가운데 0.33%를 차지한다. 이들 중 31년 경력을 가진 맏언니가 이달 말 퇴직을 앞두고 있다. 자신의 버스를 타는 모든 이들을 위해 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달린다는 김분임(63) 씨 이야기다.
◆ 섬유공장에서 일하던 소녀, 최연소 여성 택시기사가 되다
김 씨는 1960년 8월 15일 경북 고령군 개진면 인안리 일선김씨 집성촌에서 5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성적도 상위권에 군 대표 육상선수로 뽑힐 정도로 운동도 곧잘 했지만, 가난한 형편 탓에 중학교 진학 대신 대구 3공단에 있는 섬유공장에 취업했다. 육체노동은 고됐지만,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다. 낮엔 일하고 밤엔 책을 보며 꿈을 키웠다.
베를 짜는 단조로운 일상은 김 씨와 맞지 않았다. 여러 섬유회사에 다녔지만 다 고만고만했다. 그러던 어느 날 김 씨의 인생을 바꿀 순간이 찾아왔다. 월급을 손에 쥐고 길을 걷던 중 자동차운전학원 간판이 보였다. 호기심에 학원에 들어가 등록비를 물으니, 8만8천 원이라고 했다. 손에 쥔 월급은 6만6천원뿐. 후불 등록도 가능하다는 말에 그 자리에서 월급을 몽땅 털었다. 밤에는 섬유공장에서 베를 짜고 낮에는 왕복 3시간 걸리는 버스를 타고 학원에 다니는 이중생활이 시작됐다.
1979년 김 씨는 방직기를 내려놓고 운전대를 잡았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19살. 대구에서 최연소 여성 택시기사였다. 동료들은 씩씩하고 부지런한 그녀를 좋아했다. 일도 적성에 맞았다. 하지만, 회사 선배와 결혼한 후 남편의 만류로 다시 섬유회사로 돌아갔다. 그래도 운전대를 놓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 공고했던 유리천장…멸시 이겨내고 대중교통 전문가로
변화를 갈망했던 김 씨는 소방차를 몰고 싶어 26살 대형 운전면허를 취득했다. 하지만, 나이 제한으로 소방차 시험을 볼 수 없었고 그 길로 시내버스 회사를 찾아갔다. 처음엔 "여성 기사가 없고, 여자가 하기 힘든 일"이라는 이유로 4년간 누구도 받아주지 않았다. 7전 8기 끝에 한 버스회사에서 택시 운전 경력을 인정받아 1992년 32살의 나이로 대구에서 두 번째 여성 버스 운전기사로 뽑혔다.
운전대가 커진 만큼 부담감과 스트레스도 컸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받았던 멸시가 그녀를 더 힘들게 했다. 김 씨는 "여자가 버스를 운전하는 게 신기했는지 다들 달성공원 우리에 있는 동물처럼 쳐다봤다. 길에서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래도 굴하지 않았다. 탁월한 운전 능력을 보이며 당시 배차 간격이 좁고 가장 힘들다는 7번, 12번, 108번 등의 노선을 도맡아 운행했다.
2000년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대중교통 안내 홈페이지를 만들기도 했으며 2005년 시내버스 준공영제 준비 과정에서 대구시 대중교통개혁팀과 협업하는 등 대내외적으로 능력을 인정받았다. 입사 초기부터 꾸준히 버스운행 시간, 교통 상황, 지리 정보 등을 메모한 노트만 20여 권에 이른다. 대중교통 정책을 담은 책도 냈다. 자타공인 대중교통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 31년 경력 마침표…퇴직 후에도 대중교통 연구에 힘 쏟을 것
김 씨는 2015년부터 북구 관음동과 달서구 도원동을 오가는 706번 버스를 책임지고 있다. 오는 31일이면 만 63세로 정년을 채워 퇴직을 앞두고 있기도 하다. 31년간 잡았던 운전대를 내려놓지만, 대중교통에 대한 그녀의 열정은 그대로다.
오는 26일 토요일 오후 2시에는 계산성당 인근 음악다방인 '세라비'에서 '기후문제와 대중교통'이라는 주제로 특별강의를 진행한다. 행사 당일 오전에는 김 씨가 운전하는 706번 버스에 탑승해 종점인 북구 칠곡의 우주교통까지 함께하는 정년퇴직 축하 행사도 예정됐다.
김 씨는 "스스로 힘든 직업을 택했지만, 항상 대중교통이 어떻게 하면 시민에게 더 편리하게 다가갈 수 있을지 고민했던 것 같다. 퇴직 후에는 유튜브 활동도 이어 나갈 계획"이라며 "여성은 하지 못한다는 편견을 깨고 후배 여기사들이 조금 더 수월하게 자리 잡는 것에 도움을 줬다는 점이 보람찼다"고 소회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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